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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시 Apr 20. 2023

4월 어느 밤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붉은 점들이 뒤덮여 둥근달이 되었습니다. 그리 사랑하던 달이 발갛게 물든 모습에 비죽 거리던 누군가의 입꼬리가 떠올라 방구석에 몸을 웅크렸습니다. 찾아올 5월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아 숨을 참는 그런 밤. 끔찍하게도 벌써 일 년의 1/3이 지났는걸요. 창가에 비친 불빛 아래 켠켠이 쌓인 감정들이 천장에서 흘러내려 두 손을 가득 채웠습니다. 종내엔 그 차가운 것들이 손가락 새로 새어나가 방 안 가득 메우게 두었습니다. 그렇게 턱 아래까지 차오른 것들에 결국 두 눈을 꾹 감고 잠겨 보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끔찍한 아침을 마주하는 것보다 이유 없는 우울에 잠겨 자맥질하는 밤이 나을 테니까요.

 
 적막이 부서진 방안엔 철썩 거리는 파도소리만 가득했습니다. 바다가 되어 어디든 흘러갈 수 있다면 행복할까요? 이왕 될 거라면 창백함에 아무도 찾지 않는 그런 바다가 되고 싶습니다. 아ㅡ, 결국 바다도 오고 갔던 누군가를 그리워하진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백사장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부딪히길 반복하며 그리워하는 거겠죠. 감당하지 못할 외로움을 끌어안은채 혹시 부르면 찾아올까 하는 미약한 기대를 품고,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과 찬란한 윤슬 속에서도 정작 바라던 것은 채워 넣지 못하여 쓸쓸하다고 전하며.


우리의 연은 끊어지기 쉬운 실로 이어져 서로를 붙잡으려 애처롭게 얽히고설키기를 반복합니다. 누구도 풀지 못할 매듭으로 묶어두어도 툭 잘라내면 사라지는 것이 인연이기에, 자신을 믿어 달라던 당신의 그 말이 무섭습니다.  제가 믿고 있다면 그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을 알고 있어요. 혹시 비루한 속을 내보였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 차라리 제게 거짓말을 해주세요. 안타깝게도 믿음은 언제나 절망으로, 그리움의 탈을 쓴 절망은 사랑이 되니까요.


영원할 것 같은 당신이 가장 무섭습니다. 

끝끝내 당신을 믿기로 결정할 것만 같은 제 자신이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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