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어른이지만) 백일장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는 그리 쉽게 쓰면서도, 나에게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것 같아. 그런 사람에게 8살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니.. 어쩌면 써왔던 글감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닐까?
미안해. 너에게 한 말은 아니었어. 혼잣말이야. 이제 시작하려고 해.
안녕?, 이제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때에도 웃고 있었던 것 같아. 무서운 할아버지가 가끔 말씀하시지? 그렇게 실없게 웃고 다니면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고. 근데 있잖아, 나는 여즉 네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 지나 보니 그렇더라, 누군가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은 네 웃음 때문이 아니고 그 사람들이 숨기고 싶은 나약함 때문이야. 그러니 마음껏 웃고 마음껏 사랑하도록 해. 너를 미워하는 사람까지.
아직도 공룡을 좋아하지? 나도 공룡을 좋아해. 여전히 방 한켠엔 공룡사전이 있어. 네가 한글을 배울 때부터 떼어 놓지 못한 공룡사전. 너도 꼭 가지고 있길 바라. 가끔 잠들기 어려운 밤에 도움이 많이 되거든. 아! 물론 너는 놀이터에서 조금 더 뛰어놀다 보면 잠이 올 거야.
초등학교에 가게 되는 걸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부모님은 기분 좋게 술에 취하는 날이면 내가 입학식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농담을 하시거든. 그래도 네가 펑펑 울 걸 알지만 부디 그러지 않길 바라.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굉장히 설레고 즐거운 일이거든. 나도 너 만큼 여전히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이 두렵고 막연한 만남들이 두려워. 그래도 누군가 해야 한다면 너 하고 나 말고 누가 있겠어.
분명 모두가 널 사랑할꺼야.
참 신기한 일이네. 어렵다고 시작해선 이렇게 하고 싶는 말들을 꾹꾹 눌러 담는 거. 솔직하게 나는 네가 이 편지를 열어보지 않았으면 해.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다음 주 다음 달엔 무슨 일이 있을지. 미리 알고 나면 삶이 재밌을 리 없거든. 그러니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듯 네 마음대로 했으면 좋겠어. 씩씩하게 일어나서 설레는 하루를 시작하길 바라.
로또 번호는 알려주진 않을 거야. 배 아프거든.
로또번호가 무엇인지 몰라도 괜찮아. 알게 될 때즈음엔 날 미워할 테니까.
건강히 잘 지내.
너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분명
P.S 그래도 살면서 비트코인이란 단어를 듣게 된다면 꼭 사두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