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을 해로한다는 것은...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그간 몸이 많이 아팠고 여러 가지 이벤트들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변수라는 상황에 몸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항상 마음의 불안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얼마 전 아이에게 일어난 황당한 상황들을 글로 풀어내고 싶지만, 그것 조차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이 될 수 있으므로 그냥 속상한 마음만 털어내야겠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아팠던 시간, 나는 한 달 간격으로 독감 수준의 감기를 두 번이나 앓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근육과 진짜 참 근육을 키우라고 했는데, 신체 근육이 없는 나는 면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걸핏하면 아프고 무기력해지고 다시 힘을 내고 이 과정을 무한 반복 중이다.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지겹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졸리진 않는데 힘이 없어서 바닥에 머리만 대면 잠이 쏟아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졸려서 꾸벅꾸벅 조는 게 아니라 정신은 멀쩡한데 머리만 땅에 닿으면 최면에 빠진 듯 잠을 잤다.
꿈도 꾸지 않고 내리 몇 시간을 자고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놓은 알람에 깨곤 했다. 그리고 밤에 또 잠을 잤다. 낮에 그렇게 잠을 잤는데 또 잠을 자고 계속 잠을 잤다. 마치 무언가를 잊으려는 사람처럼 계속 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아직 처방받은 약이 남아 있었지만, 분명히 뭔가 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정신과를 다시 찾았다. 그간 1년 6개월 정도 약을 복용하면서 나에게 맞는 약을 찾으려 애를 썼는데 요즘 먹는 약이 나에게 잘 맞는가 싶었더니 다시 잠이 쏟아졌다.
원장님은 잠을 못 자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많이 자는 것도 정상적인 시그널은 아니라며 스트레스에 취약하면 잠이 쏟아질 수도 있다면서 불안장애는 잠을 컨트롤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단 며칠이긴 했지만, 쏟아지는 잠에 몸이 아래로 아래로 깊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의 문제와 얽혀 현재 처한 상태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정신은 이 정도는 스트레스가 아니라고 거부했지만 몸은 지금이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라고 알려주었다.
불안장애로 정신과를 다니면서 운동을 빼곤, (사실 이 행위가 가장 중요하지만...) 불안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했다. 그중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독서다. 독서를 하면서 내 안의 내면 아이와 만나고 객관적인 나의 심리 상태를 분석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현재 내 상태에 대한 문제와 원인을 파악하려 애를 썼다.
이러한 나의 노력에 가장 힘이 되어 준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언젠가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모태 신앙이었지만 난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그렇다고 점이나 사주 같은 것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할수록 어딘가 기대고 싶은 마음이랄까,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인생에서 큰 방황을 했을 때 나는 홀로 점집과 타로샵, 철학관을 다녔었다. 그때 가장 용하다고 생각한 철학관 선생께서 내게 말했다. 나는 자수성가해야 할 팔자다!!
나는 내 인생에 인복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인복도 자기가 만드는 것이라는데 돌이켜 보면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나에게 인복이 있을 리가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예민한 내 성격을 받아주는 몇 안 남은 고마운 지인이 나의 인복이라면 인복이지만 돌려 말하면 나는 부모 복 형제 복도 없다. 시댁 복도…
그런 나에게 남편은 내 인생 최고의 인복이었다. 남편을 만나고 나는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고, 남편과 살면서 처음으로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다. 아이를 낳고 다시 불안이 올라왔지만 아이가 없던 신혼 무렵에는 내가 살면서 이런 행복감도 느끼는구나 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아내 자격이라곤 0점에 가까운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며 지지해 주는 남편이 있어 그나마 없던 힘도 쥐어 짤 수 있다. 아이 역시 내게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지금 겪는 시련이 힘들지만 한편으론 행복하다고 느낀다.
오늘 친정엄마로부터 외할아버지의 투병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위암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연세는 올해로 94세이다. 연세를 보면 암이라는 단어가 뜬금없게 들리지도 않지만 할아버지 소식에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몇 달 전 외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두 살 차이인 할머니와 스무 살에 결혼하신 후 74년을 해로하셨다.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함께 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74년을 이 지나서야 이별을 하셨다. 몇 년을 사귄 사람과의 이별에도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74년을 해로 한 반려자와의 이별은 어떤 느낌일까..
올봄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눈물이 났던 건 홀로 남은 할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슬픔과 쓸쓸함 때문이었다. 6.25 참전 용사로 자료가 사라져 십 년 전에서야 국가유공자가 되신 할아버지는 건장한 체격에도 총상을 입은 다리 때문에 제대로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생때같은 7남매를 책임지신 것은 작고 여린 할머니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든든한 나무처럼 항상 할머니 곁에 있었고, 살아생전 큰 소리 한번 낸 적 없는 할머니는 언제나 할아버지 곁에서 빛나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계셨다.
말 수는 많지 않으셨지만, 묵묵히 할아버지 곁을 지키셨던 할머니는 내가 아는 할머니 중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할머니께서 하늘의 별이 되셨고, 그 연세에도 강골 같던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목놓아 우셨다.
외삼촌이 자신의 집으로 할아버지를 모시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쌓인 오랜 옛집을 떠나지 못했다. 그 집은 할아버지가 태어난 집이자, 우리 엄마를 비롯한 이모와 외삼촌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그 집에서 할머니를 떠나보낸 후 찾아온 공허함을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 넣으셨다.
주말엔 외삼촌과 이모들이, 주중엔 어르신 학교를 다니며 슬픔을 버티셨지만, 그리움이란 감정에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팠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넋이 나간 와중에도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또렷해 보였던 건 마치 할머니와의 추억을 영화 필름처럼 관람하는 것 같았다.
장성한 7명의 자식과 사위 며느리 그리고 손주에 증손주까지 세상 곳곳에 많은 삶의 씨앗을 퍼트리셨지만, 결국 남은 건 할아버지 혼자였다.
나이가 든다는 건, 삶의 시계가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건, 두려움과 외로움을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죽음은 순서가 없고 죽음 앞에선 나이가 없다는 친정엄마의 말처럼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헤어짐에 취약한 건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이 든 어른들의 단골 멘트인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이 문득 처연하게 느껴진다. 담담하게 말하는 억양 속에 두려움과 불안이 함께 묻어나는 걸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키우는 지금 이 순간이 나의 가장 행복한 시간인 것 같다.
나도 알고 있다. 순수한 아이의 웃음 아빠 엄마가 세계의 전부인 아이에 대해 고민하고 상의하고 협동하면서 키워가는 부부의 의무가 사랑을 넘어 희생을 함께한 동지임을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이 우리에게 가장 행복하고 기억에 남을 순간이라는 것을
나는 남편과 74년을 해로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될 수 있다면 오래도록 함께 있고 싶다. 연애시절 손을 꼭 잡고 걷던 어느 가을날의 공기와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차가 없어 뚜벅이로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쫑알쫑알 말 많던 나의 수다를 묵묵히 들어주던 남편의 진중함이 지금은 말 없고 재미없는 남편으로 뒤 바뀌었지만, 그날 꼭 붙어 있던 우리의 그림자는 아직도 여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할아버지의 아픔으로 우리의 행복을 확인하는 것이 처참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 빛과 그림자의 세계다. 어둠이 사라지면 새벽이 오고 그 후에 밝은 아침이 온다.
치유받아야 할 나의 내면 아이는 여전히 많이 있지만, 나를 키운 어머니의 어머니를 나는 누구보다 사랑했다. 의식도 없이 호흡기만으로 버티던 할머니가 차라리 돌아가시길 바랐던 나의 가벼운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반려자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 쓰라림으로 되돌아온 슬픔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나 역시 소중한 가정을 지키고 아이와 남편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 좌절할지라도 오늘만큼은 또 그렇게 힘을 내본다. 밤이 지나면 곧 아침이 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