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건강 염려증으로 인한 불안이 생겼다.
내가 가진 불안 중 하나는 건강 염려증이다. 폐소공포증 광장공포증 트라우마처럼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있다.
위에 언급한 여러 불안 장애들 중 처음 증세를 겪는 것이 바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함과 눈앞이 핑 도는 실신 증상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엔 이 증상을 가벼이 여기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게 된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 받아보지만 특별한 증상이 없다는 결과에 안도하는 마음을 느낌과 동시에, 나에게 왜 이런 증상이 생긴 걸까? 의문이 생기면서 다시 불안이 심해지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내가 다니는 정신과에서도 원장님은 나의 신체화 증상에 대해 병원에서 이상소견이 없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라면서, 병에 걸린 것보다 낫지 않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셨다.
그러나 나의 건강염려증은 내 증상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수년 전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꺼내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을 계기로 여러 가지 건강 문제들을 겪었고, 이후 최근까지도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기에, 나의 불안 중 하나인 건강염려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아직도 그 친구를 떠올리며 슬퍼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생각 끝에 최소한의 이야기만으로 내가 겪은 불안에 대해서 언급하기로 했다.
사회에서 만난 P는 나에게 참 잘해주었다. 일적으로 만난 사이 인지라 늘 그렇듯 시간이 흘러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길 무렵, P가 먼저 연락을 해주었고, 예상치 못했던 P의 연락에 나는 조금 놀랐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눈 후 우린 친구가 되었다.
그 후,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관계를 이어간 지 몇 년이 지나도 나와 그녀는 깊은 속마음은 나누지 못했다. 그냥 세상 사는 이야기 회사 일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험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혼자 생각했던 이미지보다는 소탈하고 정 많은 친구라고 느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콤플렉스 덩어리였고 염세적이었던 내가 오히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내 걱정이나 불안을 꺼내지 않았기에, 그 친구와 소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오히려 긴 시간 동안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주 보진 않았지만 그녀는 나와 약속을 잡으면 자신만 아는 맛집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우리가 만나는 하루만큼은 오롯이 나에게 시간을 써 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남의 얘기하듯 덤덤하게 연애를 한다고 했고, 그녀의 성격답게 조용히 연애를 하더니 스치는 바람처럼 갑작스럽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나는 사귀던 남자 친구와의 갈등과 지쳐가는 감정싸움으로 혼돈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그녀의 결혼식을 보면서 많이 부러웠던 했던 기억이 난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라 그녀의 오랜 친구들 사이에 끼지 못해 밥도 안 먹고 인사만 하고 돌아왔었지만, 그날의 그녀는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그녀의 결혼 생활은 결혼 생각이 없던 나까지 결혼하고 싶게 만들 만큼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일 년 후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모든 것이 참 그녀 답다고 생각했다. 호들갑스럽지도 그렇다고 자존심 세우지도 않는 그녀의 담백함 그리 깊게 친하지도 않았던 나를 외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기억해 준 걸 보면 우리는 참 친했던 것 같다.
나는 그녀가 호스피스 병동에 있던 날을 기억한다. 어느 날 일하던 내게 문자 하나가 왔고, 나는 마음의 준비가 안된 채 반차를 쓰고 그녀가 문자로 보내 준 병원으로 갔다. 호스피스란 의미조차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그녀의 상태조차 몰랐었다. 평소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꼬치꼬치 물어보지도 못했고, 문자로 나눈 대화로만 그녀의 상태를 지레 짐작할 뿐이었다.
그녀가 아팠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처음 신혼집을 방문했는데 그녀답게 덤덤하게 수술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젊다고 건강 소홀히 하지 말고 건강관리 잘하라고 말을 했는데 그때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었었다.
집안에 고령의 어른들도 건강하게 살아계셨고,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느 누구도 투병 생활은커녕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건강이라면 자신했었고 그때까지 불안장애 증상도 심하지 않았기에 그냥 일신상의 스트레스로 마음이 괴롭고 우울한 날들이라, 더더욱 건강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그런 그녀가 몇 개월 후 호스피스 병동에 갔고, 나는 그녀의 마지막을 보았다. 보름 후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들었지만 차마 갈 수도 없었다. 아니 내가 가도 될까 싶었다. 내 존재조차 모르는 부모님 그녀의 친구들 그리고 그녀의 남편까지...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용기 내어 어머님께 겨우 연락을 드렸는데 가족들끼리 조용히 그녀를 보내주었다며, 그녀가 있는 납골당만 알려주었다.
이후 나는 몇 년 간 불면증에 시달렸다. 친구의 마지막이 너무 또렷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쓰려던 사람으로서 드라마에 나오는 시한부 상황은 모두 가짜였구나 싶었다. 드라마는 예쁘게 포장된 빈 깡통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아주 가끔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밥 먹듯 했다. 생각이지만 너무 쉽게 죽고 싶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죽음 이후로 그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너무나 살고자 하는 그녀의 마지막을 보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속 시한부 환자들은 죽음을 앞두고 뭐가 그렇게 덤덤할까.... 그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호들갑스러워... 실제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고 멍한 상태가 된 후 시간이 흐를수록 우울한 감정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괜히 죄책감도 생긴다. 어릴 적 죽마고우도 아니었는데,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웃고 있으면 그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더 흐를수록 친구가 야속해졌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움을 넘어 고통이었다. 지금에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괴로움에 혼자서 잠을 자지 못했다. 벌써 십 년이 다 돼 가는 일이다.
이후 나도 결혼을 했고, 재작년 남편이 건강검진을 하다가 흉부에 혹이 발견되었다. 병원에서도 모양이나 검사상 양성종양으로 보인다고 했고 걱정은 되었지만 크게 어디가 나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그 어떤 경우의 수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미리 걱정하는 나 조차도, 마음을 놓을 정도로 그 어떤 언급이 없이 주야장천 검사만 계속했다. 남편은 잘 버텨 주었고, 간단한 수술이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만큼 나는 전신마취에 꽂혀 여러 가지 경우를 또 상상하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수술을 하고 나온 교수님의 말에 하늘이 무너졌다. 그것은 마치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세차게 맞은 듯한 배신감이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그런데 양성종양이 아닌 악성종양이다. 암은 아니지만 암에 준하는 관리가 필요하다. 암은 아니지만 암에 준하는 관리는 뭘까... 결국 암이었다. 암은 아니지만 암에 준하는 심리적 압박감과 고통은 암 그 자체였다.
나는 그 얘길 듣자마자 아직 어린 내 아들과 그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의 유언 같은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우울감에서 사로 잡혀 있었다. 그래도 힘을 내야지 힘을 내야지 마음을 먹어보아도 마치 내가 암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몇 개월을 살 수 있을까? 바보같이 이 생각부터 들었다.
아직 남편의 병명이나 상태도 모른 채 나는 이미 아들과 함께 미망인이 되어있었다. 세상 모든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암도 감기와 같은 시대라는데, 나만 쌍팔년도 어느 시점에 살고 있었나 보다. 그만큼 건강에 무지했고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나를 위로해 준 건 부모도 자식도 아닌 수술을 한 남편 당사자였다. 무너질 법도 한데 남편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혹을 뗐으니 이제 괜찮겠지 걱정하지 마 내가 잘 관리할게...
심란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루는 날 퇴원한 남편은 깔깔 거리며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평소 너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를 유튜브로 보고 있었다. 나는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저런 마인드라면 속은 문드러지겠지만 잘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다행히 남편의 수술은 잘 끝났고, 지금까지 추적관리는 하지만 무탈하게 잘 생활하고 있다.
어디 아픈 곳도 없었고, 단지 검진에서 혹이 나왔고, 증상도 없이 수술을 했는데 어느 날 환자가 되었다. 병명이 주는 압박감은 멀쩡한 사람도 환자 취급한다. 오히려 아픈 건 내가 더 아픈데... 나는 매일매일 남편 걱정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이다. 그렇게 남편이 감기라도 걸리면 겉으로 티는 안내지만 나는 또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불안과 싸움을 한다. 갑작스럽게 죽은 친구의 일을 떠올리며 모든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불안이 한 겹 한 겹 페스츄리처럼 쌓이고 그것들이 뭉쳐져 단단해지면 일종의 미신처럼 난 행복하면 안 돼 행복하면 불안해지는 감정이 찾아온다.
그래서 이 또한 지나가리, 인생 사 새옹지마란 말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무서운 말 같아서 개인적으로 너무 싫어하는 말이다.
그렇게 남편이 수술받은 지 3년 차가 되어가고, 낯설었던 병명에도 익숙해질 무렵, 작년 나와 두 살 차이 나는 사촌 오빠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지방의 텔레비전 뉴스에도 나올 만큼 문제가 있었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산재였다. 오빠에겐 초등학생 딸이 하나 있다. 나는 빈소에 가면서도 혼자 남은 새언니와 아이가 걱정이 되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이모를 위로하면서도 속으로는 아이와 홀로 남겨진 부인이 더 안타까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산재로 많은 보상금이 들어오고 오빠의 연금과, 부의금 이런저런 소송으로 십수억의 돈을 받게 된 새언니의 두 얼굴을 마주하면서 돈 앞에선 천륜도 끊는다지만… 49재도 지나지 않았는데 돈돈 거리는 새언니의 가족을 보자니 부부는 무촌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돈이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하면서도 가장 권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다음에..)
나 역시 작년에 신체화 증상을 경험하면서 혹시 몰라 하게 된 건강검진에서 유방에 이상 소견이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
소견서를 받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후 추적검사를 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하면 된다. 처음엔 자칫 암이 될 수도 있는 결과였지만 어째서일까 나는 어느새 병에 대해 덤덤해졌다는 걸 느낀다.
내가 먹는 약 때문일까.. 아니면 삶과 관련된 여러 경험들 때문일까..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건강염려는 아직도 남아있다. 이건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라기보다는 아직은 엄마 손이 필요한 내 아이 때문이다.
한참 부모의 손이 필요한 아이에게, 부모의 투병은 고스란히 정서적 불안감을 물려주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만 나와 남편이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더 잘하려고 애쓸수록 더 빨리 지쳐가는 것 같기도 하다.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남편은 먹는 것이 제어되는 순간 수술 전 보다 훨씬 기력이 없어 보였다.
나 역시 무조건 운동을 하라고 하니, 오히려 반감만
늘어났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관리는 해야 한다 무기력과 우울감에서 벗아나기 위해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간 것도 아이가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깊은 우울감에 취해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무미건조하고 무덤덤하게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태어날 땐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나는 여러 죽음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 것, 할 수 있을 때 가족과 많은 추억을 남길 것, 그리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표현할 것, 가진 것에 소중함을 느끼고, 무엇보다 돈에 집착하지 말 것, 나누며 살 것,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복수하려 하지 말 것, 그리고 나에게 관대할 것..
비록 불안장애와 불쑥 찾아오는 우울감으로 나는 지금 약을 먹고 있지만 스스로 깨우치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는 것도 느낀다.
글쓰기도 이 과정의 일환이다. 나는 오늘 하루 조금 더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매일매일 나를 돌이켜 보면 약도 끊고 지긋지긋한 불안과도 조금 거리를 두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PS 우리 건강할 때 건강 잘 챙겨요~~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