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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 Oct 27. 2024

아이 덕분에  정신과를 갔습니다. 4

내가 유독 아이의 징징거림을 참지 못하는 이유

나에겐 트라우마가 아주 많다. 그냥 트라우마 덩어리이다. 나는 오늘 쓰는 글을 포함 4편의 글을 올리면서, 현재 발행하는 글들의 콘셉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을 했다.


나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 중 하나로 글쓰기를 선택했고, 그러기 위해 나의 트라우마를 꺼내야 하는데, 그 트라우마는 지극히 사생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트라우마들을 건드리지 않고는 지금의 불안 장애와, 우울한 감정들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하지만  오롯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누군가의 개입이 있는 에피소드의 경우 약간의 각색을 더할 예정이다. 그들의 사생활도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나의 가까운 가족이라 하더라도 내가 쓴 글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고,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읽는 사람의 영역에서도 내가 피해자라는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 번쯤 아니 그 이상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받아 본 적이 있거나 반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경험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의도했건 아니건, 상대가 내가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에도 절망을 느꼈다면, 나는 남에게 피해 준 적 없다는 당당함 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면서 세상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딱 구분되는 영웅이나 악역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양가적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슈퍼스타 효리 언니가 말하길,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없고 나하고 잘 맞는 사람인가 안 맞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면 된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남편을 골랐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잘 맞는 것 같다.


인간관계의 데이터가 꽤 오랜 시간 쌓이니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을 타인의 말로 잣대 짓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나아가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라도 나는 현혹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극단적인 사람은 제외, 돌아이 질량 법칙을 검색해 보자 우리 주변에 한 명씩 있는 돌아이를... 주변에 돌아이가 없다고? 음 그렇다면.... 혹시 당신이... )


그것은 나 역시 타인에게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참 불공평하면서도 공평하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고, 그래서 우리도 안 시켜줬다.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한 그런 집은 아니었고 뭐랄까... 자존심 때문에 배가 고파도 밥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치는 지조 깊은 선비 가문의 개풀 뜯어먹는 느낌이랄까?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우리 가문은... 우리 가문은... 외치는... 몰락한 양반가의 허세...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공부를 강요했다. 당시에는 개천에서 용도 나왔고, 아들이든 딸이든 잘 키워서 집안 기둥으로 쓰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돈이 없는 자가 출세하는 길은 좋은 학벌과 고소득 연봉의 직업을 가지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돈이... 학벌도 직업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은 씁쓸함이... ebs 다큐에서 요즘은 3살부터 학업 능력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학원이나 참고서 문제집 등은 여유 넘치게 제공하면서 공부할 환경은 전혀 만들어 주지 않았다.


하루 걸러 하루 씩 부부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그냥 싸운 게 아니라 치고받고... 쌍욕하고 협박하고 물건도 던지고, 가끔은 몸싸움까지... 겁에 질려 어린 동생과 방문 앞에 서 있으면, 머리가 산발이 된 엄마는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 들어가서 공부나 해!!…“


어릴 적 나의 소원은 부모의 이혼이었다. 제발 좀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동생과 둘이 살고 싶었다. 어릴 적 나에게 아버지는 천하의 나쁜 놈 엄마는 그저 피해자인 동시에 나를 너무 괴롭히는 또 한 명의 가해자였다.


엄마에겐 형제자매가 많은데도, 아버지 욕을 할 사람은 오로지 나! 나뿐이었다. 나름 사회생활을 하는 아버지의 껍데기뿐인 명예를 지켜주신 건데, 어릴 적부터 세뇌받은 나는 정작 아버지를 지금까지도 미워한다


후에 나는 김미경 강사님의 책을 읽고 그것이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김창옥 강사님의 강의를 듣고, 배우자의 험담을 듣고 자란 자식이 느끼는 존재 가치의 멸시와 상실감도 여기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에서 둘째는 딸을 낳으라고 하는데 나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그 피가 어디 갈까.. 나 역시 딸을 잡고 내 한탄을 할까 걱정이 되어 딸은 아예 낳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린 동생 대신 감수성 넘치는 사춘기 여중생인 나를 붙잡고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 욕을 했다. 그때부터일까 나는 양귀자의 모순을 읽었고, 또래 남자아이들이 시시했다.


해맑게 뛰고 놀고 웃는 아이들을 보며 썩소를 지으며 니들이 인생을 알아? 라며 삐딱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퍽하면 이혼하자 소리를 했고 버릇처럼 산으로 머리 깎고 들어간다고 했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나는 자연인이다를 하루종일 틀어놓고 계신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의 의도를 알면서도 약이 올라서일까 억울해서일까 밤새도록 말로 사람을 긁었다. 욕이 나와서 몸싸움을 할 정도로 실컷 싸우고 나면 본인들은 지쳐 쓰러져 잠을 잤고, 나는 밤새 걱정과 눈물로 퉁퉁 부은 얼굴에 세수를 하고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그 얼굴을 닦았다.


내가 손수 빨은 교복과 마르지 않은 젖은 양말을 드라이기에 말려가며 등교를 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가끔은 격주 가끔은 격일, 운이 나쁘면 생일날까지 그 짓을 해야 했다.


학교에 앉아 있으면 안 그래도 목청이 큰 아버지의 욕과 엄마의 비난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욕의 레퍼토리는 지기미..로 시작해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들은 나는 엄마가 느낀 모욕감을 느꼈고, 하교 후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선 악이 받치도록 입을 움싹 거리며 아버지 욕을 하는 엄마에게서 아버지의 무능함과 비열함을 느꼈다.


내가 젤 싫어하는 말은 지 아빠 같은 년도 아니고 지 고모 같은 년이다. 아버지보다 고모가 더 악랄하다. (아버지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고모는 엄마에게 시어머니 대신이었다.)


그땐, 부부싸움은 지극히 개인의 사생활로 치부하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112에 신고를 할 수 없었다. 그저 맨발로 도망치듯 동네에서 가장 밝은 슈퍼 집 앞으로 가서 누군가 어른이  있다는 것에 안심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sos의 끝이었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 집에서 내쳐졌다. 아이를 낳고 키운 후 부모에게 이 말을 하곤, 기억 안 난다는 말과,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속이 시커메져 다 묻은 일을.... 몇십 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사람 속을 뒤집냐... 넌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다라는 비난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도 애지중지 키운다. 어릴 적 부모의 공허한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내 새끼 누가 뺏어가나 할 정도로 정성을 쏟고 또 쏟았다.


(나의 특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아이는 사랑스럽지만, 나는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보상심리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


그렇게 주변에서도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애지중지하는 아이에게 유독 화를 낼 때가 있다. 아이가 징징 거리며 떼를 쓸 때다. 18 소리가 난다는 마의 18개월도 무사히 잘 지났고, 코로나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서일까, 아이와 애착이나 상호작용도 꽤 잘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24개월이 될 무렵 아이가 180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퍽하면 떼를 쓰고 이래도 싫어 저래도 싫어 목청도 큰 애가 한번 울기 시작하면 2시간을 울 때도 있었다. 오은영이고 오은영 할머니고 유명하다는 육아서는 다 사서 읽었다. 잠을 쪼개가며 읽은 육아서가 수십 권은 될 것이다. 아직도 집안에는 백여 권이 넘는 육아서가 책장에 꽂혀있다.


여러 책을 읽어보아도 결론은 비슷했다. 그저 기다려 주는 것, 아무 반응도 하지 말고 제스처도 하지 말고, 그냥 그 옆에 그대로 앉아 있으라는 것이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자리를 피하는 것은 더더욱 금물 감정 조절이 미숙한 아이가 자칫 버림받은 기분을 들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럴 때면 내면의 아이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 나보고 어쩌라고... "의 마음에 억울함만 커졌다. 나중에는 나보고 어떡하라고 머리를 부여잡고 아이와 함께 똑같이 울어보기도 했다.


반면, 부부 싸움이라곤 1도 안 보고 자란 나의 남편은 소리에 아무 타격이 없었다. 평소 느려터지는 성격 때문에 답답해했던 그 성격도 아이 앞에선 그저 느긋하고 안정감 있는 부모의 표본이었다.


그래서 항상 아이가 울면 남편에게 바통 터치를 하고 도망을 쳤는데, 아이는 기가 막히게 자신이 울어야 할 상대가 누군지 알았다. 아빠 저리 가! 아빠 비켜! 하고는 내 앞에서 그렇게 악을 쓰고 울었다. 가끔은 그런 아이가 너무 괘씸했다. 일부러 우는 것 같았다.


신생아 때도 우는 건 참을 수 없었지만, 그것은 아이의 본능적인 생존 시그널이었고 지금은 달랐다. 아아악---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고 장난감을 던지고 몸을 구르다 못해 가끔은 자기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하고, 고집을 부리고, 내가 하지 말라는 건 다 하는 한마디로, 천사의 날개를 단 작은 악마 같았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 중 하나인 떼쓰기도, 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고 아이는 울어야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죽을힘을 다해 참았다. 화가 날 것 같으면 약을 먹었고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아이의 떼쓰기는 2시간에서 1시간 이제는 10분에서 5분 정도로 짧아졌다. 스스로 감정 조절을 하고 다 울었어,라고 말하는 아들을 안아주기도 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직 그 울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도 아앙!!!!!!!!! 소리가 나면 머리가 지끈 아파오고 짜증이 명치끝에서 올라온다. 그럴 땐 속으로 읊조린다. 이건 아이에게 난 화가 아니야, 내면의 아이가 소음을 견디지 못하는 거야, 아이는 죄가 없어..


어느 날 설거지를 하는데, 아이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울기 시작했다. 그날 유독 나는 피곤했고, 아빠가 달래도 달래 지지 않았는데,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3편의 압사를 당하던 그날의 느낌을 받았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나서 조용히 고무장갑을 벗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지금은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 중, 평상시라고 적힌 알약 하나를 먹으면 된다. 평상시, 불안이 올라오는 신체 반응이 있을 때 먹는 약인데 요즘은 자주 먹지 않는다.


지금은 그 애지중지하던 아이가 말을 논리적으로 하고 이해력이 생겨서, 나도 맞받아 같이 따지고 싸우기도 한다. 참 어떨 때는 스스로 부모답지 못하다고 느끼지만, 엄마!!!!! 아아아 아 하는 순간 눈이 돌 것 같다. 나도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작년, 어느 기념일날 남편이 내게 아이팟 이어폰을 선물로 주었다. 평소 아이 키우느라 노래들을 일이 없었는데, 아이팟은 노이즈 캔슬링이 된다고 했다.(참... 유행에 뒤처진 사람...) 아이가 울 때 이어폰을 끼니 아이의 울음소리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나는 사과 만세를 외친다.


나는 지금도 소리에 많이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사람 많은 공연장이나 시끄러운 곳은 잘 가지 않는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어느 순간 소리에 예민해졌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혼자 조용히 사색(?)에 잠길 시간이 많아서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스스로 풀 수 있었는데, 아이와 함께 하고부터는 소음에서 멀어지는 순간은 아이가 잘 때뿐이니 소음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감당해야 했다.


이제는 아이도 유치원에 가고 혼자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말수가 유독 적은 남편 때문에 아이가 자고 나면 집안은 말소리가 울릴 정도로 적막하지만, 부모 싸움소리의 환청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나는 누군가 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세상 제일 재밌는 것이 불구경과 남의 집 싸움구경이라 하는데 그것도 옛말이다. 자신들의 억울함 혹은 화풀이를 위해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순간, 우리가 모르는 어느 작고 연약한 존재는 두 귀를 틀어막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공포를 참고 있을 것이다.


많은 부모 여러분 싸우고 싶다면 아이가 없는 곳에서 싸우길 바란다. 욕을 하든 서로 치고 박든 상관은 없다. 욕배틀을 하든 UFC를 하든 아이가 없는 곳에서 본인들의 억울함을 피력하시라, 가끔 아이가 보란 듯이 더 소리를 지르고 아이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편을 들어달라는 부모들도 있다.


훗날 성인이 된 아이의 정신건강을 위해 아이의 남은 삶이 고통스럽지 않길 바란다면 5초만 숨을 쉬고 배우자 한 사람은 밖으로 나가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추신 : 가부장적인 경상도 남자와 억센 전라도 여자가 만나 어떤 불같은 사랑을 했길래, 수십 년을 그렇게 싸우고도 지겹지도 않은지, 올해 결혼 39주년이 되어 간다.


당시 싸움의 이유는 흔히 집안에서 겪는 생활고, 의심, 성격차이 등등 다양한 문제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알까? 가슴에 묻고 살 정도로 잊고 싶은 기억 속에는 나와 동생도 함께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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