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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 Oct 10. 2024

아이 덕분에 정신과를 갔습니다. 2

육아우울증으로 감춰진 나의 본질적인 우울증과 싸우다.

아이를 낳고 육아우울증이 온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있다. 나 역시 육아우울증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이를 낳으면서 겪는 신체의 변화와, 수면부족 피로감, 세상 조그맣고 귀엽지만 한편으론 가엽게까지 느껴지는 한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유독  외로움이 컸다. 그리고 모성에 대한 강요 아닌 강요도 견딜 수 없었다. 물론 과거 기성세대들이 겪던 육아와 비교하면 그 온도 차는 180도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주 양육자에게 요구되는 부모의 기준은 더 엄격해진 것 같다.


모유수유와 분유에 대한 논란 모자동실을 비롯해 아이를 많이 안아주어야 한다는 주장과 안아주면 손이 타니 울어도 그냥 두어야 한다는 전문가들, 수면 분리는 언제 해야 하며 언어 자극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린이집은 몇 개월에 보내는 게 맞고 블라블라...


더 나아가 발달상황에 따른 성장과 인지 능력까지... 고민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참고로 우리 아이는 키와 몸무게가 하위 10% 내외이다. 이것 만큼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감정 육아라 해서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되, 절대 매를 들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되며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상전화 되면서 무너지는 집안 내 권위와 더 나가아 교권 문제까지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나는 노후 준비가 안 돼 아직까지도 먹고살기 바쁜 친정과,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라는 시댁의 시선으로부터 노산이니 아이를 빨리 낳으라는 압박을 받아야 했다. 나 역시 결혼을 하면 아이 한 명쯤은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다니던 회사까지 관두고 임신에 전념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의무와 책무는 부여받았지만,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말 그대로 독박 육아를 해야 했다.  


만 35세, 사회적 통념 상 나는 노산이었고 사회생활로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나이만 먹은 노산의 산모는 육아에는 초짜였다. 내가 의지할 곳이라곤 정보의 바다 유튜브 밖에 없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유튜브를 보면서 육아를 하다 보니 이 말이 맞는 건지 저 말이 맞는 건지 선택장애까지 와서 엄한 아이만 잡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잘하려고 노력하던 여러 행동들을 향해 조롱 섞인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아이는 대충 키워야 한다며, 특히 남자아이는 카탈스럽지 않게 키워야 한다고 조언하면서도 외출 시 양말이라도 안 신기면, 엄마 자격이 없다는 듯 다그쳤다.


한 시간 동안 땀 흘리며 만든 이유식을 입에도 대지 않고 푸—하고 내뱉는 아이에게 시판 이유식을 사 먹이면 " 시판보다는 엄마가 직접 해주는 게 맛있는 게 아니겠니, 애가 안 먹으면 더 맛있게 하려고 노력을 해봐... 너희는 사 먹는 거 좋아하는데 사 먹는 게 다 좋은 건 아니란다..."


젠장할!  맛있게 만들면 내가 이유식 장사를 하게요...!


그들이 누구라고 꼭 집어 말하지 않겠다. 왜냐면 조언을 빙자한 간섭은 비단 가족에게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외로웠다. 나 같은 건 엄마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매일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줏대가 없을 만큼 남의 말에 잘 흔들렸기 때문이다. 특히 조언을 가장한 비난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나의 주적은 바로 나였으니깐..


 가끔은 극단적이지만, 아이를 안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나도.. 그런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때까지 변명 아닌 변명을 곁들여야 하는 불편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우울증을 정의하는 글을 보면 보통 출산 후 몇 주부터 시작되며, 뇌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과 호르몬 변화 어쩌고 하는 틀에 박힌 이야기들만 주룩 나열된다.


하지만 아이의 성향이나 발달에 따라(예를 들면 기적의 백일을 지나고 둘째 생각을 하는 엄마나, 미운 4살이 아닌 미친 4살 죽이고 싶은 5살 등을 겪으면서 우울감을 뒤늦게 겪는 경우도 있다.) 엄마가 겪는 심적 스트레스는 극과 극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 우울증은 언제든지 주 양육자 옆에 도사리고 있다.


오죽하면 자식걱정은 관에 들어갈 때 끝난다는 말이 있을까..


간혹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육아우울증이란 걸 모르고 자책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볼 수 있다.


" 우리 아이는 6살인데 육아우울증 올 때가 아닌 거 아니에요? "


혹은..


" 언니 저는 엄마 자격이 없나 봐요, 분노조절 장애인지 아이만 보면 감정이 조절이 안 돼요 제가 이상한가 봐요..."


" 우리 아이는 정말 예민해요..! 감당이 안 돼요 " 등등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오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엄마 자격이 없다는 자책만 가진 채 꾹꾹 마음을 눌러 다스리고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엔,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동안 잠재 되어있던 우울감들의 촉매가 되어 폭발한 케이스이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살고 있던 내면아이들이 동굴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나는 정신의학에 대한 학문적 깊이도 없고, 심리상담사도 아니다. 단지 여러 권의 육아서와 수십 권의 심리서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통해 내면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유리조각 같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려는 용기가 생겼다.


나 자신에 대한 상처와 괴로움은 타인이 아닌 내가 직접 찾아서 방법을 찾아내야 비로소 완치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과 진료와, 그에 따른 약 처방, 내 아픔을 드러낼 수 있는 타인과의 상담 혹은 독서나 운동 더 나아가 오롯이 나를 드려다 볼 수 있는 명상까지… 내 안에 곯아 있는 상처 덩어리는 내가 직접 해결해야 비로소 완전히 나를 향한 분노로부터 관해 했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한편으론 인생을 살면서 상처라는 것이 온전히 아물고 완전히 나을 수 있을까? 우리는 결국 아픔과 불안 슬픔을 함께 가지고 나가야 할 인생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다.


정확히 10년 전 그날 이후 나는 공황장애를 앓아왔다. 아니 내 증상을 스스로 공황장애라 진단해 버렸다.

하지만 정신과를 방문한 후 나는 공황장애가 아닌 극심한 불안장애를 앓고 있으며, 여러 가지 트라우마에 비추어 보아, 그런 불안장애를 갖는 것은 당연한 과정 중 하나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매번 엄마에게 듣던 " 넌 참 이상한 애야 "라는 말이 수십 년 간 더러운 때처럼 붙어있었는데, 따뜻하고 깨끗한 물에 씻겨나간 듯 그 결박에서 자유로워졌다. 그 어떤 약보다 몸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사명감 넘치는 일이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성을 대표하는 직업이어서 일까? 의사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한 말 한마디에 나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가 의사 가운을 입은 점쟁이나 혹은 사기꾼이었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렸을 것이다.


넌 잘못이 없어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아팠을 거야... 그건 당연한 감정이야.


이 말 한마디를 듣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 우리 아이 덕분에 찾은 정신과에서 나는, 비로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서 정의 내려진 이상한 아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감정들처럼 너무나 많은 내면아이가 살고 있다.


가끔씩 그 아이들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향한다. 분노와 괴성 그리고 회피.. 가장 치사하고 잔혹한 말로 아이를 불안에 빠트린다.


너 자꾸 이러면 엄마 할머니 집으로 가버린다..

아이는 내가 준 불안으로 또다시 나와 같은 삶을 반복하겠지? 그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어떻게든 지긋지긋한 자기 미움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몇 년간 내려놓았던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작가라는 꿈을 다시 한번 가져보기로 했다.


가장 첫 번째 할 일이 바로 나를 내려놓고 사랑하는 일, 내 안에서 울고 있는 내면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 정성스럽게 씻겨주고 위로해 주기.


앞으로 글을 쓰며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해 줄지 고민 중이다. 이 글을 언제까지 쓸지 모르겠지만, 내 소중한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치유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갈 것이다.


먼지 쌓인 키보드 위 따각거리는 소리와 동글동글한 활자들로 내 상처의 고름들을 치료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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