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우울증으로 감춰진 나의 본질적인 우울감과 싸움을 시작했다.
아이가 30개월이 되던 무렵부터 몸의 증상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머리가 어지러웠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매우 피곤했다. 잠을 많이 자도 푹 잔 기분이 없이 하루종일 어깨에 큰 곰 한 마리를 매달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어디가 아프다고 표현하기 힘든 매우 불쾌한 기분이었다.
남편은 토악질 조차 하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는 나를 향해 무미건조하게 병원에 가봐라고만 말했다.
막상 병원에 가면 내 증상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내과에 가서 속이 좀 많이 울렁거리네요, 라면 위내시경을 권하면서 위장약을 주었고 이비인후과에 가서 머리가 좀 어지러워요라고 하면 이명 검사를 해보자며 청각검사실로 인도했다.
결과는 전부 이상 없음! 참을 수 없는 울렁거림과 두통이 2주 이상 시작 되자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또래보다 예민한 아이는 어린이집을 거부하고 울고 보채고 울고 보채고를 반복했다.
엄마를 하루에 수백 아니 수천번씩 불러 되는데, 훗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기억될 그 엄마라는 단어는 내게는 지옥에서 온 사자의 목소리 같았다. " 그만 좀 부르라고 씨팔!!!! " 그날 아이에게 처음 욕을 했다.
아니 아이보다 내 빌어먹을 몸뚱이에게 한 자조 섞인 욕이었다. 아이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내 눈빛과 표정 목소리와 씩씩거리는 분위기에서 자신을 향한 분노라는 것쯤은 쉽게 알았을 것이다.
아이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전보다 더더더 센 강도로 울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머리를 감싸 안고 엉엉 울었다. 지겨워 지겨워 죽겠어라고 속으로 되뇌었고, 아이는 드레스룸까지 날 따라와서 엄마엄마를 외쳤다. 그리고 그날 밤 새근새근 천사처럼 잠을 자는 아이 옆에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했다.
정신과.... 우울증 죄책감 육아 엄마 우울증 육아우울증 등 생각나는 단어들만 반복적으로 나열했다.
나는 알았다. 나는 우울한 것을 그리고 외롭고 힘들다는 것을...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다는 것을...
하지만 아이가 있기 때문에 살아야 했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내 부모처럼 아이를 키우고 싶진 않았다.
무언가 결심이 필요했다.
나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로컬 병원이나, 아이 관련된 정보는 맘카페에서 얻는다. 맘 카페에서 활동하는 엄마들의 별스러움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다 보면 나는 정말 최악의 엄마가 된 것 같은 죄책감이 올라오기 때문에 맘카페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절박했다. 남편에게도 안 하던 욕을 30개월짜리 아이에게 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나는 맘카페의 정보를 통해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신경정신과를 갔다.
정신과가 주는 단어의 압박감, 최근 현대인들의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로 인해 정신과 방문에 대한 이미지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정신과가 주는 압박과 두려움 약물에 대한 거부는 오랜 가시처럼 사회 속에 박혀있다. 그 단어가 주는 선입견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정확히 10년 전 그날 이후 나는 정신과를 갔어야 했었다. 하지만 나는 참고 또 참았다. 견딜 수 있을 때 까지 계속..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일까? 멘털이 약한 걸까? 결국 나는 나약한 사람인가? 약물 복용은 한번 시작하면 끊기 어렵다는데, 약물 부작용은 어떻고... 그간 정신과를 가지 못했던 모든 이유들이 파도처럼 휩쓸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살아야만 한다. 하루종일 울렁거리는 뱃멀미와 숙취를 가지고 아이 밥조차 제대로 차려줄 수 없는 이 시기를 그냥 정신력으로 버티기엔 너무 가혹했다.
나는 아이에게 욕을 했고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내 삶이 모조리 먼지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매일밤 기도했다. 자책과 괴로움 그리고 자기 연민이 반복되었고 나의 스트레스를 최고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30개월 아이에게도 늘 피곤에 지쳐 일을 마치고 오는 남편에게도 먹고살기 바쁜 친정에도 딩크족인 제일 친한 친구에게까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침묵 속 고통은 나를 갉아먹었다.
신경정신과의 내부는 생각보다 클래식했다. 2000년대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와 그 와중에도 단정한 느낌, 대기자는 나를 포함해 한두 명 정도? 마음의 평안을 주는 음악이 나오지도 결벽스러울 만큼 화이트 톤의 모던함과 여백의 압박감도 없었다. 무엇보다 데스크 직원들은 건조했고 별 반응이 없었다.
나를 동정하지도 예의없지도 않은 공과 사의 딱 그즈음... 나는 신분증을 복사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신경정신과와 정신의학과는 살짝 병원의 성격이 다르다. 나중에 설명하겠다. 그래서일까.. 신경정신과의 진료실 문은 항상 열려있다.
동네 내과만 가더라도 진료실 문을 닫고 들어가는데, 내 마음을 설명하는데 문을 열어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나중에 병원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내 순서가 되자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고, 걱정과 달리 인자하게 생긴 중년의 선생님 한분이 앉아 계셨다.
나는 차근히 내 몸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30개월 아이라도 된 듯 선생님께 몸의 상태를 말하면서 약간의 어리광을 부렸다. 앓는 소리일 수도 있고 투정일 수도 있지만, 지금 나를 알아줄 사람은 이분 밖에 없다는 느낌이 강렬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억울한 느낌에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많아졌다.
선생님은 내 말을 끊지 않았다. 그리곤 선생님께서 나지막하게 한마디 하셨다. " 흔히 볼 수 있는 신체화 증상이네요 "
흔히 볼 수 있더라... 그간 몇 달 동안 울렁거림과 어지러움 무기력함 속에서 이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3차 병원 소견서까지 받은 내가... 한 것들은 뭐였던가... 허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선생님께서는 실제로 아픈 게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셨다.
"지금 엄마가 겪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불안감에서 몸이 반응하는 겁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정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환자분처럼 그 시기에 육아 스트레스로 많이들 오세요 그러니 약물치료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약물 치료 이력도 없으시고, 아직 초반이니 아주 소량만 써보도록 할게요 "
" 저기 선생님... 저는 육아스트레스가 아닌 것 같아요..."
" 네?"
" 저는 오래전부터...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이 아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