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넘쳐 맥시멀리스트가 되었다.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거식증 환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떠오른다. 다큐의 내용은 눈에 띄게 깡마른 젊은 여성이 집안에 틀어박힌 채, 음식에 집착하고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면서 삶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싱그럽고 건강했던 그녀가 거식증에 걸리게 된 요인 중 하나는 회사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고 한다. 회사에서 겪은 스트레스와 동료들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집안에만 머무르게 되었고, 음식에 집착하며, 먹고 토하 고를 반복했다.
솔직히 그때는 깡 마른 장작처럼 생기 없어 보이는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음식을 집착하고 먹는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토하는 건 왜일까, 공허함을 음식으로 채운다는 것은 자주 듣던 소리였지만,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는 강박증을 그저 다이어트나 몸매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음식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 입이 워낙 짧은 것도 있었지만 엄마가 군것질거리를 잘 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자 사 먹게 돈 달라고 하면 단돈 백원도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았다.
과자나 음료수 초콜릿 같은 간식은 소풍날이나 어린이날에만 먹을 수 있었고, 간간히 용돈을 줘서 사 먹긴 했지만 한창 클 나이에 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간식은 학교 앞에서 파는 불량식품뿐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유달리 배고프다는 말 한마디에 반응했다. 가서 떡볶이든 김밥이든 사 먹으라며 천 원짜리가 몇 장씩 나왔다. 나와 내 남동생 모두가 어릴 적부터 작고 왜소했던 탓인지 배고프다는 말에 민감했었다.
나는 워낙 입이 짧아서 그 말을 잘 이용(?) 하지 못했지만, 남동생은 배고프단 말로 부족한 용돈을 쏠쏠하게 채웠다. 엄마는 장사를 하는 탓에 우리들 끼니를 잘 못 챙겨 주는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지갑에서 천 원을 훔친 후 배가 고팠다고 말했던 동생의 눈물 탓인지 배고프단 말엔 후하게 용돈을 주셨다.
하지만 먹는 것 외에 물건들에 대해서는 절대 쉽게 사주는 법이 없었다. 만약 어딘가에서 우산을 잃어버렸다면, 집에 굴러다니는 해지고 낡은 우산을 쓰던지 아니면 그냥 비를 맞고 다녀야 했다. 내게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앞으로 그 물건을 다시 쓰지 못한다는 선전포고와 같았다.
옷이나 신발은 고사하고, 학교에 가져가야 할 크레파스며, 색종이 풀 같은 준비물을 살 때마다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돈 달라는 말에 유난히 짜증과 화를 내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까지 생생하다. 풍족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엄마에겐 매일 용돈을 타가던 아버지의 만원만 소리와 준비물 사게 돈줘! 라는 말이 오버랩 됐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물건에 대해서 집착이 심했다. 물건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래서 나는 내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달라졌다. 매일 내 핸드폰은?? 이 단골멘트다...)
고등학교에 진학 후 엄마가 주는 용돈을 내 맘대로 계획할 수 있게 되면서 점심 급식비를 떼먹고 밥 대신 만화책을 밥 대신 CD를 밥 대신 문구류를 샀었다. 밥은 굶거나, 컵라면으로 때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짓인데, 나는 그렇게 내 소유의 물건을 가지는 것을 행복으로 느꼈다.
나의 잘못된 경제관념은 대학 진학 후 첫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돈을 흥청망청 써버렸던 것이 그 시초다.
매일 단벌신사로 대학교까지 교복 아닌 교복을 입어야 했던 나는 한 달 동안 힘들게 고기판을 갈아 주고받은 돈을 들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두타 밀리오레 APM 이 성행하던 그 시절 60만원에서 50만원을 옷값으로 날려버렸다.
날렸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옷을 자주 사보지도 못한 내가 그저 그날의 기분대로 이 옷 저 옷 마구잡이로 사다 보니 정작 내가 입을만한 옷은 찾을 수 없었고, 기분만큼은 하늘로 승천했던 그날 이후, 그 옷들은 그대로 옷장 안으로 직행했다. 그나마 부모님께 10만 원 용돈을 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이후로도 나의 헛돈질은 계속되었다. 돈을 계획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기분대로 순간의 감정대로 썼다. 어릴 땐 신용카드가 없어서 돈을 다 쓰고 나면 일주일 넘게 차비만 가지고 다니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있으면 다 써야 직성이 풀렸고, 없으면 그냥 안 쓰고 참을 수 있었기에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신용카드를 만들고부터는 나에게 계획된 소비란 없었다. 부모님은 그때까지도 내게 돈 아껴 쓰라고 잔소리하면서도 정작 내 이름 앞으로 대출을 받곤 했다. 돈을 모으려는 시도를 몇 번이나 했지만, 그때마다 부모님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티끌은 태산처럼 엄마에게 이체되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것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적이 없다. 엄마는 항상 사고 친아빠의 뒷수습을 해야 했고, 아주 어린 시절 빼고는 나는 항상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느꼈기에 티끌은 어차피 티끌일 뿐 이왕 가난한 거 쓰고 싶은 거 다 쓰고 죽자라는 마인드였다.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고도 모은 돈이 없을 때는 나의 잘못된 경제관념만을 탓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잘못된 경제관념만큼이나 나의 외로움과 슬픔이 크구나..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던 다큐멘터리 속 여성처럼 나는 물건 사는데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고.. 를 반복하면서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집안은 불필요한 물건들로 가득 찼고, 그것은 결혼 이후 더 심해졌다. 출산 이후 늘어난 체중과 망가진 몸매 기미 가득한 피부와 푸석한 머리카락까지 예전에 월급을 몰빵 하며 살던 화려한 나의 삶은 없고 말 그대로 망가진 여자도 뭣도 아닌 엄마라는 제3의 성(性) 한 사람이 아이와 함께 우울한 코시국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몇 달 되지 않았을 무렵 시어머니는 내게 둘째를 임신했냐며 핀잔을 줬고, 요즘 사람들은 관리를 잘하는데, 라며 남편과 나를 싸잡아 욕했다. 나는 슬펐다. 아이를 낳은 것이 환희와 행복 속에 허우적 되는 꿈같은 일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 감정들이 공존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중에 가장 괴로운 건 후회였다. 그 외의 감정들은 내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었고, 내 예상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나는 나를 위한 물건을 사는 대신, 아이를 핑계로 물건을 사대기 시작했다. 필요한 것은 당근이나 렌털을 하기도 했지만, 노산에 낳은 아이를 누구보다 애지중지했기에 아이에게만큼은 좋은 옷, 좋은 먹거리,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 싶었다. 정작 아이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사랑은 사랑이고 물건은 물건이라고 합리화했다.
그것은 명품을 사는 소비심리와도 같다. 내 아이만큼은 이 정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엄마로서의 나의 가치,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그 가치를 스스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어떤 날은 아이 물건을 쇼핑하느라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남편의 월급만으로도 생활하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달리 쓸데없는 곳에 돈을 한 푼도 쓰지 않는 사람이라 그나마 이런 삶도 겨우 충당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를 위한 선택은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서재로 쓰던 방이 아이 물건으로만 가득 채워진 창고가 되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끔찍한
짐들의 더미 속에서 나는 백기를 들어야 했다.
나와 아이 남편은 그 집에서 짐이 주는 불쾌한 기운에 눌려 자주 아팠었다. 마치, 집에 살고 있는 우리의 에너지를 짐들이 잠식해 버린 것만 같았다. 그때 정리정돈에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한참 화제였고, 나는 정리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깔끔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정리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이사를 오면서 정리 업체의 컨설팅을 받으며 정말 많은 짐들을 버리고 나눔 했다. 거의 새책에 가까운 아이의 전집을 나눔 하면서 솔직히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재활용되는 나눔이라는 미학을 느껴보고 싶었다.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물건을 나눈다는 것은 생각보다 뿌듯한 일이다. 사람들이 주말마다 틈틈이 봉사를 나가는 이유도 조금 알 것 같다.
정리정돈이라는 간단한 행위에 기백만 원의 돈을 투자하면서 나는 깨달은 것이 많다. 여전히 나는 물건을 사고 있지만, 지금은 꼭 필요한 것만 사려고 한다.
나는 어릴 적 받지 못한 사랑과 공허함을 불필요한 물건들로 채웠었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마치 전쟁을 앞두고 마트에 가는 비장한 심정으로 물건을 사고 채워 넣고 있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필요할까 봐 필요 없는 물건들도 살 때 왕창 사서 쟁여두고 예쁜 포장지, 박스, 종이백조차 버리지 않고 집착했었다.
우울증을 앓고 집안일이 지겨워진 적이 있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집안에 갇힌 죄수가 된 기분이었다. 치우면 아이가 와서 또 어지르고 몇 시간을 치우면 단 몇 분 만에 난장판이 된 집안을 보고 악을 쓰며 운 적도 있다. 주말 하루 밥하고 설거지하고 밥하고 설거지하면 어느새 밤이 되어있는 생활도 나에겐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저 내 몸하나 책임지면 되는 소박한 삶이 어느새 누군가의 끼니와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에 눌려야 했다. 아이의 물건을 나눔 하고 정리하고, 집안을 정리하면서 집안에 비워진 물건만큼 마음에 채워지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정리에 대해 나만의 원칙도 생겼고, 충동적으로 산 것이 있다면 불필요한 물건은 하나둘 버리기도 한다. 혹자는 어질러진 방안이 내 머릿속과 같다는 말도 했고, 또 어떤 책에선 집안일이란 인생에서 돌고 도는 악몽이 아닌 자신을 위한 접대라고 표현했다. (살림지옥해방일지 中)
아직도 나는 갈길이 멀다. 하지만 요즘은 주변 지인들이 집에 와서 물건은 많은데 제자리를 잡은 것처럼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되어있다는 말을 할 때면, 나의 노력들이 헛수고는 아니구나 싶다.
이젠 사랑하는 아이가 커가는 만큼, 미래를 위한 재테크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모으는 돈이 없고 나가는 돈이 더 많지만,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천하다 보면, 모으는 기쁨을 느끼는 날이 오지 않을까?
지금은 나누는 기쁨을 열심히 실천 중이다. 이젠 소비보다 공허한 마음을 나눔으로 채워야겠다.
오늘도 나는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청소한다. 정리에 관련된 책을 보며 메모하고 공부한다. 이런 시간들이 허투루 쓰는 시간이 아니길 나 자신에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