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 덕분에 정신과를 갔습니다. 8

불확실성은 불안장애에 쥐약이다.

by 윤이


2025년 새해 첫 글.

지난 12월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던 겨울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남편이 폭염살인이라는 책을 읽은 후 폭염으로 죽는 사람이 사건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며, 온난화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열변을 토했다.


올 겨울이 춥지 않은 것도 온난화 때문이라고.. 사소하다면 사소하리 만큼 부부간의 사적인 대화도 뜸해질 무렵 아이를 재우고 티비를 보고 있었다.


밤 10가 넘은 무렵 예고에 없던 갑작스러운 대국민담화에, 의아한 것도 잠시, 다소 고압적인 자세의 대통령은 국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며 말미엔 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계엄이라는 두 글자를 언제 들었던가? 한국사 능력시험을 공부하면서 잠깐 본 것이 그나마 최근에 본 단어일 것이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입이 벌어진다. (개인적인 경험)


입이 채 다물어지기도 전에 포고령이 떨어졌다. 무시무시한 단어의 향연 처단 금지 척결 등등... 누군가를 향한 악랄한 증오가 없다면 일상을 살면서 직접 들어보기 힘든 단어였다.


계엄령인지 계몽령인지 계엄몽인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에서 느껴지는 꿈같은 현실을 깨준 것이 바로 포고령이었다. 갑자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재작년 어느 날 해프닝처럼 지나갔던, 아침의 한바탕 소동이 떠올랐다. 주변에서는 딱히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그날의 재난문자는 한동안 트라우마처럼 내 불면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북한이 미확인 발사체를 쏘았다며 아침부터 아이와 노약자를 대피시키라던 그 문자의 떨림 삐익——하는 쇳소리 같은 불쾌한 알림음은 고막이 찢어질 듯 울려댔다.


상황 판단을 하기 전에, 열린 창문사이로 민방위 훈련 차에서 흘러나오는 경고 방송과 사이렌소리 대피라는 단어, 티비 속 떨리는 목소리의 뉴스 앵커까지 나는 그날 몇십 년 만에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몇 분 뒤 비상 해제 문자가 왔고, 미확인 발사체는 북한의 인공위성이라는 말에 허탈감 보다 속았다는 괘씸한 마음이 올라왔다. 이것이야 말로 안보를 핑계 삼은 불안 마케팅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이후 핵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고 뉴스를 주시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계엄에 관련된 예고는 국정감사에서 몇 번씩 오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늘 그렇듯 우리의 일상은 정치와 멀어져 있었고 특히 우리나라의 정치는 양비론이 강해서 좌우... 혹은 중도로 분류되는데, 정치색을 밝히는 것에는 소극적이라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중도라 칭하는 것 같다.


개인 적인 생각으로 중도란 말은 정치에 무관심하단 말 뒤에 숨기 좋은 방패 같다. 물론 이는 거대 양당 체제 속 정치의 다양함 선택권이 없는데 나오는 영향도 있다.


이야기가 많이 샜다. 대피 문자의 해프닝 그로 인한 불안함은 단순히 나 같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예민함으로 포장되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계엄 이후 국가 권력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으며 내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까지 매일 새벽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신경정신과에서 받은 약도 소용없었다. 매일 뉴스를 붙잡고 있었고 하루라도 놓치면 순식간에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차라리 외면해 버리고 싶었지만,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 국가의 불확실성에 관한 불안은 나에게도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사건사고... 폭도라 불리는 사람들의 무자비한 폭력


모자이크를 했지만(폭력이 아닌, 폭도의 얼굴을...) 날것의 영상으로 매일 반복적으로 보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외면할 순 없었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 그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었기에.. 단순히 마음에 안 들면 이민이라도 가야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명상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글을 쓸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일까..

신체화 증상은 종종 나타났다.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타인으로 인해 크게 타격이 없었던 남편이 뉴스를 보며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일종의 허탈감 같았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나라걱정이란...


이후 정신과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안 그래도 대기가 긴 병원에서 계엄 이후 1~2시간 대기는 기본이었다.

계엄 이후 내란성 불면증 내란성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보았다.


요즘 읽고 있는 애착과 관련된 육아서가 있다. 육아서라고 구분 짓기는 그렇지만, 한 인간의 일생이 어린 시절 애착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전제로 쓰인 책이다. <정서적 흙수저 정서적 금수저> 육아하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최성애 조벽 박사님이 쓴 책인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국가가 부모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 국가, 정서적 풍요로움을 가득 채워 국민 한 사람의 행복을 추구해 주는 것은 너무 몽상적인 해석일까..


책에서는 정서적 흙수저에 대해 미래에 대해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판단하고 주저앉는 사람이 정서적 흙수저이며 애착손상은 정서적 흙수저가 될 확률을 높인다고 했다.


비유하자면, 국가는 국민에게 애정과 보살핌이 아닌, 폭력과 무자비한 결핍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불안의 끝은 무엇일까, 계엄을 주도했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 대선이 열린다고 이 불안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 같진 않다.


이젠 개인의 고통을 넘어 국가가 주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마주해야 한다. 어쩌면 한 인간의 불안과 정서적 허기는 한 국가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 속에 살아가는 부모들의 역할이 모여 아이를 양육하는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벌써 3세부터 교육의 격차 빈부의 격차가 시작된다고 한다. 국가는 그것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방관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정서적 허기와 공허함 낮은 자아개념 속에서 불안감을 키워간다.


이는 몇 년 후 사회적 문제가 되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우울과 괴로움 속에서 자괴감을 느낀다. 건강하지 못한 국가는 생명력을 잃는다. 생기와 에너지가 없는 국가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불안감은 예상치 못했던 일을 마주하는 것보다, 내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이 안전하지 않았을 때 더 크게 발화된다. 국가가 국민을 공격하리라고 결코 생각지 못했던 평범한 어느 일상 속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마음속 깊은 곳에 한 덩어리의 불안을 안고 살게 되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미래란 무엇인가? 대학 학부 시절 첫 강의 시간에 교수님의 첫 질문이었다. 나는 아주 보편적이고 평이한 대답을 한 기억이 난다. 수험생을 벗어난 새내기 대학생이 국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면서, 우습게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열심히 찾는 중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충분한 보살핌과 지지를 받으며 안정된 애착 속에서 커야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신뢰감을 형성한다. <정서적 흙수저 정서적 금수저>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믿음이 바탕되어야 한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애착 손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예방과 재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원불변의 색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라도

정서적 안정감은 찾을 수 있다고...


나는 그것이 민주 정의를 외치는 시민들의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큰 울림을 만들어낸 광장의 메아리에서 보았다. 차가운 눈과 비를 맞으며 비닐 포일을 덮어쓴 키세스단에서 보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나는 소극적이고 나서는 것을 하지 못해 광장의 마이크를 들지는 못하겠지만, 내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 삶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생각해 볼 계획이다.



keyword
이전 07화아이 덕분에 정신과를 갔습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