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는 모두 5명이다. 나와 아내, 중학교 2학년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 그리고 장모님까지.
퀸 사이즈의 침대가 안방에, 나머지 3개의 방에 각각 싱글 사이즈의 침대가 있다.
하지만 그중에 침대 2개는 제 역할을 못하고 매일 밤을 홀로 보내고 있다.
나와 아내, 딸과 아들은 15년째 안방에서 합숙 중이다. 사실 반려견 승리까지 총 5개의 생명체가 한 방에서 다 같이 잔다. 침대에 2명(+승리), 바닥에 2명이 눕는다. 아내는 침대, 나는 바닥이고 파트너는 계속 바뀐다.
딸은 중1이 되자 한 달 정도 방에서 혼자 잤다. 사춘기가 한 달 만에 끝난 건지 한 달 후 스스로 안방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초4 때 침대를 사주고 혼자 재워보려 했지만, 새벽 1시면 잠이 깨서 안방으로 오기를 일주일 정도 반복하다 포기하고 다시 같이 잔다. 아들은 보통 10시 반쯤 먼저 잠자리에 든다. 초6인데도 아직 엄마나 아빠가 방에 같이 있어야 잘 수 있다. 딸은 방에 있다가 자정이 되면 자러 온다.
다른 가정들을 보면 아이들이 크면서 점점 부모와의 교류가 줄어들다가 초6~중1이 되면 거의 단절되는 것 같다. 늦어도 그때쯤이면 방에서 혼자 자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난 주말 만난 후배 가족은 중3, 초6인 아이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올여름휴가는 안 가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중3 아들은 아프거나 다쳐도 병원에는 반드시 혼자 간다고 했다. 얼마 전엔 친구들과 놀다가 다쳤는데 응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를 할 정도로 독립적이라고 한다. 아직 어린데 간섭받기 싫어하여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아들이 너무 걱정되고 속상하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병원은커녕 알약도 못 먹는다. 집 앞 편의점 외에 혼자서는 가본데도 거의 없다. 우리 가족은 몇 달 전에도 강릉여행을 다녀왔다. 유튜브를 찍으며, 맛집도 가고 박물관, 노래방까지 친구들처럼 신나게 어울려 놀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다 같이 잔다.
미국은 수면 교육이 매우 철저하여 신생아 때부터 독립적인 잠자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불과 4~5살만 되어도 부모가 자녀방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잠들면 불을 끄고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아이들이 이제 체격이 커져서 엄마까지 세 명 모두 키 차이가 3cm 이내로 엇비슷하다. 침대는 퀸 사이즈라 2명은 충분히 잘만하지만 바닥은 장롱이 있어서 싱글 사이즈 정도의 폭밖에 안 된다. 어릴 때는 아이들이 몸부림을 쳐도 잠자는데 큰 지장이 없었는데 이제는 다리나 팔로 공격을 받으면 깜짝 놀라서 벌떡 깰 정도로 타격이 크다. 너무 아파 짜증이 확 나서 아이 발을 반대로 확 넘겨버리지만 아이들은 절대 잠에서 깨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나만 잠을 푹 자지 못해 아침이 피곤하다.
하지만, 숙면의 방해, 독립성 저하 등의 단점과 우려에도 우리는 아이들이 원할 때까지 같이 자려고 한다.
사실 깨어있는 동안 가족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는 쉽지 않다. 평일 저녁 모두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밤 10시가 넘는다. 주말도 아이들은 학원을 가거나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 오늘 하루가 신나고 즐거웠는지, 힘들고 우울한 마음이었는지 가족끼리도 속속들이 알기가 쉽지 않다.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자면 하루에 한 번은 모두가 모이는 기회를 갖게 된다. 비록 모두가 깨어 있는 날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지만(아들이 주말에는 늦게잔다) 우리는 불을 끄고 잡담을 나누는 것을 즐긴다.
농구 학원에서 골을 넣은 아들의 얘기, 기말고사에서 실수를 해서 울었던 딸의 얘기, 직장에서 사고 치고 상사에게 혼난 아내의 얘기, 그리고 유튜브에서 봤던 재미있는 얘기나 주말 계획 등도 같이 얘기하며 여고생들처럼 까르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금방 잠들 때도 있지만 길면 30분 이상 떠들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랑 같이 잔 기억이 전혀 없다. 아빠의 품에 안겼을 때의 느낌과 냄새가 궁금하다.
그래서 난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매일 밤 아이들을 안아준다.
중학생 딸과 아빠가 같이 자는 건 안 좋은 거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도 좋고 딸도 좋으니 딱히 안 좋은 점은 아직 못 찾겠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와 싸웠던 일, 선생님께 혼났던 일, 숙제를 안 했거나 지각한 일 등 안 좋은 일들은 모두 비밀이었다. 시험을 잘 보거나 칭찬을 들었던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가끔 엄마에게 얘기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부모님께 좋은 모습만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안 좋은 일들은 숨기게 되었고, 솔직한 내 마음을 얘기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어른이 보기에는 너무 소소하지만 아이들에겐 매우 중요한, 어쩌면 전부인 일상의 사건들.
작은 거 하나도 마음속에 남아서 짐이 되고 괴롭지 않도록 마음을 열고 얘기할 수 있는 부모이고 싶다. 지혜가 부족해서 대단한 걸 가르쳐 줄 수도 없고 돈이 많아서 큰 재산을 물려줄 수는 없지만 가장 먼저, 가장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화목한 가정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