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편씩 글을 쓴다고? 그게 가능해?
매일 회사 가기도 버거운 평범한 내가 한 달간 빠짐없이 글을 쓴다는 건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근데 난 무모한 일을 쉽게 시작하는 편이다. 금방 후회하기도 하지만.
대학생 시절 유럽배낭여행 갔을 때가 생각난다.
방학을 맞아 호기롭게 책 한 권 들고 런던에 도착한 나는 첫날부터 정해진 숙소 따윈 없었다.
내가 가진 건 왕복 항공권과 유레일패스가 전부였다.
어찌 됐건 계획된 경로는 아니었지만 한 달간 무사히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런 P성향의 나는 더 강력한 P성향의 아내를 만나 할 수없이 휴가계획을 도맡아 세우고 있지만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에 맞춰 예약한 호텔이 막상 수영장이 없어서 절망한 일이 있을 정도로 미리 계획을 세우는 건 여전히 나에게 쉽지 않다.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춰 체계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 짜인 틀 안에서 움직이는 건 지루하고 흥분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한 달간 매일 글쓰기라는 계획과 틀은 시작부터 스트레스다.
오늘은 무모하게 시작했지만 내일 갑자기 글이 쓰기 싫어지면 어쩌지? 갑자기 약속이 생기거나 아픈 날은 어떻게 하지? 어떻게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삶에서, 아니 그보다 더 예측 불가능한 내 마음이 글쓰기를 미워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분명 포기하고 말 텐데.
하지만 비관적으로 생각하기엔 희망찬 새해가 이제 막 밝았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룰 수 있을 거 같고 머든 도전해 보고 싶은 작심삼일의 시작인 새해다.
그렇게 난 무모한 글쓰기를 오늘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설령 중간에 실패하는 날이 있더라도 늘 그렇듯 일단 시작은 해야겠다.
당장 다음 주까지 있는 3번의 회식 일정이 심히 부담이다. 집에 도착하면 10시가 훌쩍 넘을 텐데 무슨 수로 자정까지 글을 완성한단 말인가. 미리미리 주제를 정해 내용을 구성하고 1~2일은 앞서 글을 써나가야 한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당장 내일은 주제조차 정하지 못했다.
23년은 좀 더 여유롭고 평안한 마음을 갖자고 다짐했었는데 새해 둘째 날부터 또다시 쫓기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왜 글을 쓰려는 걸까.
나는 정말 글 쓰는 게 좋은 걸까.
진짜 나를 위해서 쓰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내 마음속의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정답이 있기는 한 걸까.
글 쓰는 게 좋다가도 귀찮아지고, 나를 위해서 쓴다면서 늘 사람들의 평가를 염두에 둔다.
작년 6월 브런치 작가가 되고 꾸준히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보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정성을 다해 퇴고하고 또 퇴고했다. 그렇게 한편을 올리며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여러 작가님들의 글을 보던 어느 날 내 글을 보는데 갑자기 너무나 형편없이 느껴졌다. 부끄러웠다.
스스로의 기준을 통과했다고 생각한 글만 발행했었는데, 이게 내 수준이라고 생각하니 글이 쓰기 싫어졌다.
지친 나를 위해 시작했던 글쓰기였다.
처음엔 재미있어서 썼다. 오랜만에 느끼는 아날로그 감성이 좋았다.
그러다가 있어 보여서 썼다. 취미가 머냐, 퇴근하면 머 하냐는 질문에 글을 쓴다고 하면 꽤 괜찮은 사람같이 느껴졌다.
촉촉한 이야기로 세상을 적시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가 작가소개에 있지만 우선 내 마음부터 충분히 적셔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도 좋고 있어 보이는 것도 좋지만 내 글이 진짜 내 마음인지, 내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나를 알아가고 나를 위로하며 나를 응원하는 오롯이 나를 위한 글쓰기로 돌아가야겠다.
글쓰기의 본질을 찾아가는 한 달을 기대하며 오늘부터 1일.
#글루틴 #팀라이트 #매일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