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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Jan 03. 2023

기억하라! 너는 누군가의 영웅이다!

2018년 11월. 태권도 학원을 다니 딸의 승급심사를 보러 갔다. 토요일에 부모님들을 초청해서 공개 심사를 진행했다.

태권소년, 소녀들은 50여 명 정도 었고 4학년이었던 딸은 고학년인 편으로 보였다.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주고 동기부여를 해주위해 약 20여 종의(일반적인 띠 중간중간 두 가지 색을 섰은 띠가 또 있음) 띠가 등급별로 나뉘어 있어 한 달 정도면 띠가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날은 파란 띠, 빨간 띠, 갈색띠, 검은띠가 다양하게 보였는데 초등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대부분 품띠와 검은띠였다.

그리고 50명 중 딸은 유일한 흰 띠였다.


어릴 때 수영학원을 다니다가 남들보다 좀 늦은 나이(?)에 태권도 학원에 막 들어간 직후였다.

아이들은 품세를 하고 격파를 하며 배운 기량을 맘껏 뽐냈다. 딸은 품세도 제일 짧게 하고 격파도 겨우 한 장만 했지만 씩씩하고 용감하게 임다.

체육관 벽면에 붙은 문구가 눈에 들어와 눈물이 핑 돌았다.

기억하라! 너는 누군가의 영웅이다!


가 작았을 때 아버지는 못하시는 것이 없어 보였다. 옷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가끔 놀러 가면 아버지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아버지는 축구도 잘하셨고 운전도 잘하셨다.

방학 때마다 가족여행으로 누나와 나를 데리고 전국을 다니셨다.

아버지는 어린 나의 영웅이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린 기억이 별로 없다.

특별히 성적이 좋거나 상을 받지도 못했다.

심지어 친구 따라 태권도 학원에 간 첫날 친구가 여자아이와 대련 중 코피가 터지는 모습을 본 이후로 태권도와는 시작하기도 전에 작별하고 말았다. 승급심사로 아버지께 이런 감동을 안겨드리지 못해 너무 아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늘뿐이 아니었다.

딸이 태어나 처음으로 병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만났던 그날부터. 처음으로 뒤집고, 처음으로 걷고, 처음으로 아빠를 불렀던, 그 모든 날 딸은 나의 영웅이었다.

뒤집고 걷고 말했던 그 순간이 다른 아이들보다 빨랐는지 늦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만의 영웅이 될 자격은 충분했다.


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셨을 거란  확신이 드니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를 속상하게 해 드린 기억만 또렷이 남아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거 같아 늘 죄송했다.

좀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었을 텐데...



50명 중에 가장 늦은 50번째 노란 띠 승급이었지만

부끄러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딸의 용기와 담대함이 내 온 마음을 따스하게 적셔왔다.

자녀와 함께하는 삶의 작은 순간, 자녀가 자라 가며 겪는 그 당연한 것들에 아버지도 기뻐하셨을 것이다.


딸의 승급심사를 보며 난 깨달았다.

 시절 나도 아버지의 영웅이었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글루틴  #팀라이트  #한달글쓰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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