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수능을 다시 보았습니다.
10년 만에 수능 보러 간 이야기
2024.9.19
대망의 2011학년도의 수능시험 당일이 되었다.
나의 부모님은 새벽같이 우리 집으로 오셨다.
평일이었던 것 같은데 회사원인 우리 아빠가 그때 어떻게 오셨었지?? 엇, 갑자기 이상하다...
아무튼, 나는 서울의 한 여고에서 시험을 쳐야 했고 우리는 새벽 일찍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택시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보고 우리 부모님을 차례로 보더니 대화를 시작했다.
"수능 보러 가나 봐요."
"네."
"아니, 얘가 좋은 회사를 때려치고 교대를 가겠다고 수능을 다시 본다네요."
엄마인지 아빠인지 갑자기 기사님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툭 내뱉었다.
나는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랬더니 기사님이 백미러로 나를 가만히 보시더니
"입으로 벌어서 먹고살겠네요."
라고 말을 하셨다. 나는 갑작스러운 수능날 아침의 관상학적인 말에 놀라 뒷좌석에 앉았던 엄마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또 가만히 보시더니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했었는데요? 돈 관련한 일을 했었나요?"
"아뇨, 컴퓨터 쪽 일을 했었어요. 원가 시스템 관련이라 돈이랑도 연관이 있긴 하네요."
나는 그 와중에 질문에 착착 답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강의 같은 거 하는 쪽으로 빠졌으면 괜찮았을 것 같네요."
여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지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빠는 자기도 봐달라고 했고 기사님은 웃으며 학생이 시험 보러 가니까 그냥 봐준 거예요 하셨다.
금방 택시에서 내리고 나는 시험을 보러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많이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렇게 느낄 수도)
시험직전까지 내가 푼 문제집, 정리한 것을 들여다보자.
문제 풀 때 늘 그랬듯이 초집중하자가 나의 덤덤한 다짐이었다.
1교시 언어영역시간.
듣기와 독해 문제 일부를 풀고 났는데 중간 이후에 과학 관련 엄청 어려운 지문이 튀어나왔다.
일식인가 월식 인가 하는 지문이었던 것 같다.
식은땀이 잠시 났던 것 같고 빠르게 지문을 훑은 뒤 별표를 치고 일단 뒷 지문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뒷 지문도 쉽지 않았던 것 같고 그래서 손도 조금 떨렸던 것 같다.
끝까지 지문을 다 읽고 풀 수 있는 문제를 푼 다음 다시 별표 친 지문으로 돌아왔다.
최대한 이해하고 풀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결국 정 모르겠는 문제는 5지선다에서 많이 안 나온 번호로 찍은 것 같다.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은 채로 2교시 수리영역으로 넘어갔다.
수학도 쉽진 않았는데 나눠준 샤프심이 약해서 자꾸 부러진 기억이 있다.
문제를 막 풀어야 하는데 힘을 조금만 주면 샤프심이 자꾸 뚝뚝 부러져서 신경 쓰인 기억이 남아있다.
그렇게 사탐, 영어를 간신히 풀고
제2외국어까지 시험을 치고 학교 밖을 나왔다.
그때 부모님이 또 기다리고 계셨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스물여덟에 수능을 치겠다는 딸을 시험장까지 따라온 부모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래도 수험표 뒷면에 답을 적어왔고 가채점을 했었다.
성적이 간당간당했다.
실제로도 등급이 3등급 투성이어서 아주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었다.
그때 수능의 언어영역이 어려워서 수험생 중에 1교시부터 좌절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는 서울교대는 포기했고, 사탐 4과목을 보는 청주교대에 지원했다.
가군과 다군에도 원서를 넣었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가군에 이대 초등교육과를 썼을 만도 한데 면접 기회도 없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다행히도 청주교대는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혼자 나름의 준비를 했다.
재수학원에서 면접 준비를 해주는 코스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수능 점수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해서 마음이 상했었던 것 같다.
교대 사대 면접 기출문제집을 사서 읽어보고 나름 나만의 것을 정리했다.
시사적인 것으로는 당시에 무상급식 찬반 토론이 늘 이슈였는데 양쪽 입장을 정리해 놓은 것이 면접 질문으로 나와서 나름 잘 대답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합격 결과를 기다렸고 2차 추가합격을 했던 것 같다.
어찌나 가슴 졸였던지 남편과 온 가족들이 학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추가합격 되기만을 고대했다.
10년 만에 본 수능 시험.
그리고 그렇게 원하던 교대 합격.
그동안의 몸과 마음의 힘듦이 툭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도 너무 좋았다.
(사실 갈길이 먼데...)
다른 일을 하다가 초등교사가 되기 위한 길이 지금은 수능을 다시 보는 것 밖에는 없지만 예전에는 편입도 있었다. 한창 교사가 모자를 때 잠시 몇 년간 교대에서 편입을 받아줬었다.
교직관련 과 학생만 받아줬었는지 편입 조건이 있었다.
나는 비록 어렵게 수능을 다시 봐서 교대에 들어가 초등교사가 되었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교사가 되고 싶다면 교육학 등을 관련 대학교에서 들을 수 있게 해 주고 어느 정도 학점을 이수하면 실습도 나가게 하고 면접을 봐서 임용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줘서 교사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교사라는 직업이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일수록 학생들을 가르칠 때 분명 훨씬 도움이 된다.
경쟁이 올라가니까 교사가 되기 더 어려워질 수는 있겠지만, 교직이 안 맞는 사람도 다른 직업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고, 다른 일을 하다가 교사가 정말 하고 싶은 사람도 수능을 보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수능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객관식 시험 성적으로 예비교사를 뽑는 것도 웃긴 것 같다.
비록 수능 성적은 안 좋아도 아이들과 교감 잘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력이 좋고 초중고 수준의 교과를 어느 정도 가르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교사가 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당연히 있겠고...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수능까지 다시 봐서 대학교 1학년부터 다시 다녀서 교사가 되는 건 아무튼 좀 그렇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