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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진 Feb 23. 2022

나를 구제하다 上

2012년 봄, 퓨전 패밀리 레스토랑 홀서빙



  “여보세요.”

  “너 요즘 뭐하고 지내냐.”

  “언니, 오랜만이네. 나 그냥 있지.”

  “학교는 안 다녀?”

  “졸업했어.”

  “잘 됐네. 너 여기 와서 일해라.”


  통화하다 말고 나는 잠깐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봐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살이 많이 쪄 있었다. 이런 상태로 레스토랑 서빙을 하러 간다는 것이 과연 괜찮은 걸까. 심지어 언니의 추천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쪽에서도 보는 눈들이 다를 것 아닌가. 전에 함께 일하던 매장에서도 매일 혼나기만 했는데, 몸도 이런 데다 일까지 잘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어떤 눈으로 볼까. 또, 나를 부른 언니는 얼마나 난처해질까.


  “나 안 할래.”

  “왜?”

  “검은 바지가 없어.”

  “뭐?”

  “살이 많이 쪄서, 입을 옷도 없고... 그냥 다른 사람 구해.”

  “장난하냐? 옷 하나 사! 내가 돈 줄테니까. 다음 주부터 나와.”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절로 떠오르게 사람. 작은 몸집에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호령하는 사람. 웬만하면 사람을 잘 인정하지 않는 남자들도 언니 얘기만 나오면 혀를 내둘렀다. 목표가 한 번 정해지면 눈물을 훔치는 한이 있어도 이를 악 물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나는 2학년 때 홍대 <불고기 브라더스>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언니를 만났다. <불고기 브라더스>는 한국식 패밀리 레스토랑을 표방하고 있었다. 모든 요리와 술은 한국식이었으나 분위기부터 시작해 운영 시스템은 전부 <아웃백>과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언니는 그 당시 이미 베테랑이었고, 나는 이제 막 일하기 시작한 알바였으니 우리는 사실 친해질 기회도 없었다. 유난히 성미가 까다롭던 점주는 허구한 날 알바생들을 혼내는 것이 일이었다. 언니는 혼나고 있는 알바생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빈틈없이 일을 잘했고,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것은 물론 뒤끝이 없었기 때문에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기껏해야 두 달 남짓, 그것도 주말에만 같이 일했던 나에게 연락을 주다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심각한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 일단, 2학년 2학기까지 마쳤으나 졸업하지 못한 상태였다. 전공, 일반, 교양, 채플 등 부분적인 학점은 전부 이수했으나 총 졸업 이수 학점에 2점 부족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꼼짝없이 한 학기 동안 단 하나의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나가야 했다. 그보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미리 확인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창피함, 그리고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었던 학교에 다시 발목이 묶여버린 것 같은 갑갑한 기분 때문에 미치도록 괴로웠다.


  또한 한 학기씩 함께 지냈던 두 명의 룸메이트들과 별로 좋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크게 싸운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서운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 더이상 예전처럼 막역한 사이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좁은 원룸에서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것 자체가 가혹했고, 또 갈등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이 미숙해서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부족해서 두 명의 친구를 놓쳤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덮쳐올 때마다 나는 요리를 했다. 오후 늦게 일어나, 찌개나 요리 한 가지를 정한 뒤 슈퍼에 가서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 한두 가지를 사 왔다. 그렇게 냄비 한 가득 요리를 해서 먹기 시작하면 여러 번 나누어 먹으려던 당초 계획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버리기 일쑤였다. 식사량이 많은 데다 거의 탄수화물 위주였으니 원래 살집 있는 상태에서 산 옷들도 들어가지 않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혼자 원룸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외출을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꺼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언니가 나를 그 원룸 안에서 구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언니의 제안을 튕기기는 했지만, 본능적으로 이 기회가 영영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일단 언니가 일하고 있다는 매장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그곳은 새로 오픈한 ‘발산점’이었다. 김포 공항과 가까웠고 집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나쁘지 않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일하며 입을 ‘옷’ 밖에 없었다. 전에 일한 적이 있었으므로 그쪽에서 원하는 복장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검정색 바지와 신발, 그리고 묶은 머리. 예전에 일하며 입던 검정색 슬랙스를 꺼내 입어보았다. 당연히 지퍼가 잠기지 않았다. 나는 줄자로 허리와 골반 둘레를 재고, 인터넷에서 치수를 확인해보았다.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 나의 치수는 88사이즈였다. 바지를 주문하고 한동안 머리가 멍 했다.


  여러 가지 상념 끝에 ‘이제라도 현실을 자각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무리 부끄럽고, 걱정되고, 불안하더라도 그렇다고 방 안에서 언제까지고 지내다 생을 마감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너무 오래 흘러가는대로 떠밀려왔으니 이제는 힘주어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때라는 느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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