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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Jan 09. 2020

내 예민한 코는 백만 불짜리

타인보다 민감한 게 뭐 어때서



킁킁킁. 출근하자마자 이상한 냄새를 감지한 나는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이거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나는데 말이지' 마약 탐지견 마냥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동료들의 자리를 하나하나 탐색하기 시작했다. 한 동료의 자리가 의심쩍다. 책상 밑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동료가 내 인기척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돼지껍질 탄내 같은 게 나' 동료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긴 머리를 내게 보이며 말했다. ' 아, 내가 오늘 머리를 제대로 안 말리고 와서 머리 좀 말려 보려고 발난로에 잠깐 머리카락을 갖다 댔는데  열기에 그슬렸지 뭐야. 근데 머리카락 몇 가닥 끝이 아주 쪼금 그슬린 건데 기가 막히게 그 냄새를 알아채고 찾아오다니. 진짜 예민도 하시네'


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녔다. 몇 해전 겨울엔 동료가 책상 밑 발난로를 끄지 않고 퇴근했었는데 하필 발난로가 비닐이 가득 담긴 상자 가까이에 닿아 있었다. 그날도 손님이 많아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나의 개코는 열기에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는 비닐 냄새를 기가 막히게 발견했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만약 발견하지 못하고 퇴근을 했더라면 큰 불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오감과 직감이 수시로 발동된 나머지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예민하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한 때는 예민하다는 말은 별로 좋지 않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예민, 민감하다는 말은 숫기도 없고 내성적이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진 신경질적인 사람이라는 사회 전반적 편견이 있다. 게다가 가까운 가족들마저 내게 예민하고 까칠하다는 얘길 수시로 한다.   예민한 게 아니라 그저  섬세하고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좀 더 빨리 알아차리는 것뿐인데 세상은 예민함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시선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의 저자 일레인 아론은 심리학계 최초로 '민감함'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미국의 심리학자이다. 그녀 역시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민감함과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상처 받는 일이 잦았다. 성인이 되고 이혼을 겪고 박사를 포기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 그녀는 민감함은 장애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개인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는 일종의 잠재력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 그렇다면 민감함은 선천적인 것일까? 아님 후천적인 것일까?



퇴근길 지하철에서 이 테스트를 해보고 한껏 예민해졌다. 내게 해당되지 않는 게 딱 두 가지뿐이었다...




우리는 민감함이라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감함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자라온 환경에 의해서도 민감함의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1~10까지의 강도로 민감함을 측정한다고 하자. 타고날 때 4 정도의 민감함을 소유한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양육환경 속에서 부모와 애착관계 형성도 잘 되어있다. 이 아이는 자신의 민감함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이때 아이와 안정된 애착관계를 유지하는 부모는 아이가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파악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로부터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긴장감을 다스릴 수 있는 법을 배운다. 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되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안정된 부모와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됨으로써 아이의 민감함의 정도는 점점 낮아지게 된다.


이와 반대로 민감함의 정도는 같지만 불안정한 양육환경 안에서 자라는 아이가 있다. 아이와 애착형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보호자는 아이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적절한 호보를 받지 못한 아이는 점점 불안정 애착, 회피형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 상황을 피하려고만 들게 되어버린다던가 아예 그런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타고난 민감도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첫 애착 경험으로부터 아이는 자신이 의지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첫 보호자에 대한 애착 방식은 생존에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더 이상 생존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계속해서 그 방식, 즉 안정 애착, 불안정 애착 또는 회피적 애착에 따라 위험한 일을 피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민감함은 선천적인 것인지 아님 후천적인지 생각해 보았다. 불안정하고 회피적인 성향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불안정하고 회피적으로 자라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 이러한 성향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관계의 어려움이 닥칠 땐 무조건 피하려고만 들었다. 위험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위험한 관계 속에서 피해자라는 의식만 가득했고 늘 움츠려 들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안정된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의 불안한 감정들, 특히 예민한 감정들을 재빠르게 캐치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걸 헤쳐나갈 용기가 있으며 지금의 위험은 곧 나아질 거라는 안정감을 심어주었다. 후천적으로 생긴 나의 민감함은 점점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 적당한 긴장감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될 수 있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의 저자 알레인 아론은 사람에게는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적정 수준의 긴장은 둔함과 무력함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신경계가 지나치게 긴장하게 되면 지치고 당황하게 된다. 생각도 할 수 없게 되고 몸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고 지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긴장이 필요한 것이다. 민감하다 불리는 사람들은 이런 긴장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들을 금방 알아차린다. 모두가 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민감함이 차이가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매우 민감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일반적 특징>




저자는 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민감함을 객관적으로 보자고 말한다. 민감한 특성은 상황에 따라 유리하게 작용하거나 불리해질 수 있는데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 무리 속에서 미세한 신호를 알아내는 구성원의 역할을 민감한 사람이 맡게 되면 긍정적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민감한 나의 감각들 덕분에 솔직히 덕을 보는 경우가 꽤 많다. 예민한 후각은 큰 불로 이어질 뻔한 일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 또 시각, 청각적으로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들을 재빠르게 판단한다. 시선을 여러 곳에 두며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것이 일을 할 때 꽤 많은 도움이 된다.



# 민감성과 숫기 없음은 다른 것


앞에서 이야기했듯 내가 민감하다는 표현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숫기가 없다는 편견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저자는 민감성과 숫기 없음은 다른 것이니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숫기가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을까  겁내는 반응으로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한다. 숫기가 없는 이들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본능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특정 상황에서 보일 수 있는 하나의 반응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 내성적인 사람이 민감성이 발휘될 때 좋은 점


나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기보다 내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편이다. 내면세계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성적인 경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가까운 관계를 보다 잘 유지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친해지면 상대를 이해하고 도우려 하며  삶의 철학이나 감정 고난 등에 대해서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상대방의 내면과 진심으로 소통함으로써 가까운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내성적인 사람들이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외부 세계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삶에 보다 더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민감성은 타인의 반응을 쉽게 캐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캐치하고 내면세계에 들어가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이러한 내성적인 경향과 민감함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강점으로 작용해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성으로 발휘될  있다.


# 이제 민감함은 우리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민감함에 조금 더 당당해지면 어떨까?


요 근래 들어 내향적이고 조용하고 민감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글들을 자주 접한다. 나 역시도 예민함에 대해선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울 법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예민'의 '예'자만 들어도 발끈했었다면 이제는 내성적이고 민감한 면들을 장점으로 극대화시켜 나가 보려 노력 중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라 조금 지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나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안정감이 들고 나에 대해 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민감함에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도서: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씽큐베이션#체인지그라운드#민감함#타인보다더민감한사람#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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