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면
'그래 결심했어!'
1990년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한 코너였던 '인생극장'의 주인공이었던 코미디언 이휘재의 유행어이다. 당시 인생극장에서는 어떤 스토리를 보여주다 주인공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주인공이었던 이휘재는 잠시 생각을 한 후 주먹을 쥐고 '그래 결심했어!'라고 외친다. 그에게는 A라는 선택과 B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무수한 선택지가 놓여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디를 갈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등등. 선택에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 사회 등 내가 아닌 타인과 연결된 어떤 상황에 대한 선택이 어쩌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때론 어떤 선택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또 어떤 선택은 원하지 않은 정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을 하기 위해 자신에게 종종 이런 말을 던질 것이다.' 그래,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이성적으로,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거야.' 이성의 힘을 빌려 의식적인 선택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스스로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과연 인간이 선택을 함에 있어서 '이성'라는 것의 힘이 '감정'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일까?
<소셜 애니멀>의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는 우리 인간이 관계 속에서 수많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과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의 무의식은 태어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무의식은 관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즉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자연스레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은 일상생활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게 되면 그 체계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헤럴드'와 '에리카'라는 두 남녀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들의 탄생, 부모와의 관계, 학교에서의 학습과정 그리고 두 남녀가 어떻게 사랑에 빠지고 일을 하며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지에 대한 내용을 책에 담아냈다.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은 허구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풀어 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상황들을 심리학, 사회과학, 뇌과학, 행동경제학, 역사 등의 관점으로 여러 가지 실제 연구의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간혹 소설을 볼 때 등장인물은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쳤길래 대체 저런 행동과 말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있을 때가 많았다. 장편소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등장인물의 성장과정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소설 속에 주인공들과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을 읽노라면 대체 왜 저이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를 혼자 추리를 하며 읽곤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성장 배경이 있었길래 저런 삶의 패턴을 가지게 되었지를 말이다.
인물들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무엇의 영향을 받아 그리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 안성 맞춤인 책이었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삶의 시작에서 끝까지 이어지는 많은 상황을 담은 책이기 때문에, 그 내용 중 '에리카'라는 여주인공의 성장과정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해볼까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관계로 이어진다. 나라는 사람이 있기까지의 과정에 전에는 수많은 조상들(?)이라는 관계가 존재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와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린아이인 '나'는 모방을 통해 학습을 하며 성장을 한다. 그러다 인식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고 '자아'라는 것이 생길 때쯤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 들어가게 된다. 본격적인 타인을 통한 새로운 학습이 시작된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본격적으로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사회'는 부모,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은 지식과 지혜들이 필요한 곳이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학습을 하면서 정체성을 찾고 성장한다.
<소셜 애니멀>의 여주인공 '에리카'는 중국계 어머니와 멕시코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에이미는 유독 집안에서 가장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은 사람이었다. 에이미는 툭하면 조울증을 앓았고, 툭하면 재발했다. 조증일 때는 온갖 것을 배우기도 하며 나름 능동적인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자신의 딸인 에리카의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들었다. 무엇을 입을지, 먹을지, 어떤 것을 학습을 할지 등등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딸에게 강요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우울증이 에이미를 사로잡았다. 마약을 했으며, 집안일도 하지 않고, 어린 딸을 돌보지도 않았다.
이럴 때 에리카의 아버지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매력적이고 쾌활했지만 변변찮은 사람이었다. 에이미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 무관심했다. 자존심이 무척 센 사람이어서 아내가 바가지를 긁을라치면 집을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진득하게 어떤 일을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에리카를 무척 사랑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두 사람 역시 결혼을 하고 아기자기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이들에게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고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 또한 아이를 낳았으니 꼭 결혼을 해서 함께 살아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이혼을 하게 될까 겁이 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문화적인 변화였다.
과거에는 뇌에서 자동으로 인식되던 결정이 이제는 의식적인 차원의 판단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결혼은 더 이상 무조건 적이고 자동으로 선택해야 하는 조건이 아니다. 결혼하려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에리카의 부모에게는 이런 이유가 없었다. <소셜애니멀>
에리카의 부모는 나름대로 의식적으로 판단을 한 뒤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으며, 게다가 서로에 대한 신뢰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의식적 선택의 범위는 좁았을 것이다. 그들이 접할 수 있는 문화권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의미도 미처 알지 못했다. 하필이면 그 문화권에서는 결혼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던 때였다. 결혼이 꼭 성인으로 가는 통과의례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결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많은 결혼식보다 결혼의 의미를 강조한 작은 식들을 올리거나, 결혼식 자체를 생략하고 결혼 서약만 한 후 혼인신고를 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서로 다른 남과 여가 만나'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관계 의미와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서의 에리카의 부모는 이들과는 다른 경우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들은 그들이 그런 선택을 무의식적으로 할 수밖에 없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이 지나면서 가난으로 내몰린 에리카의 가족들은 점점 문화적 환경이 좋지 않은 곳으로 옮겨갔다. 감옥에 간 사람들이 많고, 범죄가 많은 동네로 갔다. 아주 잠시 중산층 생활을 하던 때와는 너무 달랐다. 돈이 부족하니 문화가 달라지고, 자기 파괴적인 문화는 다시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이런 악순환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상황들도 좋지 않았다. 어떤 일부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야망도 작았으며,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완전히 잃어버리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일과 스트레스 때문에 하루 온종일 녹초 상태로 지냈다. 정신적 여유를 누릴 시간이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물질적 정신적 고립은 그들의 마음을 더욱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이런 무질서 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서로 돕기도 했지만, 정부와 중산층 세상으로부터는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했다.
각 주거 집단은 각기 다른 행동 규칙, 즉 걸을 때에는 어떻게 걸어야 하고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하고 낯선 사람이나 미래를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제각기 다른 무의식적 규범을 가지고 있다.
<소셜 애니멀 P.163>
오늘 아침 우연히 어떤 기사를 보게 되었다.
디즈니랜드 가문의 공동 창업자인 로이 디즈니(창업자의 형)의 손녀인 애비게일 디즈니가 최근 비밀리에 캘리포니아 LA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방문했다는 기사였다. 그녀가 그곳에 몰래 들어가 힘들어하고 있는 종업원들의 모습에 분노했다고 cnn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고 한다.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으로 보내온 디즈니랜드 직원의 메시지 때문에 몰래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 메시지에는 '집에 가면 다른 집에서 나온 쓰레기 더미 속에서 식량을 구해야 할 정도로 살기 어려운데 어떻게 일터에서 웃는 얼굴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일을 할 수 있겠냐'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실제로 디즈니랜드에서 직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인권운동가이자 영화감독인 그녀는 회사가 직원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아서 매우 격분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디즈니랜드의 최고경영자와 직원들의 급여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ceo는 지난 회계연도에 성과급을 포함해 약 6560만 달러(약 774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디즈니 직원 연봉 중간값 4만 6127달러의 1424배에 이르는 액수라고 급여 컨설팅 업체 에퀄리가 조사해 밝힌 바 있다.
그녀는"밥은 자신이 보도에서 껌을 제거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단지 고용인일 뿐이고 직원들은 그와 같이 존엄성과 인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대희 기자 기사 내용 발췌)
https://news.v.daum.net/v/20190718095603180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위의 기사의 디즈니의 직원들은 아무리 열심을 일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아 일터에서조차 웃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들이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에도 버거운 상황에서 정신적인 여유를 찾을 수있었을까? 그런 상황들 속에서 삶에 대한 야망을 갖는 일은 호사로운 사치였을 것이다. 물리적 여건들은 때론 인간의 무의식 안에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 놓기도 한다. 그렇게 자리 잡은 무의식은 삶에서 주어진 어떤 상황에 대한 선택 의지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붙잡아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난이 삶의 전부를 뒤흔들어 놓을 수는 없다. 가난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라 전체 문화에 초점을 맞춰 사회가 그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무의식 안에 자리 잡은 부정적인 인식들이 방향을 전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새로운 문화,
전혀 다른 인간관계의 그물망을 제공하면
새로운 사고방식과 습관을 흡수할 것이다.
또 새롭고 풍요로운 문화로 세례를 줄 때는
계속 이 문화의 영향력 아래 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 다른 문화권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갈 경우
새로 습득한 것이 대부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에리카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자신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적인 의지력만으로는 문제아이고, 삐딱하고,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등 삶에 대해 부정적인 자신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리카는 언제나 똑같은 감정의 신호를 따랐고, 감정이 의식적인 의도를 압도했다. 하지만 에리카는 한 가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었다. 만일 환경을 바꿀 수만 있다면 완전히 다른 신호와 무의식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내면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쉽다. 환경을 바꾼 다음 새로운 신호가 작동해서 효과를 발휘하도록 맡기자. 에리카는 아카데미 이사진이 회의하는 곳을 찾아가 입학을 시켜달라고 요구했고 그녀는 운이 좋게도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아카데미라는 새로운 문화권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막무가내 전법을 쓰긴 했지만 결국 원하는 환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그녀는 새로운 문화권의 습관들과 규율을 몸에 익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위기는 있었다. 테니스를 곧잘 한 그녀는 이 운동이 자신에게 행운과 명성을 안겨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녀의 경기에는 어떤 분노 같은 게 서려 있어서 주변 사람들은 누구나 그녀를 무서워했다. 결국 한 경기에서 분노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만다. 경기를 망친 에리카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저자는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19세기에는 의지력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인격형성 모델이 여러 관심사를 계산하는 이성의 사용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한다. 분명 이성과 의지 둘 다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고 자기 통제력을 강화하는데 중요하다. 그러나 이 19세기와 20세기의 모델은 한계가 있었다. 상황을 지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의식적인 판단과 반응의 전체적인 그물망이 이미 마련되어 있어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위치와 방향을 잡아준다. 이런 상태라면 이성과 의지가 한층 더 쉽게 힘을 발휘할 수 있다.이성과 의지는 적절한 행동을 유도하는 일을 맡는다.<소셜애니멀>
인격을 형성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중 가장 큰 영향력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공동체가 수행하는 역할이다. 혼자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테니스 경기에서의 큰 사건을 이후로 에리카는 다시 아카데미에서의 소소한 규칙들을 지키며 학교생활을 계속 해나갔다. 그 규칙은 그녀에게 제2의 천성이 되었다.
에리카는 자기와 세상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척 애를 썼다.
한 사람의 자발적인 삶을 이루는 전체 드라마의 전개 양상은 이 사람이 주의를 기울여 받아들이는 양에 따라서 달라진다. 주의를 집중하려는 노력은 의지의 본질적인 현상이다. <소셜애니멀>
에리카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받아들일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비록 허구의 인물이지만 에리카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릴 적 어떤 부분들과도 많이 오버랩이 되었다. 그중 에리카가 환경을 바꾸어야만 자신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움직이는 모습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도 성장과정이 그렇게 평탄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 이렇게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에너지를 갖게 된 이유는 환경을 바꾸려 부단히 애썼고, 어떤 환경 속에 들어가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의식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 속 한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해, 그 상황에 놓인 나를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도 부단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사람은 분명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관계 속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리고 어떤 문화권에 자신을 두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형태는 분명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에리카가 어떤 모습으로 어른이 되어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 보길 바랍니다~너무나 방대한 내용이라 좀 지루해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관계와 만남 안에서의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알고 싶으시다면 한번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도서: 소셜애니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