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그의 죽음을 마주하고서야 뒤늦게 안 그것
열 살 때였다. 엄마는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버렸고 나와 동생 그리고 아빠 이렇게 셋만 남게 되었다. 나와 어린 동생에게 엄마가 떠난 빈자리는 너무나도 컸다. 어느 날인가 갑자기 아빠도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며칠은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었다. 밀린 공과금 때문에 전기마저 끊겨 밤이면 집은 암흑처럼 어두웠다. 어린 나와 동생에게 칠흑 같은 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었던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들이었다. 그중 제일 좋아했던 책은 '안네의 일기'였다.
어린 나는 책이 너무 읽고 싶어 어둠이 찾아오기 전까지 창으로 들어오는 빛 안에서 책을 읽었다. 나는 안네의 일기를 통해서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네는 일기장을 '키티'라고 부르며 다락방 은신처에 숨어 지냈던 날들을 이야기했다. 책에는 흑백으로 된 안네의 사진이 있었다. 단발머리를 한, 내 또래인듯한 안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들을 했었다. 우리 둘은 무언가 많이 닮은 것 같았다. 나치를 피해 은신처에 숨어지내는 안네가 제발 살아 있기를, 가슴을 졸이면서 읽어내려갔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언젠간 나도 죽는 건가?' '사람은 왜 죽는 거지?' '안네는 왜 죽어야만 했지?' 내게 '죽음'이라는 것을 알려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죽음'은 '어두운 밤'과 같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때 내게 칠흙같았던 밤은 공포스러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어둠 속 나와 닮아 있던 마음속 친구 안네. 그녀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고 그녀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역사를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책 속의 안네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내 삶의 어둠은 중학생이 되어서까지도 계속되었다. 어느 날인가 문득 죽으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궁금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 숨을 쉬지 않는 게 죽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베개를 베고 누워 배꼽 위로 양손을 포개 얹고 눈을 감았다. 베고 있던 베개를 빼내어 얼굴 위로 가져갔다. 양손바닥으로 베개를 가볍게 눌러보았다. 그리고 조금씩 양손에 힘을 주고 베개를 세게 짓눌렀다. 숨이 멎는 순간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다. 단순히 그 이유 하나뿐이었다. 너무 세 개 누른 탓일까?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무서웠다. 얼굴을 누르던 베개를 벽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난 죽기 싫다. 오래오래 살고 싶다. 지금 우리 집이 가난하고 힘들어도 그냥 나 이렇게 숨 쉬는 채로 몇백 년이고 몇만 년이고 그냥 살고 싶다' 내 삶은 영속성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P.50>
2014. 12월 30일.사촌 언니와 사촌 조카들과 함께 에버랜드에 썰매를 타러 갔다. 신나게 썰매를 타고 있는데 언니가 갑자기 상기된 얼굴로 나를 불러 세웠다. 여기 전화받아봐......
고모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를 본지 꽤 오래되었다. 아버지의 삶은 내가 열 살이 된 이후부터 처참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어린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성인이 된 나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었다. 마음 안에서는 항상 다시 우리 세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바램 때문에 연락을 끊었다가 몇 번을 다시 만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삶에 대한 한줄기 희망도, 빛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과거와 같은 어둠 속을 돌아가긴 죽어도 싫었다. 지금처럼 소소한 행복 속에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멀리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철저히 내 삶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나는 눈물을 삼키며 아버지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나온 인생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인생, 아버지의 생, 이 모든 것은 어째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나는 왜 벌써 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해야 하는 것일까?
수용은 거부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이뤄진다. 죽음을 숙고하는 것은 실제로 저항을 숙고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죽을 준비가 될까?우리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다.우리가 두려워한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 두려움을 오래, 아주 오래 검토해야 한다.우리가 외면했던 진실,즉 우리 모두 미래의 시신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P.60>
아버지는 집안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입에서 많은 피를 토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시신은 모 장례 시작 영안실에 모셔져 있었다. 영안실에 모셔진 아버지 시신을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조우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에게 도저히 나는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들어가서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다. 핏기라고는 하나 없는. 창백하게 쪼그라든 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찢겨 나가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꼈다. 엄마가 떠난 후의 상실감보다 몇 배나 더 큰, 내 온몸이 감당해내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옮겨야만 했다. 아버지의 시신이 모셔진 모 장례식장 관계자는 내게 시신 보관비를 청구했다. 입금을 해야 시신을 인도할 수 있다고.
그 때 난 죽음 앞에서 지독한 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문득 인간은 그저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경이로움과 참사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사랑하고 울부짖으며 이해하려 애쓸 뿐이다.고개를 돌리지 마라.너희도 이러할지니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P.246~247>
장례는 3일장으로 치러졌다. 검은 상복을 입고 상주의 자리를 지켜야 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이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겠구나 했던 사진이 내 눈앞에 있다. 처음 겪는 장례식.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례준비를 했다. 슬픔에 젖어 있다가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휘청거리는 몸과 정신을 단단히 붙잡아야만 했다.
내 나이 사오십쯤이나 돼야 '죽음'을 가까이 접하겠구나 생각했었다. 이렇게 빨리 내가 죽음을 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삽 십 대의 어른인 나도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죽음'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들. 모든 게 처음이었다. 어수선하고 견디기 힘들었지만 버텨냈다.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난 어떻게 고인을 애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내드려야 잘 보내드리는 것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널 사랑해.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니?
무슨 이야기든 괜찮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
'사랑합니다.'
이 말이 이렇게 애달팠던 말이었던가?
고모에게 물었다.' 아빤 우릴 낳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 그지? '
'아니야, 아빠가 널 낳고 나서 얼마나 예뻐했는데, 네가 어려서 기억을 못 하는 거지. 정말 많이 좋아했어.'
살아생전 아버지에게 듣고 싶던 말이었다.흔하디흔한 말. 하지만 쉽게 내뱉기 어려웠던 말. '사랑해'
이 평범한 말을 왜 우리는 하지 못 했던 걸까?
나를 만나기 이전 아버지의 삶은 어땠을까? 아버지는 자신의 생이 이리도 짧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겠지?장례 내내 아버지 영정사진을 보면서 그의 삶에 들어가 보려 애써보았다.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 속 감정들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고, 또 그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알고 싶어 한다. 삶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죽음의 이야기까지 모두.임종을 지키지 못하면 고인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몰라 서운하고 안타깝다. 물론 안다고 뭐가 달라지지도 않고 오히려 새로운 의문과 상실감에 젖게 될 수도 있다.그렇더라도 이야기를 끝맺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인다.<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P.282>
발인 날이다. 화장터로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이 세상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한 통증이 밀려왔다.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세상은 모든 인간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화장이 끝났다. 화장터를 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의 커튼이 젖히고 아버지의 뼈들이 보였다.
아...... 아버지의 육신은 이제 없다. 잘게 부서진 아버지의 뼈는 내가 손수 고른 유골함에 담겨 내 품에 안겼다.
2015년 1월 1일.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났다.
어떤 작별의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로.
아버지의 육신이 화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를 향한 모든 원망도 함께 보냈다.
막 세상에 태어난 나를 보며 웃음 지었을 아버지의 모습을 마음 깊숙이 담아 두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출퇴근 길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를 완독했다. 읽는 내내 아버지가 떠올랐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세상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들이 모두 산송장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움직임, 사람들의 머리카락, 사람들의 눈동자, 사람들의 손가락....... 모든 것을 유심히 살폈다. 살아있는 유기체들이구나,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한 삶을 내딛고 있구나...... 그리고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내심 안도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의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참고도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