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행복하게 잘 사시길 바랄게요! 감사했어요!
이사한 지 삼 일째. 정리가 안된 집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정리가 되려면 최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공간. 언제쯤이면 이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뀔까? 사람이든 공간이든 가까워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시간이 형태를 갖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잠시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오랜만에 이사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특히 이번엔 집주인에 대한 경험이 다른 때와는 달랐다. 난 대한민국 소시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이다. 당연히 내 소유의 집은 없다.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다 보니 여러 유형의 집주인을 만났다. 이십 대 초반 자취할 때는 노부부가 집주인이었는데 당시 집주인 할아버지는 시간관념 없이 새벽이고 이른 아침이고 우리 집 문을 두드려 대 정말 싫었다. 또 다른 집주인은 돈 욕심이 많은 40대 중반 여성분이셨는데, 툭하면 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엄청 골치 아팠었다. 또 다른 집주인은 아들만 셋을 키우시는 분이셨는데 바로 옆집에 살았다. 그분은 별다른 기억은 없는데 아들이 셋이라 항상 고래고래 소리치는 모습을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여러 집주인을 만났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만난 집주인 분들은 여태 내가 보았던 사람들 중 정말 순박하고 착하고 배려심이 많으신 분들이었다. 집주인을 잘 만나는 것도 운이라고 말한다. 나이를 먹고 만난 집주인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낀 걸 보면 난 운이 좋은 것 같다.
원래는 20일에 이사를 나갈 예정이었으나 그 전날 새로 이사 갈 집 잔금과 시간이 허락되어 19일 오후에 급하게 이사를 했다. 미리 짐을 빼고 다음날 집주인을 만나기 위해 예전 집으로 향했다. 살던 집을 나가는 것이지만 최소한 청소는 깨끗하게 해 놓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 예전 집으로 가서 환기도 시키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오전 11시경에 집주인을 만나기로 하고 청소를 하고 있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가씨~저 지금 집 근처인데 그 집을 너무 오랜만에 찾아가서 그런가 집이 어딘지 모르겠네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세상에 자기 집인데 집 위치를 못 찾겠다니. 전화로 집 위치를 설명해 드렸다. 몇 분이 지나서 집주인 부부가 오셨다. 오자마자 "아이고 이렇게 마지막까지 신경 써서 청소도 해주고 정말 고마워요. 오래된 집이라 살기 불편했을 텐데 그래도 집 깨끗하게 써주고, 아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야무진지. 역시 사람이 목소리에서부터 느낌이 확 온다니깐" 집주인 부부는 7년 만에 나를 보시며 특급 칭잔을 쏟아 내셨다. (역시 칭찬은 언제 들어도 좋다!!)
내가 들은 보통의 집주인들은 나가는 세입자에게 깐깐하게 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7년이나 살았던 집주인 부부는 달랐다. 한 번도 집세를 올려 달라는 말을 한 적도 없었고 살다가 보일러가 작동이 잘 안 되거나 가끔 불편한 게 있어 고쳐달라고 하면 흔쾌히 고쳐주시곤 했다. 세입자의 요청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번에 만난 집주인 부부께서는 세입자에 대해 배려를 참 많이 해주셨다.
집주인 부부는 짐을 뺀 집을 다 둘러보시고는 내게 돌려줘야 할 금액을 부동산에서 확인받고 돌려주시기 위해 함께 부동산으로 가자고 하셨다. 집주인은 부동산으로 가서 공실 상태를 확인했다고 중개인에게 말씀하셨다. 난 돌려받을 돈이 큰 금액이라 당연히 계좌이체를 해주실 줄 알고 집주인께 계좌번호를 알려 드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지갑에서 뭘 주섬주섬 꺼내셨다.
"아니... 우리 아저씨가 내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계좌로 쏴주면 된다고 했는데도 굳이 현금으로 줘야 한다면서 어제 은행 가서 1시간 기다려서 수표로 돈 찾아왔다니깐요. 저 사람이 내 말을 이렇게 안 들어요. 하하하. 이렇게 집 뺄 때는 현금받는 게 기분이 좋다나 뭐라나. 참 저 사람도! 내가 그냥 계좌로 보내도 된다고 하니깐, 아가씨가 귀찮게 은행에 가야 하잖아~ 하하하 "
아 또 한 번 빵 터졌다. 옆에서 뭐라 뭐라 하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집주인 아저씨는 말했다. "아니 이 사람아 이사할 땐 현금을 손에 쥐는 맛이 있다니깐. 그래서 뽑은 거지 하하하" 아~ 이분들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귀여우셨다. 두 분이 콩닥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워 보이시던지. 집주인 아주머니는 낡고 오래 쓰신 까만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 내게 건네셨다. 부동산 중개인 분께서 내가 돈을 받았다는 확인서에 사인을 하라고 종이 한 장을 내미셨다. 확인서에 사인을 하고 영수증을 집주인에게 건네드렸다. 큰돈을 받아 당황한 내가 은행에 어서 가서 입금을 해야겠다는 말에 "아이고! 괜히 현금으로 줘가지고 아가씨 불편하게 만들었네. 어느 은행 가야 해요? 우리가 차로 데려다 줄게요"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이분들 이렇게 친절해도 되는 건가?! 왜 이렇게 선하신 거야! 대천사 집주인이셔!! 내가 만났던 집주인 분들 중 최고의 인성을 가지신 분들이란 생각이 들어 계속 웃음이 났다. 괜찮다고 그냥 걸어가도 된다는 말에도 기어이 태워주시겠다며 결국 은행까지 차로 데려다주셨다. 차에 내려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제가 만난 집주인분들 중 최고의 분들이세요. 한 번도 터치 안 하시고 이렇게 계약기간 채우지도 않고 나가는데도 흔쾌히 괜찮다고 해주시고, 정말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집주인 부부는 "아니에요 우리야말로 좋은 세입자 만나서 그동안 신경 안 쓰고 편했죠. 앞으로 좋은 일들만 생기길 바랄게요! 행복하게 잘 살아요!"
인사를 드린 후 은행에 입금을 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고 앉아 있는데 계속 웃음이 피식 터져 나왔다. 혼자 짐 싸고 이사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고단했는데 집주인 부부의 친절함과 따스함 덕에 쌓였던 피로감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은행에 들렸다 다시 예전 집으로 가서 청소를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으로 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공과금 정산을 하고 보일러 전원을 끄고 현관 비밀번호를 바꿨다. 공과금 정산한 영수증과 보일러를 껐다는 사진을 찍어 집주인에게 문자로 보내드렸다.
집주인 부부는 마지막 문자까지 날 감동시켰다.
" 마지막까지 세세하게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공간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 공간의 시작과 끝에서 만난 집주인 부부.
짧은 인연이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언제 어디에 계시든지 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