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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Sep 30. 2019

로또라도 되면 좋으련만

로또는 꿈일 뿐, 결국엔 현실 타협하며 사는 소시민

# 19일 차 질문

차 한 대, 소파 하나, 신발 한 켤레에 쓸 수 있는 최대 액수는?



 열흘 전 7년 만에 이사를 했다. 내 명의의 주거지를 갖게 된 건 아니다. 대한민국 평범한 이 누구나 그렇듯 남의 집 살이다. 평수는 작지만 새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그간 너덜 해진 살림살이들을 몽땅 버렸다. 냉장고도 새로 사고 세탁기도 새로 샀다. 언니가 자취할 때부터 쓰던 냉장고와 작별을 했다. 양문까지는 아니지만 원도어로 된 메탈 냉장고를 구입했다. 내 사랑 통돌이. 그와도 작별했다. 작은 키 때문에 통돌이에서 빨래를 꺼낼 때마다 까치발을 들었었다. 나이를 먹어 그런가 어느 날은 무리하게 허리를 굽혔다가 담이 결리기도 했다. 어디 이제 나도 한번 허리 굽히지 말고 무릎을 굽혀서 빨래 좀 해보자 하는 생각에 큰 맘먹고 드럼 세탁기를 샀다. 냉장고와 깔 맞춤을 위해 색상은 역시 메탈. 작년엔 노트북도 새로 사고, 요 근래 일이 년 사이에 집안에 새 가전들이 들어찼다. 큰 맘먹고 산 것들 아끼고 광내서 오래오래 쓰리라 다짐한다.


 이사한 집에 필요한 가전들은 들어찼으니 이젠 가구들 들일 차례. 이사하면서 낡고 후질 구래 한 것들을 몽땅 버렸다. 침대, 책상, 티브이 장, 화장대, 책장, 서랍장 등등. 모두 버리고 이사를 오고 나니 집이 휑했다. 진짜 필요한 것들로만 구입하자 마음먹었다. 일단 책상과 티브이 장 책장을 구입했다. 침대를 버리고 오면서 고민을 했다. 그냥 이불을 폈다 갰다 하는 방바닥 생활을 할 것인가 아님 침대를 다시 살 것인가. 방바닥 생활로 서서히 마음이 기울어 갔다.



'그럼 침대를 안 사는 대신에 소파를 사자. 2인용 패브릭 소파로. 나중에 빔 프로젝터 사서 영화 쏴서 볼 때 소파에 앉아서 보면 딱이겠다!!' 인터넷 쇼핑몰 여기저기에서 소파 가격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집이 좁고 나중에 이사 갈 때 버리고 가게 그냥 싼 거로 사자 마음먹었다.


'자 어디 보자 영심이가 결혼하기 전 지 언니랑 살던 집에 놓았던 2인용 소파 같은 게 있으면 딱일 텐데. 어! 이거랑 비슷하네! 가격도 저렴하고 좋구먼. 이걸로 할까?' 소파에 최대한 얼마를 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다 내가 정한 맥시멈 금액에 딱 맞는 소파를 발견했다. 내가 정한 금액은 최대 십오만 원.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이왕 살 거 소파 좀 좋은 거 사라고. 노놉! 내 집도 아니고 게다가 집도 좁다. 굳이 편한 거보다 그냥 이쁘고 싼, 집 분위기에 어울리는 게 낫다고 혼자 결론을 지었다. 역시 집은 분위기지.

'그래 그레이 색상 2인용 패브릭 소파로 정하자' 장바구니에 조심스레 담아 본다. 결제까지 진행하다 순간 멈칫한다. '아 가만 생각하니 내가 이불을 폈다 갰다 부지런하게 할 수 있으려나. 괜히 집만 지저분해지는 거 아냐. 잠깐 보류! 침대로 마음이 쏠리네' 카드 결제창을 조심스레 닫는다. 그리곤 열심히 침대 검색에 열을 올린다.

 이사 한지 열흘째. 아직 소파도 못 사고 침대도 못 샀다. 둘 다 조심스레 장바구니에만 담겨 있다. 곧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텐데. 요 며칠 내로 초이스 해야 하는데. 이놈의 결정장애. 제발 현명한 선택으로 날 이끄소서. '근데 이 집 꾸미기는 포기는 못하겠단 말이지. 윽. 고민이야.'

이사를 한 후 필요한 살림살이를 장만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는 편의 시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사 온 곳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중이라 집 앞 상가라곤 분식집과 편의점뿐이다. 배달 앱도 우리 동네엔 배달을 안 온다. 너무 슬프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이에게 배달 앱은 생명과 같은 건데 말이다. 난 면허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차도 없다. 이사 온 동네가 당연히 쓱세권인줄 알았는데 세상에. 쓱배송도 안된단다. 으악. 무겁게 장보고 대중교통을 타고 와야 하나. 고민을 하다 겨우 인터넷 장 보기로 배달이 되는 곳을 찾았다. 여러 번 시키기 귀찮아 일이 주 식량을 한 번에 주문했다.


 '아~ 이럴 때 차가 있음 얼마나 좋아. 장 보러 가거나 무거운 짐 들고 올 때 편할 텐데. 근데 차가 있음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고 보험료도 나가고 주유비는 또 어쩔 거야. 에잇! 감당하기 싫어. 일단 면허만 따고 차는 보류다! 아직 11번 버스가 튼튼하게 내 몸에 장착되어 있는데 무슨 차야'

잠시 차를 사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 오르다가 현실 앞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현실 타협. 역시 타협을 하고 나면 집착할 거리가 사라져 속이 후련해진다.

아직 풀지 못한 짐들을 간간이 계속 정리 중이다. 자주 신는 신발 몇 켤레만 꺼내 놓았는데 가을에 맞는 신발도 신어야겠단 생각에 신발을 담아둔 상자를 가져다 신발 정리를 했다. '샌들은 이제 여름 다 갔으니깐 한쪽으로 치워 놓고, 이제 슬슬 부츠를 신을 계절이 다가오는군. 부츠들은 눈에 잘 보이는 쪽에 두어야겠다. 가만 보자. 운동화가 다 오래된 거밖에 없다. 편하게 신는 스니커즈도 색이 다 바래버렸네. 스니커즈 하나 사야겠다. 스니커즈를 살까? 아님 굽이 좀 있는 운동화가 나을까?' 신발장을 정리하며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자주 신는 건 스니커즈다. 스커드에 신어도 어울리고 바지와도 잘 어울린다.


 '신발은 돈을 좀 투자해야 오래 신는데 말이지. 그런데 이사하느라 돈을 너무 많이 썼어. 다시 현실 타협을 좀 하자. 음. 지금은 스니커즈를 사는 게 낫겠어. 유용한 게 아무렴 최고지. 지난번에 oooo에서 샀던 스니커즈가 오만 원 밑이었던 거 같은데 그 브랜드 할인하는지 좀 알아봐야겠다.'

필요한 이것저것들을 구입하려다 보니 결국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는 건 역시 내 주머니 사정이다. 현재 자금난에 따라 내가 소유할 물건의 값은 달라진다.

문득 로또라도 되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며칠 전 친구가 내가 꿈에 나왔는데 아주 좋은 꿈같다며 복권 사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이번 주엔 로또나 한 번 사봐야겠다. 복권에 당첨되면 뭐 할까? 당첨되지도 않은 복권으로 부자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당첨되면 당장 소파도 사고 침대도 사고 운동화도 사야겠다. 아 그리고 당장 면허 학원도 등록해야지. 상상만으로도 이미 부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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