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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Jul 28. 2019

전 사양할께요, 너나 가지세요.

나에게 상처주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 마음의 상처에도 바를 연고가 있으면 참 좋을텐데


새살이 솔솔~상처엔 oooo 연고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 다쳐 엄마에게 달려간다. 훌쩍 거리는 아이는 엄마에게 상처 난 곳을 내밀며 여기가 아프다고 말한다. 엄마는 아이의 상처 위에 새살이 돋아 나는 연고를 발라 주며 입바람을 후후 불어준다. '자 이제 괜찮아질 거야' 아이는 엄마의 말과 몸짓에 안도감을 느끼며 웃음을 지어 보인다. 우리가 아는 상처연고의 광고 내용은 대부분 이런 스토리로 흘러가곤 한다. 시대가 발달해 요즘엔 새살이 돋아 나는 연고 외에도 붙이기만 하면 상처의 진물을 흡수해 딱지가 생기지 않고, 피부의 재생을 빠르게 돕는 재생 밴드라는 것도 있다. 이처럼 마음의 상처에도 잘 듣는 약이 있어 새살이 빠르게 돋아 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혼자 힘들어하지 않고 낑낑대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티끌의 상처가 모이면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어쩌면 관계는 상처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얕고 깊은 상처가 자신도 모르는 새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태산처럼 커져버린다. 압도적으로 커져버린 상처는 어느 순간 우리를 움켜쥐고 삶의 주인 행세를 한다.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의 좀비 같은 상처들은 나도 모르는 순간에 불쑥 불쑥 튀어나와 인생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미 받은 상처들은 또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마음 상함'에서 비롯된다. 마음 상함이란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즉, 자존감이 균형을 잃고 열등감으로 기우는 순간 사람들은 '마음이 상한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늘 함께 모여지내던 친구들이 갑자기 나만 빼고 따로 만난다. 버스정류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버스를 타기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새치기를 해버린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나보다 한참이나 늦게 온 사람의 메뉴가 먼저 나온다.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아내가 아무 까닭 없이 나에게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한다. 길 가다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네가 뭔데 나를 그렇게 쳐다보냐"라며 시비를 건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 안에서는 사소하지만 서로에게 마음 상함을 느끼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모든 일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음으로 시작이 된다.





서비스 직종에 있는 나는 이런 일들을 매일 같이 경험한다. 그중에 하나 예를 들자면 "아니 왜 여기는 이렇게 멀리 있는 거예요? 여기까지 내가 이렇게 와야겠어요?"라는 말과 " 도로에 주차했는데, 딱지 떼나요? 딱지 떼면 여기서 책임져주는 거죠?" 이 건물에 내가 업장을 차린 것도 아니고, 여기까지 온건 본인이 필요해서 온 선택이고, 엄연하게 이 건물에는 지하 주차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도로에 불법 주차를 하고서는 타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버리려는 못된 심보를 부리는 인간들이 있다. 이런 어이없는 질문에 본인들이 원하는, 즉 내가 자신들이 벌인 일에 책임을 져 주겠다는 식의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버럭 하고 화를 내기 시작한다. 혹 어떤 이들은 "너 내가 누군 줄 알아!!"라는 말과 함께 욕까지 섞어가며 나와 내가 일하는 업장, 그리고 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인들까지 싸잡아 삿대질을 하며 욕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정말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많은 일들이 매일 같이 벌어진다.)을 처음 접할 때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무방비 상태로 속수무책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내 인생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던진 말과 행동들 때문에 마음이 상했고, '왜 그때 이렇게 말하고 대처하지 못했지?'라고 스스로를 자책했었다. 자책감은 마음속에 상처로 남았고, 내 모든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저 사람들이 내가 만만해서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가?'라는 생각 때문에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별거 아닌 사람들 때문에  내 마음이 망가지는 것을 손 놓고 보고만 있지 않았다. 나는 긍정의 기운을 모두 끌어 모아  의식적 노력을 통해 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불교에는 '두 번째 화살에 맞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준 상처에 죄책감과 분노를 얹어 더 큰 상처를 받지 말라는 뜻이다. 첫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엉뚱한 사람에게분풀이를 하며 또 다른 상처를 만드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그렇다고 그들 때문에 내 자존감이 좀 먹도록 놔 둘 순 없어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애를 써도
우리 인생에서 상처를 일으키는 사건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이다.
상처를 일으키는 사건을
나와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마음이 상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는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신이 내게 주신 단 하나의 강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탄력이 아주 강한 회복력'이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나 타인이 내게 미치는 모든 감정들에 대해 예민하고 세심하게 느끼는 편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는 타인의 부정적 감정에 잘 휘둘리지 않으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한다. 하지만 업무 자체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인지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에너지가 급격하게 소진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불쑥 벌어지는 돌발의 상황들이 있다.



이럴 때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일단 내가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음을 인지하고 그 상황이 모두 종료될 때까지 기다린다.(상황이 종료되기 전까지 상대방에게 내가 쫄고 있다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ㅎㅎㅎ)


두 번째. 상황이 종료되면 상처받았던 내 감정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이러이러한 말과 행동을 해서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기분이 나빴다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 아주 가끔은 혼잣말로 그 감정들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정말 화가 났을 땐 메모지에 그 감정을 막 써 내려간 후에 갈기 갈기 찢어 버리기도 한다.


세 번째. 상대방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결부시키지 않는다. '너의 문제는 너의 것. 나는 그것을 사양하겠습니다. 너나 가지세요'라고 속으로 말한다.


네 번째.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숨을 내쉬면서 상처받은 감정들을 바깥으로 함께 내 뿜는다. 그리고 나를 회복시킬 좋은 에너지들을 생각하면서 숨을 크게 들이 마신다. 이렇게 몇 번 호흡을 하고 나면 금세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다섯 번째. 주변의 모든 것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 온전히 내 눈과 마음에 담아지고 있음을 확인한 후에 미소를 한번 씩~하고 지으며 다시 업무에 복귀한다.


신이 아닌 사람인지라 가끔은 이 방법을 바로 쓰지 않고 넘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감정들을 하루 동안 계속 끌고 가지 않기 위해서 시간이 좀 지난 후에라도 의식적으로 이 방법을 쓰곤 한다. (이건 지극히 저 혼자 터득한 제게 맞는 개인적인 방법입니다~ㅎㅎㅎ)



우리는 어떤 상처를 받을 때 속수 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그 사건과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폄훼에 해당하는 수준인지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그 사건이 자신의 가치를 폄하한 것이 맞는다고 판단됐을 때 그것이 마음의 상처로 남느냐 아니냐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상황에서 처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받는 것 같은 느낌'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그 느낌'을 상처로 남길 수도 있고 상대의 문제로 되돌려 줄 수도 있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허나 머릿속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나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평생 미워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럼 ' 모든 게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자니 그건 더 미칠 노릇이다.<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저자는 모든 일을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지금 이대로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지를 모르는 이들에게 자존감을 지기켜 살아가는 25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상처받았음을 시인하라.
2. 자기 인생의 해답을 밖에서 찾지 마라.
3. 관계를 끊지 말고 거리를 두라
4. 무작정 화를 내지 말고 다음 약속을  잡아라.
5. 복수의 끝은 달콤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6. 타인을 향한 마음을 닫지 마라.
7. 제발 모든 것을 당신 탓이라 말하지 마라.
8.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라.
9. 비판은 좋은 선물로 받아들이라.
10. 의식적 호흡, 그리고 명상을 하라
11. 뭉친 근육을 풀 듯, 경직된 생각을 풀어라.
12. 상처받은 순간의 감정들을 억지로 누르지 마라.
13. 화가 났음을 알려라.
14. 처벌은 분노를 차갑게 식힌 후에 하라.
15. 불평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16. 솔직해지자.
17. 체면 때문에 도움을 거절하지 마라.
18. 감정을 제거하고 오직 사실만을 바라보라.
19. 가장 아픈 곳을 찾아라.
20.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좀비 같은 상처를 꺼내라.
21. 모든 걸 분명히 짚고 넘어가라.
22. 두 개의 의자에 모두 앉아 보라.
23. 희생자에게 조종 당하지 마라.
24.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라.
25. 마음속에 의연함을 키워라.






# 내게 상처주는 것을 허락하지 말자.



나의 존재가치는 타인에게 있지 않다. 오로지 나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 문제를 한 발 떨어뜨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자존감의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느끼자. 만약 그 감정들이 고통스럽고 나를 힘겹게 할지라도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고 인정해야 한다.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 도망칠 때 '중독'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중독'은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뿐이다. 상황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상처받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상처받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면, 그 선택을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너는 나에게 함부로 상처를 줄 수 없다'라는 것을.



당신은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상처받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권리가

바로 당신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참고도서: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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