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일 준비를 해볼게
문장을 쌓아두는 건, 저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매력적인 사람을 곁에 두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니 별 수 있나요. 눈에 띌 때마다 줍고, 간직하는 수밖에요.
유병욱 <평소의 발견> p.214
요즘 책을 읽고 짧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오감과 영감을 포함한 육감의 안테나를 곤두세우려 노력하고 있어요. 세상 모든 것들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번뜩이는 어떤 영감을 줄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특히 집이 아닌 바깥세상에서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려고 노력해요. 외출할 땐 늘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을 들으며 내가 내는 소리 이외의 모든 소리들을 차단시켰죠. 외부의 모든 소리는 제 마음을 헝클어트리는 소음이라고 치부했었죠. 내게 아무런 득도되지 않을 소리들이니 그 소음들이 내 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대부분의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저만의 세계에 갇히면 글을 쓰기가 힘들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서 저와 세상의 접점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여럿이 같이 있을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그 시간 중 아주 잠시 동안 만이라도 세상 소리를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죠.
'혼자 외출할 때 웬만하면 이어폰을 귀에 꼽지 말아 보자. 그래야 세상 소리를 마음 안에 담을 수 있어. 그러니 아주 잠시 동안만큼은 세상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정말 듣기 싫은 소음 이외에 귓가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을 자연스레 들어보려 하고 있어요. 오늘도 그렇게 사소한 어떤 것들도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어요. 하지만 그간 차곡차곡 두껍게 쌓아두었던 습관이 힘이 어찌나 강하던지. 어느새 제 두 귀엔 이어폰이 꼽혀 있고 두 손으론 핸드폰을 쥐고 두 눈은 열심히 웹서핑을 하며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죠. 세상에 관심을 두어 볼까 하는 다짐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죠. 그렇게 전 또다시 저만의 세계에 빠진 채 길을 걷고 있었어요.
책과 음악, 다양한 매체들을 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문장을 쌓아 둘 순 있어요. 하지만 세상과 직접 부딪히며 만나게 되는 문장은 그 매력이 다른 것 같아요. 현장에서 만나는 문장은 뭐랄까 더 생동감이 넘친달까?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문장들이라 더 신선한 느낌이 들어요. 어느 땐 제가 겪었던 비슷한 상황들인데 내가 아닌 타인이 그 상황 속에 놓이게 되면, 제가 느꼈던 감정들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걸 종종 볼 때가 있어요. '아~! 이런 순간에 나는 이런데, 저 사람은 이렇게나 다르게 느끼는구나. 사람이 다 똑같지 않네'라는 걸 새삼 실감하죠. 그러면서 나와 타인의 다름도 알아가게 되죠.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는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걸 깜박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세상 소리에 관심을 갖기 위해 이어폰은 잠시 가방에 넣어 두었답니다. 그런데요. 이어폰을 꼽진 않았는데. 오만가지 생각들을 하느라 세상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줄도 몰랐네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바람에...
부단히 문장을 쌓아 두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책도 보고, 음악을 듣고 가사도 음미하면서,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도 관심을 두면서 말이에요. 작가가 문장을 쌓아두는 건 매력적인 사람을 곁에 두는 걷과 같다고 하니 저도 쌓아둔 문장의 매력 덕을 앞으로 좀 보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혹시 또 모르죠. 문장의 매력이 제 매력이 될지. 그래서 넘치는 매력을 둘 곳이 없어 기부를 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몰라요.하하하. 이렇게 또 문장의 매력에 잠시 얹혀 가 보는 상상을 하는 이 순간. 좀 행복한 기분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