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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Oct 12. 2019

달빛 속 그리움

함께 했던 그 어느 날 밤

휴일 어느 날. 늦은 오후 사촌언니네 가족들과 함께 겨울 이불을 사러 가기 위해 외출을 했다. 언니. 형부. 나. 6살, 9살 조카 이렇게 다섯 명이 함께 했다. 경기도 광주 외곽지역에 있는 대형 창고 형식의 점포에서 언니와 나는 각자의 집에서 쓸 이불을 고르고 저녁을 먹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형부가 운전하는 자동차 뒷자리 가운데 조카 둘을 양 옆에 끼고 앉아 저녁을 먹기 위한 장소를 향해 가고 있었다. 초저녁 아직 해 그림자가 어느 정도 남아 있던 하늘에 뜬 달을 보고 6살 조카가 말했다. '저기 봐봐 달이 자꾸 우리를 쫓아와. 이모 봐봐. 우리 차 계속 쫓아온다. 재 왜 자꾸 따라오지?'


차 창밖으로 자기를 계속 쫓아오는 달을 가리키는 조카의 작은 손가락을 보며 어릴 적 어느 날 제주의 밤이 떠올랐다. 그때 내 나이도 지금 내 조카 나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땐 각자의 역할을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함께 제주 어딘가를 다녀오던 저녁이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제주에는 높은 빌딩들이 많이 없던 때였다. 늦은 저녁 도로를 달리는 차는 우리 차뿐이었고 주변은 온통 풀과 나무들 뿐이었다. 차 창밖으로 노란 불빛을 우리에게 비추며 계속 따라오는 달을 보며 나도 이런 말을 했었다. ' 엄마 아빠. 저기 달 좀 봐봐요. 계속 우리만 따라와요. 엄청 빨리 따라오네 집까지 오려나 봐요.'


어린 조카가 달을 보면서 던진  말 한마디가 나의 어릴 적 기억을 소환시켰다. 온전한 가족으로 함께 했던 우리 가족의 어느 날 밤이 떠오르며 까맣게 잊고 지냈던 엄마 아빠의 얼굴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진짜 밤하늘의 달과 가까워진 아버지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떠오른 하늘 아래 그 어디선가 살아 있을 내 어머니.


조카가 가리키는 달을 향한 손가락이 마치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그 두 사람을 가리키고 있는 듯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창 밖으로 나를 비추는 달을 보다 며칠 전 조카가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그리움에 묻어 두었던 두 사람이 떠올라 끄적거려 본다.


달이 차오르는 것처럼 글을 쓰고 있는 내 목구멍으로 뭔지 모를 울컥함이 차오른다. 그리움과 원망이 한데 뒤섞인 울컥함. 지금 터져버리면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꿀꺽 침을 삼키며 그리움도 원망도 다시 저 깊숙한 곳으로 기어이 꾹꾹 눌러 버리고 말았다.


가끔 이렇게 생각치 못했던 어떤 것들이 내 기억 속 무의식의 잊고 있던 어떤  감정들을 소환시키곤 한다.

다음엔 또 어떤 것들을 통해서 어떤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올까?


그냥 달빛이 너무 좋아 달이 뜬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지난 그리움에 잠시 머뭇거린 이 순간.


솔직한 내 마음을 고백해본다. 조용히. 나만 들리는 목소리로.


보고 싶다고.

그리움 속 그 두 사람이.

아주 많이.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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