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렸다. 비몽사몽 두 눈을 비비며 화장실에 가기 전 냉장고 문부터 열어보았다. 간밤 재어둔 갈비에 양념이 잘 배었는지 확인하며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음, 아주 좋아. 맛있게 될 것 같군'
보통의 일요일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 내적 성장을 위해 재즈를 들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집에 온다. 요새 서로 이래저래 바빠서 연락도 자주 못했었는데 오래간만에 얼굴 볼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재어둔 고기를 확인하고, 창문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간단히 청소를 했다. '오기 전에 연락한댔는데 언제쯤 오려나? 갈비를 언제 쪄야 얘들이 오는 시간에 딱 맞출 수 있을까? 고기를 먼저 쪄야 하나? 아, 바지락 술국은 제일 마지막에 해야겠군. 잠깐, 큰 그릇이 어딨더라? 식탁은 작으니깐 교자상을 펴야겠네. 어디 보자~2시에 온댔는데 지금이 몇 시지?' 4시간 전부터 혼자 바삐 움직였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시가 되면 난 이미 흥분한 상태가 되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네게 보여줄 수 있겠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너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몇 시부터 해야 할지 절대 알 수 없을 거야......
적절한 의식을 지켜야만 해."
여우는 자신을 찾아온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의식이 뭐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잊혀지고 있어.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여우는 대답했다.
특별한 하루를 위해 금요일 밤부터 준비를 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것을 해줄 수 있을지, 무엇을 좋아할지, 밥을 다 먹고 나서 다과 상엔 무얼 내어줄지, 또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지 등등 사소한 것까지 생각했다. 여느 일요일과 다른 순간을 친구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내 집에서 일상의 피로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쉬다 갈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이제 출발하니 몇 시쯤이면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상차림에 들어갔다. 친구들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서둘러 준비했다. 행복했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의 설렘도 이랬을까?
'띵동'
'어서 와~이야~~~ 잘 왔다!!! 야!!!~~~!!!!'
'이야~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우와! 갈비찜 봐 맛있겠다 '
한 상에 빙 둘러앉아 시시콜콜 요즘 사는 이야기를 시작하며 식사를 했다.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부모들이 자식들 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쟤들 먹는 것만 봐도 기분 좋네. 자식 낳아서 입에 밥 들어가는 거 보면 기분 더 좋겠지? '
친구들은 갈비찜 맛있게 잘 만들었다며 밥공기를 싹싹 비웠다. 배가 터질 것 같다고 바지 단추를 풀던 친구는 결국 편한 고무줄 바지 좀 달라고 했다. 하하하.
행복이란 게 이런 거지. 도란도란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공기씩 먹으면서 소소한 일상 나누고, 웃고 떠들고, 공감하고, 이런 게 행복이지 뭐 더 있겠냐 싶었다. 중간중간 돈 버느라 팍팍했던 일, 앞으로 결혼해서 아이들 키울 이야기도 하며 잠깐 한숨을 쉬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린 잘 해낼 수 있고, 잘 살 수 있다며, 서로의 앞날을 응원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잘 먹었어~오늘 진짜 행복했다~!!! 고마워!!!'
'다음에 또 놀러 와!! 그때 또 맛난 거 해줄게!'
가끔은 여느 일상과 다른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하는 주말. 누군가 행복을 가득 안고 내게 와줄 때도 있지만, 어느 날은 내가 만든 행복을 한가득 건네 주기도 한다. 별거 아니지만 소소한 무언가를 내어줄 수 있어 행복했고, 친구들이 기쁘게 받아 주어 행복했던 오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바쁜 일상에 쫓겨 가까이 있단 사실을 잠시 잊고 있을 뿐.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바로 우리 곁에 늘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