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당연한거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기준에서 나온 평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모두 다르고, 때로는 완전히 모순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시도는 결국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 고단한 여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가하는 동물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을 평가하며 살아갑니다. 전 세계 80억 명이 존재한다면, 그만큼 서로 다른 평가 기준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국가, 가정, 문화, 종교 같은 커다란 환경부터, 내가 오늘 길을 걸으며 마주친 단 한순간까지, 모든 것이 나의 기준을 만들어냅니다.
가령, 우리는 법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한 국가의 법을 어긴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간주되곤 하죠. 하지만, 이 법조차도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 법을 이상적이라고 믿고, 또 누군가는 그것이 틀렸다고 느끼며, 다른 누군가는 그 법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 집단 안에서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기준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한 개인의 내면에서도 서로 충돌하는 기준들이 공존합니다.
성인들조차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전 인류의 정신적, 철학적 기반을 만들어낸 인물들조차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가르침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강한 반대와 비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으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당시 종교적, 정치적 기득권층에게는 그 가르침이 위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거부하며,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그가 전하려던 사랑과 화합의 가치는 일부에게는 혁명적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불편하고 위태로운 것이었습니다.
부처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제시하며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버릴 것을 설파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영감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의 종교적 관습이나 기존 체계를 옹호하던 사람들에게 도전적으로 비쳤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의 가르침을 너무 이상적이라고 비판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철학이라며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삶을 돌아보면, 그들이 받은 비판은 단순히 그들의 가르침이 틀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마다 다른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가르침이라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제각각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오늘날,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많은 종교인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다르고,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결국 완벽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줍니다.
성인들조차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두를 기쁘게 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스스로의 신념을 따르며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은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기보다, 그들이 옳다고 믿었던 길을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를 기준 삼아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삶에서 배워야 할 점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성인들조차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결코 그들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다양성과 각기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제공합니다. 모두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괜찮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면 된다.
사람마다 이상형은 다릅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상대방의 모습은 모두가 다르고, 그 기준은 각자의 환경과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식습관이나 건강에 대한 태도가 이상형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외모나 연락 빈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취미가 같아야만 상대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기준은 결국 우리가 이상형에 대해 갖는 기대가 얼마나 다양하고 주관적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은 오히려 더 높습니다. 서로의 기준이 일치할 확률이 낮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관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흔하지 않기에 더 소중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고,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는 결코 당연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느끼는 행복은 결국 이런 드문 만남에서 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과 기준 속에서 자란 두 사람이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함께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받은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런 관계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상대방이 변화하면서 더 이상 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나의 기준이 변화하면서, 이전에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더 이상 이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완벽히 이상적인 사람처럼 보였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며 나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서로에게 “완벽한 관계”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변화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서로의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고, 새로운 환경이나 경험이 두 사람 사이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관계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거나, 때로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탓하거나, 나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방이 변하거나 내가 변하는 것은 단순히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입니다. 이를 두고 “내가 잘못했다”거나 “상대방이 나를 실망시켰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변화가 관계의 본질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관계의 변화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변화는 우리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각자의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어떤 변화는 두 사람을 더 가까워지게 만들고, 또 어떤 변화는 두 사람의 거리를 벌리게 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삶의 일부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변화 속에서도 내가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너무 맞추거나, 나의 기준을 희생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려 하면, 결국 나 자신을 잃고 관계마저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변화 속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서로가 변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을 살고,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 가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관계란, 상대방의 변화를 존중하면서도 나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관계일 것입니다. 그런 관계는 비록 드물지만, 우리가 노력하고 소중히 여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자유를 줍니다. 모두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괜찮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진정으로 중요한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노력이 나를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기준에 부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다양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기준과 신념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