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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Apr 11. 2022

여름이 두려운 파워곱슬러

피할 수만 있다면, 막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름을 피하고 싶다. 여름이 오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막고 싶다. 사계절 중에서 '여름'이 제일 싫다. 해마다 여름이면 숱한 고데기질로 겨우 잠재웠던 나의 곱슬머리들이 이때다 싶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난 여름이 싫다. 찌는 듯한 무더위와 불쾌지수를 높이는 장마가 공존하지 않는가. 더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기나긴 장마 기간에는 습도까지 높아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날씨가 더우면 땀이 난다. 특히 나는 두피에 땀이 많은 편이다. 덕분에 여름에는 이른 아침, 30분 동안 공들여 곱슬 머리를 폈지만, 이내 땀을 흡수하고는 다시 꼬불꼬불한 곱슬 머리로 되돌아간다. 미칠 지경이다. 이미 한 번 땀을 머금은 곱슬머리는 다시 고데기를 해도 쉬이 펴지지 않는다. 


장마 기간에는 더더욱 곱슬머리가 위력을 떨친다. 어마어마한 습기를 머금고 평소보다 훨씬 더 부스스 해지고, 부풀어 오르기까지 한다. 때문에 나같은 파워곱슬러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기간은 '여름철 장마'때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는 아무리 고데기로 머리를 펴도 소용이 없다. 금세 다시 곱슬로 돌아오고야 만다. 결국 난 머리를 푸는 것을 포기하고 질끈 묶는다. 두상이 예쁜 편이 아니라 머리를 묶는 것을 꺼리지만, 어쩔 수 없다. 폭탄이 되어가는 머리를 풀어헤쳐 놓는 것보다야 깔끔하게 묶는 편이 훨씬 낫다. 

10년 전에 비해 고데기로 머리를 펴는 실력이 크게 늘었다. 이제는 매직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웬만한 헤어디자이너보다 머리 펴는 스킬이 좋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는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본격적인 여름철에 접어들기 전, 미용실로 달려가 매직을 하지 않으면 난 아마 여름 내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180도가 넘는 고데기를 부여잡고 도무지 펴지지 않는 머리와 한바탕 사투를 벌이겠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악성곱슬에다가, 모발 손상 정도도 심하고, 머리 숱도 상당한 터라 매직을 했다간 최소 2~30만 원 정도의 지출은 각오해야 한다. 특히 서울에서는 더더욱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섣불리 매직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큰돈을 들이더라도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는 반드시 매직을 해야 한다. 3주가 지나면 다시 머리가 구불거리고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여 고데기와 한바탕 씨름을 벌여야겠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 안 그래도 싫어하고 있는 여름을 더더욱 미워하지 않으려면.

도대체 언제쯤 악성곱슬을 해결하는 약이 개발될까. 나처럼 곱슬 때문에 무덥고 습한 여름이 두려운 사람을 위해 특수한 약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한 알만 먹으면 머리가 모두 펴지고 마는, 곱슬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런 약 말이다. 더는 남들보다 아침에 족히 30분은 더 일찍 일어나 바쁜 손놀림으로 고데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찾아오기를. 10년간 빌었지만, 오늘도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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