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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Apr 14. 2022

안온함을 주는 공간, 홍대 '책, 익다'

책 , 읽고 / 술, 익고/ 사람, 있는 곳 

 지난 1월, 떨리는 마음을 가득 안고 북페어 참여했다. '책보부상'이라는. 생에 첫 북페어에 참여한 것이기에 내색은 안 했지만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마치 신입사원처럼 바짝 얼어있었고, 얼마나 긴장했으면 계속 근육통이 찾아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멋진 행사에 참여한 독립출판 작가님들께 다가가고 싶었다. 미리 준비해 온 간식을 챙겨 용기 내어 다가갔던 작가님 중 '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를 제작하신 지윤 작가님도 계셨다. 


작가님은 내가 수줍게 건넨 간식을 기쁘게 받아주셨고, 그때부터 인스타를 통해 조금씩 소통의 폭을 넓혀 나갔다.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작가님께 데이트 신청을 했다. 첫 번째 데이트는 강남에서 아주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고, 두 번째 데이트는 작가님이 북토크를 진행하셨던 홍대의 '책, 익다'에서 하기로 약속했다. 약속 장소를 정하면서 작가님께 '책, 익다'라는 독립서점이 어떤 곳인지 듣게 되었고 책을 읽으며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멋진 곳에 내 책을 입고하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올랐고, 이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날 밤, 취침 시간을 늦추고 '책, 익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훑어보았다. 바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곰돌이 인형 '이곰'이도 인형을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 운영하고 계시는 다양한 워크샵 역시 시선을 빼앗았다. 게다가 대표님께서 서점을 전업으로 삼으신 것이 아닌, 직장 생활과 병행하시면서 퇴근 후 7시부터 책방을 여신다는 점도 경이로웠다. 직장생활만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세상에 퇴근 후 서점까지 운영하신다니. 이렇게 멋진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공간, 게다가 술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더없이 완벽한 곳에 내 책이 놓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았다. 
 


이튿날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입고를 거절당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기 때문에 더욱 긴장됐다. 얼마 후, 답장이 왔다. 어쩐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메일을 클릭하여 본문을 읽었다. 다행히 '책, 익다' 대표님께서는 입고를 허가해 주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제, 지윤 작가님과 그토록 고대하던 '책. 익다'에 방문하게 됐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확신했다. 난 앞으로 꽤나 자주 이곳에 오게 될 것이라고. 눈을 편안하게 하는 전체적인 색감, 대표님의 심사숙고 끝에 매대에 놓인 책들, 책과 어울리는 다양한 술들, 그리고 곳곳에 붙어 있는 손님들에 메모까지. 인스타 사진만 보고 갔다가 막상 들어가면 실망하게 되는 서점들도 적지 않은데, 이곳은 오히려 인스타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흘러나오는 음악, 분위기도, 인상 좋은 대표님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무엇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서가를 천천히 둘러보고, 공간 하나하나 구석구석 살펴봤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읽을 책에 어울리는 술을 골랐다. 지윤 작가님은 검붉은 '와인'을 난 향긋한 향이 일품인 맥주 '블랑'을 골랐다. 함께 술을 홀짝이며, 준비해온 책을 읽었다. 그리고 사장님이 내어주신 쿠키와, 지윤 작가님이 추천해 주신 치즈 안주도 함께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다. 그간 굳어있었던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분명 서점인데, 어떻게 이처럼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내 집보다 내게 더 안온함을 주었던 곳은 '책, 익다'가 처음이었다.


책을 읽고, 맥주를 홀짝이며, 치즈를 입에 품었다. 간간이 지윤 작가님과 이 공간이 주는 따스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어느덧 9시 반이 훌쩍 넘었고, 우린 겉옷을 입었다. 난 초반부터 눈여겨 봤던 어떤 시인의 책을 한 권 골라들었고, 그 사이 지윤 작가님께서는 나의 맥주까지 빠르게 결제를 하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렇게 얻어마셔도 되는지 모르겠다. 다음에는 내가 꼭 사야지!) 



결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잠깐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립서점 창업의 꿈을 안고 있는 나는 대표님께 운영에 대한 이것저것을 여쭈었다. 무례한 질문일수도 있었을 텐데, 마음 좋은 대표님께서는 시원시원하게 답변을 해주셨다. 또 자주 놀러오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수다를 떨다가, 지윤 작가님과 함께 문을 나섰다. 어딘가를 나서는 것이 이렇게 아쉬운 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나름대로 최대한 느릿하게 지하철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홍대입구에서 강남까지는 꽤 멀다. 지하철로만 50분이 넘게 걸렸다. 10시 반쯤 출발하여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대충 세안을 마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아까 찍어온 '책, 익다'의 풍경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시에 조만간 꼭 가야겠다는, 동행할 이가 없다면 혼자라도 가서 이번에는 맥주가 아닌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어야겠다는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하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시작되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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