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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May 08. 2022

주말, 지친 나를 달래는 시간

이번 주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주중에 회사에 가는 것 말고, 특별한 일정은 없었지만 유난히 피로도가 높았다. 심지어 어린이날에는 늘어지게 늦잠까지 푹 잤음에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이번 주말 내내 오로지 집에서만 머물렀다.

원래 계획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곳곳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휴지 한 장을 뽑아들고, 바닥 곳곳에 흩날린 머리카락을 주워 담다가, 결국 청소기를 꺼내들었다. 무선 청소기가 아니라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상당하지만, 재빨리 방 곳곳에 흩뿌져린 머리카락을 눈앞에 없애버렸다. 이윽고 바닥은 머리카락 한 줌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청소기를 제 자리에 정리해 두고, 돌아서는 찰나 화장실 물때가 눈에 스쳤다. 이 역시 모른척하고 싶었으나, 지금 눈에 보일 때 하지 않으면 또 언제 하나 싶어 분사형 왁스를 구석구석 뿌려주었다. 5분쯤 흐르고, 일전에 엄마가 사다준 청소용 솔로 타일을 있는 힘껏 문질렀다. 팔에 쥐가 날 정도로 문지르고, 변기까지 닦아주고 나니 화장실은 매우 쾌적해졌다. 지난주에 사둔 편백수 스프레이까지 뿌려주니 흡사 호텔 느낌이 물씬 풍기는 화장실이 되어버렸다.


밀려오는 뿌듯함을 내려놓고, 청소하느라 지친 매트리스 위로 몸을 날렸다. 날씨가 꽤 선선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에어컨을 틀었다. 습기 하나 없이 완벽한 휴식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은은한 향이 풍겨오는 이불을 덮고, 유튜브 앱을 켰다. 주말이라 좋아하던 유튜버들의 영상이 대거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게다가 어떤 유튜버가 깔끔하게 요약한 마블 유니버스 세계관 영상까지 보고 나니 거의 3~4시간이 흘러 있었다. 

한껏 몰입해서 영상을 보고 나니, 졸음이 밀려왔다. 영상을 켜둔 상태로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어느새 토요일 밤이 되어 있었다. 곧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올 시간, 배달 앱을 열어 얼마 전부터 먹고 싶었던 치킨을 주문했다. 토요일인데 이대로는 아쉬워 집에 오는 동생에게 부탁해 시원한 맥주 한 캔도 부탁했다.

얼마 뒤, 동생이 맥주를 안고 도착했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TV 앞에 앉았다. 마침 '나혼자 산다' 재방송이 하고 있었다. 신나게 치킨을 뜯으며 엉망진창으로 운동하는 나혼산 멤버들을 보며 동생이랑 배가 찢어지도록 웃었다. 한바탕 깔깔깔 웃다보니 누적되었던 피로도 달아나는 듯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글을 써 볼까 고민했다. 지금 작업하던 원고를 마무리하면 더없이 완벽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어쩐지 모를 확신이 들었기에. 황급히 노트북을 펼쳤으나, 어찌된 일인지 글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머리를 쥐어뜯다가 황금 같은 토요일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고 넷플릭스를 보며 깊은 잠에 빠졌다. 

알람을 꺼둔 채로 푹 자고 일어나니 오전 9시였다. 토요일에 하지 못한 일이 산적해 있었지만, 오늘도 내일의 나를 위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로 했다. 어제 먹었던 배달 음식의 흔적들만 가볍게 정리해 놓고, 또 다시 유튜브의 세계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자고 다시 영상을 보고 무한 반복하니 어느덧 지금 이 시간이 되었다. 

이틀을 간단한 청소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 조금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쉬지 않았더라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미련 없이 푹 자고,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면 다가올 한 주 역시 스트레스와 피곤에 휩싸여 보낼 것이 분명하니까. 주말 동안 푹 쉰 나를 한껏 칭찬해 주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다. 따뜻한 차로 온몸 구석구석 온기를 보내 이미 이완된 몸이지만, 조금 더 부드럽게 풀어준 뒤에 다시 이불로 몸을 감쌌다. 이대로 잠들면 여느 때보다 좀 더 상쾌한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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