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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May 11. 2022

퇴근하고 곧장 귀가하지 않는 이유

일이 많은 요즘이다. 매일 양질의 콘텐츠를 생성해야 되는 날의 연속. 때문에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몸도 마음도 방전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문을 열고,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 캔을 꺼내어 들이킨 뒤, 창문을 열어 맑은 공기를 집으로 들인 뒤,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고 잠들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 욕망을 억누르고 난 집 근처 스타벅스로 향한다. 두 번째 독립출판물의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서. 

두 번째 독립출판물의 제목은 '나의 모난 마음을 전시합니다'다. 그간 나홀로 알고 있었던 모난 순간들을 일종의 작품처럼 전시하는 독특한 컨셉의 에세이다. 덕분에 원고 작업을 하는 매 순간, 그동안 묻어두었던, 애써 잊고 있었던 나의 모난 모습들을 마주해야 하기에 정신적 피로가 상당하다. 퇴근 후, 원고 한꼭지의 1/3 분량만 써도 눈앞이 아득해 지는 일이 태반이다. 

처음 예상했던 작업 기간은 한 달이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계속해서 작업 기간은 늘어났고, 겨우 퇴고 작업을 하고 있으나 또다시 덜어내야 할 원고가 생겨 다시 새로운 꼭지를 추가하는 중이다. 게다가 들여다볼 때마다 부족한 구석이 눈에 보여 도무지 빠르게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덕분에 매일 퇴근 후, 동네 스타벅스가 문을 닫을 때까지 파트너들이 널려있는 머그컵들과 쓰레기들을 치우러 나설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통 밤 9시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온몸이 천근만근이라 발걸음이 무겁다. 10분이면 되는 거리를 거의 장장 20분에 걸쳐 도착하면 다시 노트북을 펼쳐든다. 그러나 이미 피로가 쌓일 만큼 쌓여 원고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 한문단도 더 이어 쓸 수가 없는 것. 결국 내일의 출근 가방에 노트북과 충전기를 쑤셔넣고 대충 세수만 하고 누워버린다. 그리고 잠시 유튜브를 보다가 잠들면 내일의 출근 시간이 임박해 있다. 

최근 목디스크로 인해 이 루틴이 무너졌었다. 도무지 작업을 할 수가 없었고, 출간 일정도 뒤로 늦추었다. 다행히 큰 시술을 받을 필요 없이 약물 치료만으로 통증이 줄어들었고, 다시금 나만의 퇴근 후 루틴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추가할 원고들이 조금 남았지만, 일주일 정도만 더 바짝 작업하면 5월의 마지막 금, 토, 일에 열릴 북페에서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듯하다. 

오늘도 역시 퇴근 후에 곧장 집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어제 야무지게 챙겨둔 노트북과 각종 장비, 그리고 목차가 빼곡히 적인 노트를 챙겨들고 스타벅스로 갈 것이다. 지치더라도, 버겁더라도, 졸음이 밀려와도, 오늘 목표한 작업은 꼭 마무리 짓고 가뿐한 발걸음으로 돌아가야지.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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