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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Jun 14. 2022

잔인한 영화를 보지 못하는 이유

내겐 너무 버거웠던 영화 '범죄도시 2'

개봉 후, 순식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범죄도시2'. 워낙 재미있다는 후문을 들었지만, 선뜻 보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난 잔인한 범죄 영화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첸이 나오는 전작도 보지 못했다. 아무리 영화지만, 칼로 누군가를 찌르고, 도끼로 난도질하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아주 오래 전, 손현주 & 문정희 배우 주연의 영화 '숨바꼭질'을 본 적이 있다. 지인의 권유에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봤다가, 영화 상영 도중에 화장실로 뛰쳐가 변기를 부여잡았던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한동안 불을 끄고 잠들지 못했다. 옷장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그만큼 영화의 잔상이 오래 남았고, 한 달이 넘도록 두통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심각한 후유증을 겪은 뒤로 더는 공포, 스릴러, 범죄 영화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야 하는 영화는 무조건 피해왔다.


넷플릭스를 구독하면서도 '킹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을 보지 않았다. 나의 시청 목록에는 늘 달달한 연애물이나, 공포스러운 부분이 전혀 없는 재난 영화가 남아있을 뿐. 누군가를 칼로 죽이고, 위해를 가하며, 좀비나 귀신이 나오는 부류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내가 '범죄도시2'를 보게 되었다. 함께 간 일행이 워낙 보고 싶어 하는 눈치라, 어쩔 수 없이 봤지만 러닝타임 내내 속이 좋지 않았다. 손석구 배우의 서늘한 눈빛 그리고 무자비함에 계속해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기 바빴다. 마동석 배우 특유의 연기 덕분에 유쾌한 장면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았다. 그저 내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베트남의 손석구 집에서 벌어지는 살육전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도 생생하게 그려져 하마터면 또다시 영화관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부여잡을 뻔했다. 


영화 후반부에는 '두통'이 시작됐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끝나자마자 시원한 물을 쭉 들이켜고, 밖으로 나가 찬바람을 쐬었다.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밀려오는 스산함에, 자꾸만 떠오르는 손석구 배우의 서늘한 눈빛에 자꾸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늦은 밤, 영화를 봤던 터라 집에 돌아오니 곧바로 자야 할 시간이었지만 쉬이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결국 불을 끄지 않은 채,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눈을 붙였다. 잔인한 장면을 많이 봐서 그런지,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누군가에게 쫓겨 미친듯이 어느 외진 길을 달리는 꿈을 꾸다가 눈을 떴다. 불쾌한 꿈을 떨쳐내려 세수라도 해보려고 화장실로 가 거울을 봤더니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렇게 데미지가 클 것을, 도대체 왜 그런 영화를 봤던 것인지. 어제의 내 선택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앞으로 다시는 후회할 짓은 하지 말아야지. 


+ 함께 간 지인은 장첸이 나왔던 전작만큼이나 이번 편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전작보다 훨씬 덜 잔인했고, 코믹적인 요소가 많았다고. 한 번 더 보고 싶을 만큼 재미있었다고 했다. (물론, 개인 차가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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