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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Jun 14. 2022

#1 당신의 못난 아들로부터  

- 한유정 스토리 컬렉션

*한유정 스토리 컬렉션 연재를 시작합니다. 

에세이, 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주 2회, 업데이트를 진행합니다. 


스토리 컬렉션에 연재된 원고는 추후 독립출판물 형태로 출간될 수 있음을 밝힙니다.


#1 당신의 못난 아들로부터 (소설)


- 주인공 : 정민 


정민은 요즘 괴롭다.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2년에 걸쳐 만반의 준비를 거쳐 응시했던 승진 시험에도 최종 탈락하고 말았다. 이번엔 꼭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정민. 이 비극적인 소식을 어떻게 고향, 부산에 계시는 부모님께 전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도저히 집에 전화를 걸 수 없었던 정민은 집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격이 올라 4캔에 만 천 원인 세계 맥주와 복스러운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 4병을 사서 집으로 들어온다. 안주는 없다. 승진에 실패한 자신에게 안주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두컴컴한 집.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 터덜터덜 집에 들어가 옷을 벗어던진다. 양말도 아무렇게나 벗어둔다. 검은색 비닐 봉지에 든 소주와 맥주 캔을 짐이 쌓이고 쌓여 제 기능을 상실한 식탁 위에 쏟아붓는다. 주방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큰 컵을 하나 챙겨 다시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무 맥주나 골라 잡아 전부 붓고 소주도 조금 붓는다. 비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위에 들어가면 다 똑같으니까. 


벌컥벌컥 멋대로 섞은 술을 마신다. 정민은 점점 취해갔다. 그동안 승진 시험 준비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 피곤했던 정민. 피로도가 높을수록 술에 잘 취할 수밖에 없다. 정민은 점점 몽롱해졌고, 그렇게 바닥에 쓰러졌다. 얼마나 잤을까. 정민은 겨우 눈을 떠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밖을 살폈다. 아직 미처 동도 트기 전의 새벽이었다. 점점 여름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새벽 공기는 차다. 갑자기 스며드는 한기에 정민은 거실 한 편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이불을 가져와 덮었다. 


몸이 좀 따뜻해지자, 술이 깨기 시작한 정민.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을 주워든다. 부재중 전화 10통. 카톡 25통. 자정 무렵까지 정민을 핸드폰을 울려댄 주인공은 다름 아닌 부산에 계시는 엄마였다. 부산 남포동에 있는 작은 호프집을 운영하는 정민의 엄마. 그녀는 아들의 승진 소식이 궁금해, 장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아들에게 연락을 해왔던 것이었다. 


"우리 아들, 승진 시험은 어떻게 됐어?"

"엄마가 오늘 아침에 집 근처 절에 가서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

"우리 아들 승진 시험 합격하게 해 달라고"


카톡을 확인한 정민.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정민이었지만 어찌할 수 없이 계속 눈물이 앞을 가렸다. 승진 실패에 대한 설움,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와서였을까. 곤히 자고 있는 옆집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이불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숨이 넘어갈 듯 울고 또 울었다. 


1시간쯤이 흘렀을까. 겨우 진정이 된 정민. 시계를 확인했다. 6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부지런한 정민의 엄마가 일어났을 시간이다. 정민의 엄마는 매일 6시 반이면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집 앞에 도착해 있는 신문을 읽으니까. 흘린 맥주를 닦았던 휴지로 대충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쓱쓱 닦아낸 정민은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정성을 담아. 


"엄마, 아들이야. 나 진짜 죽기 살기로 준비했는데, 이번에도 시험에 떨어졌더라. 엄마가 얼마나 기대했을지 잘 알아. 그래서 더 잘 하고 싶었는데, 남들 퇴근하고 놀 때 난 이 악물고 시험만 준비했는데... 억울하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고 속상하고 매번 떨어지는 내가 미워 돌아버리겠어. 난 언제쯤 엄마 호강시켜 주는 아들이 될 수 있을까? 이번에 승진해서 연봉 오르면 엄마 일 나갈 때 타고 다닐 경차라도 할부로 사주려고 했는데...면목이 없다. - 당신의 못난 아들로부터"


한참 후, 정민은 엄마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아들, 넌 한 번도 못난 아들이었던 적이 없어. 맹세코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단다. 앞으로 네가 또 실패를 겪어도, 좌절해도, 절망에 빠져도, 엄마에게는 못난 아들이 아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아들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사랑한다 내 소중한 아들"


언제나 엄마에게만큼은 이 세상 가장 귀한 사람인 정민. 엄마의 응원에 다시 힘을 내기로 결심했다. 어지러이 놓인 술병들을 모두 치우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홈페이지에서 그가 클릭한 카테고리는 바로 '이것'


"대한기업 298회차 승진 시험 예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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