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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Oct 13. 2022

어느 20대 직장인의 게으름을 낱낱이 고백합니다.

요즘 내 일상을 다섯 글자로 줄이면 이렇다. 


‘죽을 맛이다’
 
피로도 최상. 스트레스 지수 최고치. 다크서클의 농도는 절정. 매일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아주 엉망진창이다. 그동안 1일 1식을 시전하며, 억지로 불어난 살을 빼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콜라까지 끊고, 다이어트 보조제를 수시로 먹어도 쉽사리 빠지지 않던 살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에 2끼 이상 챙겨 먹고, 그래도 모자랄 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에너지바까지 우걱우걱 씹어 먹고 있음에도 체중계에 올라서면 날로 줄어드는 몸무게에 깜짝 놀라곤 한다. 아, 역시 가장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은 ‘스트레스’와 ‘피로’였던 것인가. 
 

후배 직원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업무의 양은 내가 쉬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출근을 해서,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업무일지를 쓰다 보면 숨이 턱 막힐 때가 많다. 내 손은 그저 두 개뿐인데, 주어진 업무들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반드시 내 손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업무가 어쩜 이리도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인지. 애써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업무일지 작성을 마감하고, 차가운 물 한 잔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업무를 하기 시작한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사실 나는 요즘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닌 ‘쳐내고’ 있다. 아주 재빠른 손놀림으로 업무들을 쳐내지 않는다면, 제 시간에 퇴근하는 희열을 맛볼 수 없으니까. 
 

오후 6시, 퇴근 시간이다. 점심시간에도 부지런히 손을 놀려 업무의 벽을 부수어 나갔지만, 여전히 남은 업무들이 상당하다. 추가 근무를 할 때도 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완전히 방전이 되어버린 나는 모른 척 눈을 감고 퇴근 인사를 내뱉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방 속에는 오늘은 반드시 카페에 가서 작업 중인 책의 원고를 다듬어 보겠노라며 챙겼던 맥북이 내게 질문을 던진다.
 
 “너, 오늘도 설마 집에 갈 거니? 카페 가서 작업 안 할 거니?”
 
질문을 넘어선 집요한 추궁에도, 나는 애써 가방의 지퍼를 닫으며 집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비밀 번호를 누르고, 좁지만 안락한 원룸에 도착하면 나는 간신히 손만 씻은 채 곧장 이불 속으로 완전히 방전된 몸뚱이를 내던진다. 세탁기에는 눅눅한 물기를 머금은 빨래들이 기다리고 있고, 방바닥에는 머리카락들이 굴러다니고 있지만 애써 외면한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참 부지런했던 나는, 도무지 줄어들지 모르는 스트레스와 축적되는 피로로 인해 점점 변해가고 있다. 미국변호사 유튜버를 보며 미라클 모닝을 실천했던 나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모닝페이지용 노트는 이미 주인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아침에 명상을 한 뒤, 마시겠다며 구입해둔 차도 종이 케이스 안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다. 늘 윤이 나도록 닦아주던 목걸이와 반지에도 녹이 슬어있다. 더 이상 내 온기가 전해지지 않아서겠지. 
 

분명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6.5평에 불과한 작은 원룸인데, 코앞에 있는 냉장고에 있는 생수조차 꺼내 마시기가 힘들어 마치 바주카포처럼 생긴 거대한 스탠리 텀블러에 물을 가득 담아 머리맡에 두기 바쁜 나. 달라진 나의 모습에 함께 사는 여동생도 매일 놀라고 있다. 
 
비극적이게도, 아무리 비싼 컨실러를 써도 다크서클이 가려지지 않는다. 화장만 두꺼워져 금세 무너져 내릴 뿐. 눈가에 짙게 자리를 잡아버린 다크서클은 아마 영영 나를 떠나지 않을 모양이다. 
 
 오늘도 사실 퇴근 후에 곧바로 집으로 뛰어가고 싶었다. 곧장 달려가 전기장판을 켜고, 나의 이불 요새를 더 안락하게 만들어 깊은 잠에 빠지고 싶었다. 그러나, 일주일 중에 하루는 반드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데다가, 모임원들과의 약속이 있으니 귀가의 유혹을 냉철하게 뿌리쳤다. 퇴근 전, 고농도 비타민 주스를 목구멍에 털어놓았다. 자못 비장한 각오로 신발 끈을 고쳐매고 모임 장소로 가는 만원 버스에 있는 힘껏 피로에 찌든 나의 몸뚱이를 욱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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