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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Oct 17. 2022

#8 불쾌한 순간이 넘쳐 흘렀던 최악의 하루


#8 <소설> 불쾌한 순간이 넘쳐 흘렀던 최악의 하루

주인공 : 소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소연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소연은 한동안 취업이 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절반. 겨우 통과하여 1차 면접을 봤으나, 어떤 연유에선지 면접관들은 소연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토익부터 오픽, 다수의 대외활동 및 봉사까지. 스펙은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러나 번번이 떨어졌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매달 70만 원씩 용돈을 주며, 소연을 뒷바라지하던 부모님도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고 말았다. 지칠 대로 지친 이제 기자의 꿈은 포기하겠다는 결단을 내렸을 때 대학교 때 꽤 진하게 지냈던 조교 선배로부터 카톡이 날아들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자기가 아는 기자님이 지역의 작은 신문사에서 요청을 받았는데, 공석이 생겨 신입 기자를 추천해 달라고 했단다. 그 선배는 친한 기자의 요청에 문득 소연이 떠올랐고, 그 길로 바로 소연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답장을 하기 위해 키패드를 두드리는 시간도 참을 수 없었던 소연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선배에게 추천해 주시면 면접을 보러 가겠노라 대답했다. 


일주일 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갔다. 동대구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동성로 인근에 위치한 신문사 앞에 내렸다. 소연은 내심 깜짝 놀랐다. 영세한 규모라고 미리 전달받긴 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았다. 게다가 건물은 당장 내일 재개발을 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만큼 남루했다. 3층에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전당포가 있었고, 2층은 가발을 제작해 주는 업체가, 1층이 바로 선배가 추천해 준 신문사였다. 


'끼이이익' 


시트가 너덜너덜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은 마치 닭장 같았다. 스무평 남짓한 사무실에 책상과 의자들이 좁은 간격으로 붙어있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니, 모든 이들이 소연을 쳐다보았다. 웃긴 건,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남성이었다는 것. 이상할 만큼 남성 직원의 비율이 높은 곳이었다. 당황한 소연이 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이자, 딱 한 명 있는 여성 직원이 그녀를 불렀다. 


'거기 아가씨!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가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가니 2000년대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체리색 식탁과 등받이 부분의 색깔이 바래버린 낡은 의자 2개가 있었다. 경악스러웠지만, 앉아서 면접을 준비하려는 찰나에 아까 소연을 면접장으로 안내해 준 직원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커피 드세요?' 


'커피 좋아하시면 뒤에 커피 있으니까 알아서 타 드세요~'


엥? 이건 무슨 소리인가. 2년간 크고 작은 수많은 신문사에서 면접을 봤지만 면접자 보고 직접 커피를 타서 마시라고 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어이가 없는 소연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직원은 다시 제 자리를 찾아서 가버렸고 소연은 가방 속에 넣어둔 냉수 한 모금을 마시며 마음을 다잡았다.


5분쯤이 흘렀을까. 면접관이 들어왔다. 사장인 듯했다. 그는 대뜸 소연을 보고 몸무게가 몇 킬로가 나가냐고 물었다. 살이 좀 쪄 보인다고 덧붙이면서. 아니.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면접에서 몸무게 타령인 것일까. 어이없음을 넘어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한 소연은 "제가 최근에 몸무게를 재어 보지 않아서요. 잘 모르겠습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사장은 "아니, 아직 아가씨인데 몸무게도 매일 안 재어 보면 어디 쓰겠나?"라며 눈을 흘겼다. 다음 질문은 더더욱 충격적. 


"우리 회사는 여직원들이 청소를 해요. 지금은 여직원이 김과장 혼자밖에 없어서 출근 시간 1시간 반전에 나와서 청소를 혼자 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점심 밥도 지어야 해요. 반찬은 다른 식당에서 받으니 밥이랑 국만 하면 돼요. 할 수 있겠어요?"


이 무슨 망언이란 말인가. '여직원'만 청소를 하는 것도 기가 막힐 지경인데 세상에 밥을 하라니. 그것도 사장 포함 스무 명의 식사를 모두 챙기라니. 소연은 말문이 턱 막혔다. 적막이 이어지자 사장은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거! 면접 보러 온 게 맞나? 아니 왜 대답을 안 하나?"


딴에 열받은 것인지 사장은 하대를 하기 시작했다. 대답할 가치도 없어 소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사장은 옥타브를 높여 고성을 질렀다. 


"아니, 면접 보는데 이 무슨 짓인가?"


소연은 사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여기가 이런 곳일 줄 알았다면 그 비싼 KTX비 들여서 여기까지 안 왔을 겁니다."


소연은 면접을 보느라 벗어두었던 겉옷을 챙겨 면접장을 나와버렸다. 아까 열고 들어온 문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사장이 면접장 밖으로 뛰어나와 삿대질을 하며 막 소리를 질렀지만 소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신기한건 아무도 소연을 잡지 않았다. 이런 일이 또 있었던 것일까. 


아무런 제지 없이 밖으로 나온 소연은 택시비도 아까워 버스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발가락을 죄어오던 구두를 벗어 가방에 넣고 편한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당할 길이 없어 곧장 편의점으로 들어가 콜라를 사서 털어 넣었으나 한 번 지펴진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온몸을 휘감는 불쾌함과 짜증 그리고 분노. 이대로 기차를 탔다간 답답해서 박차고 나올 것만 같아 콜라를 샀던 편의점으로 다시 뛰어들어갔다. 결제를 마치고 나온 소연의 손에 들린 것은 500ml 맥주. 표면에 물기가 맺힐 정도로 차가운 맥주를 역사 구석에 앉아 잠시도 쉬지 않고 목구멍으로 쏟아버린 후에야 소연은 간신히 서울행 KTX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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