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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Nov 15. 2022

쓸모없다고 여겼던 어느 원피스

석 달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원피스 한 벌을 구입했다.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언제쯤 배송이 오나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이틀 만에 제품을 받아볼 수 있었다. 커터칼을 가져오는 시간도 아까워 손톱을 이용해 포장을 찢고 입어본 원피스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너무 딱 맞는 데다가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이가 길었다. 값비싼 제품은 아니지만, 상세페이지 속 핏과 분위기가 예뻐서 구입한 제품인데 실망이 컸다. 


곧바로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앞으로 영영 입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그러다 오늘 아침, 입을 옷도 마땅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망한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살이 조금 빠져서인지 끼이는 곳 없이 쏙 들어가는 데다가 가을을 맞아 새로 장만한 부츠를 신으니 바닥에 전혀 끌리지도 않았다. 또 장시간 걸어두어서 그런지, 소재 특유의 냄새가 싹 빠지고 부드러워져 입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렇게 원피스와 코트를 입고 출근하는 길,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타부서 직원을 만났다. 그녀는 원피스를 보자마자 "어머, 선생님~ 이런 것도 잘 어울리시네요.  원피스 어디서 사셨어요?"라고 말했다. 행거에 무려 3개월간 묻어두었던,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던 원피스가 오히려 신경 써서 입었던 지난 옷들보다 훨씬 더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닌가. 웃으며 그녀에게 화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원피스가 그러하듯,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흘렀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할 수도 있겠구나.'


나 역시 지금은 어둠 속에 침잠해있지만, 오늘의 원피스처럼 언젠가 때가 되면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한껏 웅크려있지만, 기회가 찾아온다면 힘껏 꽃피우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반드시 찾아오리라 확신하는 그날을 위해 계속해서 나는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단련하고 있다. 멀지 않은 날, 그날이 찾아와 이제껏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여과 없이 선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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