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곁에 머무르는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을까. 절정에 이르렀던 단풍은 이제 땅으로 곤두박질쳐 거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시선을 돌리면, 환경미화원분들이 진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낙엽을 쓸어내고 계신다. 지난해 큰마음 먹고 여러 벌 장만한 코트를 입을 시간도 없이 가을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젠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다. 아니, 시리다.
오늘은 옷장 속에 묵혀두었던 롱패딩을 꺼내 입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았길래 수건을 있는 힘껏 털고 섬유탈취제를 잔뜩 뿌렸다. 4년 전 구입했던 네이비색 유니클로 롱패딩. 이젠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됐지만, 당시 이십 만 원 가까이 거금을 주고 구입한 데다가 입었을 때 그 특유의 느낌이 좋아 충전재가 모두 빠졌음에도 도무지 버릴 수가 없다. (내년에는 꼭 버려야지!)
아무튼 4년이나 된 털 빠진 롱패딩을 입고 출근하는 길, 이젠 사라져 가는 가을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정처 없이 흩어져 있는 낙엽을 계속해서 눈에 담았다. 이번 가을에는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았는데, 기나긴 리스트 중에서 단 하나도 해보지 못한 것 같다. 부모님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단풍 구경 한 번 가지 못하고 겨울을 맞이하게 생겼다.
잠시도 숨 돌릴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왜 가을의 정점을 놓쳐버린 것일까.
내가 절정의 순간을 놓친 것일까, 아님 가을이 내게 머문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