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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Dec 12. 2022

#11 글쓰기 모임 운영은 처음이라서요


<소설> 주인공 : 유선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유선은 버스 정류장을 목전에 두고 배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파리한 얼굴로 정류장 앞에 쓰러진 그녀를 발견한 행인이 119에 신고를 했고 그녀는 인근의 대학병원 응급실 베드 위에 누울 수 있었다. 소식을 듣고 타지에 계신을 부모님을 대신해 남자친구가 황급히 달려왔다. 


우선 혈액검사부터, MRI까지 각종 검사를 의뢰해놓고 다음날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 워낙 통증이 심해 응급실의 딱딱한 베드에서 하룻밤을 보낸 유선과 남자친구. 유선은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곧바로 외래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 2층으로 올라갔다.


평일인데도 병원에는 환자가 많았다. 겨우 3~4살로 보이는 어린아이부터 허리가 꼬부라져버린 90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오고 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유선은 깜빡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남자친구가 유선을 흔들어 깨웠다. 


"간호사가 당신 이름을 불렀어. 이제 진료 보러 같이 들어가자."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들것에 들려 병원에 왔지만, 진통제의 효과인지 유선은 스스로 걸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은 긴장된 발걸음으로 들어선 진료실에는 나이 지극한 의사가 앉아있었다. 그는 흘러내린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말했다. 


"환자분, 배가 아픈지 오래 됐나요?"


"1년쯤 전부터 위경련이 심했어요. 가끔 구토 증상도 있었고요."


"근데 왜 병원에 빨리 가질 않으셨죠?"


"네? 저 병원에 갔었어요. 근데 단순 스트레스성 위경련이라고 하시던데요?"


유선이 놀란 눈을 하며 의사를 바라보자, 그는 잠시 고뇌에 빠졌다. 


길어지는 침묵에 간호사가 헛기침을 하자, 의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김유선 환자분, 검사 결과 위암 2기가 의심됩니다."


유선은 의사에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의사는 조직 검사 결과, 위암2기가 맞는다면 수술을 통해 위의 80% 이상을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 아직 전이가 된 것도 아니기에 수술만 하면 충분히 살 수 있으니 희망을 가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로 유선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고, 남자친구도 1달 무급 휴가를 신청했다. 큰 수술을 받는 그녀의 옆을지키겠다며 말이다. 그렇게 수술 일정이 잡혔고, 유선은 암 환자 전용 병동에 입원하게 됐다. 다인실 병실이 없어 유선은 어쩔 수 없이 하루에 45만 원에 달하는 1인실에 입원하게 됐다. 비용은 어마어마했지만, 대신 시설은 끝내주게 좋았다. 보호자인 남자친구가 마음 편히 잘 수 있는 침대도 있었고, 공기청정기나 냉장고, 최신형 노트북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수술까지는 3주가 남았다. 그동안 유선은 계속해서 암 세포의 사멸을 촉진하는 주사제를 맞아야 했다. 특정한 시간에 간호사가 들어와 약물을 투여하는 것 외에는 무료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진통제를 주기적으로 맞고 있는 터라 쓰러진 그날처럼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따분해 보이는 그녀를 위해 남자친구는 근처 교보문고에 들러 책 10권을 사다 주었다. 


에세이부터 소설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그가 사다 준 것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한유정이라는 작가가 쓴 「나는 글쓰기 모임의 리더입니다」라는 책이었다.

마치 불을 연상하는 듯한 눈을 사로잡는 강력한 표지에 유선은 자신도 모르게 책을 펼쳐들었다. 40대에 접어든 저자는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총 150개의 글쓰기 모임을 운영해왔다고 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수많은 모임들을 운영하며 겪었던 희열과 좌절감, 그리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노하우까지 모두 담겨 있었다. 매력적인 책이었다. 이 책만 읽으면 모임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유능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샘솟을 정도로.


사실 유선은 위암 발병 사실을 알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모임을 운영했었다. 매주 수요일 퇴근 후, 안국역 인근의 카페에서 만나 함께 글을 쓰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모임을 개설하고 인원 수는 점점 늘어 어느덧 열다섯 명에 이르렀다. 인원이 많아지니 모임에 적합한 장소를 대관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따랐다. 공들여 모임 장소 대관에까지 성공했는데, 갑자기 당일에 사정이 있다며 모임을 취소한 사람 때문에 운영자인 유선이 부족한 금액을 채워 넣어야 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 역시 배워가는 과정이라 생각했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유선을 힘들게 한 건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모임의 성격이 변질되는 것. 분명히 함께 모여 꾸준히 글을 쓰자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글쓰기보다는 재테크 공부를 위한 모임으로 성격이 변해갔다. 글쓰는 시간보다 재테크, 부동산 등 경제적인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이들이 많았다. 

유선이 중간에서 수시로 모임의 흐름을 바꿔보려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유선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금세 다시 모임원 중 누군가가 "아니 요즘 금리 왜 이렇게 높아요?"라고 운을 떼면 다시 모두가 그쪽으로 집중하기 바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유선님, 저는 꾸준히 글을 쓰려고 이 모임에 들어왔던 건데...지금 우리 모임은...."


모임의 변질에 불만을 느낀 사람들은 한꺼번에 탈퇴를 선언하며 단체 카톡방까지 나가버렸다. 그렇게 남은 건 유선을 포함해 7명이었다. 유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재테크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 바쁜 사람들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시작한 모임이었고, 어떻게든 모임을 끌고 가고 싶었던 유선은 부동산 투자 혹은 금리 인상과 연관되는 글감을 던져가며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유선의 노력에도 모임원들은 점점 더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결국 그녀를 제외하고 자기들끼리 따로 모임을 개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유선의 글쓰기 모임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허무하게 모임이 파투난 이후, 유선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글쓰기 모임 운영은 난생 처음인 자신의 무능함과 부족함 탓에 이 사단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녀의 모임 운영 사실을 알고 있던 지인들이 '유선 씨, 모임 잘 운영하고 있어요? 분위기는 어때요?'라고 물어올 때마다 유선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무어라 대답해야 될지 몰라 유선은 모른척 다른 질문을 던지며 그 상황을 피했다.  


자신의 미숙함 때문에 모임의 말로가 결국 이 지경이 되었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유선은 결국 극도의 스트레스 탓에 모임이 그렇게 끝난 후 2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걱정이 된 남자친구가 퇴근 무렵 일부러 그녀의 집에 들러 죽까지 끓여줬지만, 그것마저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유선은 다시는 글쓰기 모임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간혹 모임이 이미 종료된 지 모르고 그녀의 인스타 DM으로 문의를 하는 이들에게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글쓰기 모임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도 말끔하게 삭제해버렸다. 그렇게 모임에 대한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영원히 그 누구도 보지 못하도록.


그리고 얼마가 흐른 후, 유선은 퇴근 길에 회사 인근 버스 정류장 앞에서 쓰러져 버리고 만 것이다. 위암 2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을 겪은 후,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하게 된 병원에서 다시 「나는 글쓰기 모임의 리더입니다」라는 책을 접하게 된 것이다. 분명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모임인데, 자꾸만 이 책에 마음이 끌렸던 유선. 결국 앉은 자리에서 그 책을 모두 다 읽어내고야 말았다.


책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도 몰랐는데, 문이 열리고 흰색 조리복을 입은 여사님이 저녁을 가져다 주시는 것을 보고 그제야 오후 6시가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유선이 책을 읽는 동안 남자친구도 살짝 잠이 들었었나 보다. 유선이 나긋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남자친구는 일어나 수저를 챙겨 그녀의 옆에 앉았다. 유선은 그가 반찬의 뚜껑을 여는 동안 슬며시 한유정 작가의 책을 챙겨 캐비닛으로 넣어버렸다. 그가 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다시 유선이 글쓰기 모임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는 것을 알게 되면, 그는 분명 벼락같이 화를 낼 테니까. 


"너!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 안나? 이걸 다시 한다고? 지금 이 몸으로?"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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