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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Dec 19. 2022

#12 믿었던 당신의 배신


<소설> 주인공 : 유선 



"나...서울로 발령 났다."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와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와 함께 부산에서 일했던 그가 승진을 이유로 그만 서울로 발령이 난 것이다. 대리에서 팀장으로 승진한 것은 있는 힘껏 축하해주어야 마땅한 일이지만, 서울로 발령이 난다는 사실은 너무 끔찍했다. 회사 내규상 발령을 거부하면, 퇴사 외에는 답이 없었다. 그걸 알기에 난 끝내 남자친구의 서울 발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단 2주 만에 모든 것을 끝냈다. 서울에서 지낼 곳을 알아보고,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 짐을 모두 그곳으로 보냈다. 출근까지 삼일을 남겨놓고 서울로 떠났고, 난 그렇게 부산에 홀로 남았다. 우린 10분 거리에 살며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다 먹은 뒤에는 함께 좁은 주방에 부대끼며 설거지를 하고, 키우던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그것이 5년간 이어진 우리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서울로 떠나고 나서, 난 모든 것을 혼자 해야했다. 외로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일주일 만에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무얼 먹어도 맛있지 않고, 그렇게 좋아하던 초콜렛마저 끊었다. 서울로 떠난 그는 적응하느라 바빠 연락도 잘 되지 않았다. 간신히 통화가 되면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다가 잠들어버리곤 했다. 정작 "당신이 없어서 외롭다고, 보고싶어 죽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으나, 그는 몰려드는 업무에 주말에도 쉴 수가 없었다. 주말에도 사무실을 지키며 산더미같이 쌓인 업무들을 쳐내야 했기 때문. 그래서 난 KTX 예매를 해놓고도 취소하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렇게 그를 못 본지 한달이 되어갈 무렵, 난 금요일 하루 연차를 내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그에게 카톡을 보냈으나 바쁜지 부산역을 출발한 KTX가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답장이 없었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어 그의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비에서 전화를 걸었으나 역시나 그는 받지 않았다.

오후 6시, 퇴근 시간이 되자 로비로 다소 상기된 얼굴의 직원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 틈에서 난 그를 발견했다. 그를 향해 손을 번쩍들고 흔들려는 찰나, 나는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내가 아닌, 긴 생머리에 흰색 플로럴 원피스를 입은 어떤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함께 손을 맞잡은 그 여자에게도 똑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마음 같아선 두 사람을 갈라놓으며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바람이라도 난 것이냐고. 손에 들고 있던 생수라도 얼굴에 뿌리며 쌍욕을 박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난 조용히 돌아섰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두 사람을 향해서 단 한 발도 내디딜 수 없었다. 그렇게 난 황급히 아무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역으로 돌아왔다. 


다시 부산행 기차에 오르려는 찰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아서 도대체 왜 변심한 것이냐고, 어떻게 나를 이렇게 배신할 수 있냐고 따져묻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전원을 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안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들을 지웠다. 100L짜리 쓰레기 봉투에 그와 관련된 것들은 모두 집어넣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놓았다. 그 와중에도 그는 계속 전화가 왔고, 수십 통의 카톡을 보내왔다. 홧김에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초기화하고, 같이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련이 남은 나는 또 그에게 매달리고 말 것이다.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나는 그 여자와 정리하고 내게 돌아오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했을 것이다. 그런 추한 꼴은 보기 싫어서, 그와 연락이 가능한 마지막 수단인 핸드폰을 과감하게 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가 아닌 바닥에 누워 한참을 울었다. 살면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울어본 것은.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처음으로 빛을 볼 때도 이렇게 쩌렁쩌렁 악을 쓰며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목이 다 쉬어버릴 정도로, 기진맥진해서 구토가 밀려올 정도로 울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한동안 계속해서 이렇게 울어댈 것이고, 순간순간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거나 혹은 그가 생각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이 미친 듯이 피어오를 것이다. 하지만 끝내 참아낼 것이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가슴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더라도 끝내 그에게만큼은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력을 다해 저주할 것이다. 영원불멸한 불행 속에 빠져 몸부림치며 살라고. 살아 평생 모든 순간을 '지옥' 속에서 살라고. 바람피운 남자의 말로는 비참하기 짝이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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