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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Dec 28. 2022

#14 그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후원이었다


<소설> 주인공 : 유하


인천 화수동에는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을 위한 작은 쉼터가 있다. 하루에 한 번 더위와 싸우고, 추위에 떨던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제공하는 곳. 이 쉼터에는 하루 평균 500명 이상의 노숙인들이 모여든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이곳이 단순히 식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다시 재기할 발편을 마련해 주기 때문. 마음 편히 한 몸 누일 수 있는 임시 거처를 마련해 주고, 기초 생활 수급자 및 긴급 지원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서류 처리를 도와주기도 한다. 수급자 확정이 되면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새출발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도 받을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준다. 

노숙인들은 물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댜앙한 사업을 진행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이 대기업이나 지차체의 후원을 받아 운영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쉼터는 대규모 후원은 일체 받지 않고, 철저하게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만 꾸려지고 있다. 1년 동안 흔한 간식 하나 사먹지 않고 아껴 모은 돈을 문 앞에 두고 가는 아이들, 부리나케 달려와 오만원 권 5장이 든 봉투를 쉼터 대표에게 건네고 이름도 밝히지 않고 떠나는 사람들까지. 이렇게 나눔을 실천하는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이곳은 자그마치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문을 닫지 않고 노숙인들과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나눔의 쉼터'라고 불리는 이곳은 매달 후원해 주는 사람들의 이름을 SNS 계정에 보기 좋게 정리해서 올린다. 유하도 우연히 쉼터의 SNS를 살피게 됐다. 계란 한 판, 대파 10단, 팽이버섯 30봉지, 애호박 3박스, 쌀 50포대를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나열되어 있었다. 또 적게는 천 원부터 많게는 수백 만원에 이르는 후원금을 전달한 사람들의 이름도 빼곡히 기록돼 있었다.


게시글 아래에는 후원자들의 댓글이 줄지어 남겨져 있었다.


"적은 금액이지만, 노숙인분들의 따뜻한 밥 한끼를 위해 보탭니다."

"쉼터 대표님, 더 후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5만 원이라도 입금했습니다."

"이번 달에는 사정이 어려워서, 쌀 열 포대밖에 보내지 못했습니다." 


놀라웠던 건 다들 후원을 하면서도 하나 같이 더 후원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이었다. 5만 원을 보낸 사람도, 100만 원을 후원한 사람도, 라면을 100상자나 전달한 사람도 모두 연신 더 보낼 수 없어 미안함과 아쉬움을 표했다. 


유하는 후원자들이 어떻게 하면 도대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자신은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음에도 명품 가방을 사고,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기 바쁜데. 그들은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여건에도 어떻게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고, 조금이라도 더 나눌 수 없음에 가슴 아파하는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궁금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아무 후원자나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누군가에게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유하는 그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직접 후원을 해보기로 했다. 금액은 한 달에 5만 원. 부담되지 않는 금액으로 정하고 매달 나눔의 쉼터 대표의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윤하는 매달 말일, 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sns 계정에 들어가 후원자 목록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김유하님 5만원.

노숙인들의 자활 사업에 사용했습니다.


정확한 후원 액수와 사용처까지 명시되어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나면, 매번 유하는 자신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에 보람을 느꼈다. 사실 커피 몇 잔 마시면 사라질 금세 사라질 5만 원인데, 이 돈이 누군가가 역경을 딛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에 이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만큼 또 가치있는 일이 어디있겠는가. 그렇게 유하는 조금씩 나눔의 참된 의미 그리고 기쁨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유하는 조금 더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D사의 명품백을 사기 위해 들었던 적금을 과감하게 해지했다. 액수는 300만 원쯤 됐다. 쉼터의 계좌로 입금을 할까 하다가 유하는 직접 돈을 들고 찾아가기로 했다. 유하가 살고 있는 강남에서 쉼터가 있는 인천까지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숨을 헐떡이며 걸어 올라가자 멀리서 하얀색 간판의 쉼터가 보였다. 


쉼터는 이제 막 점심 배식이 시작된 듯, 노숙인들로 붐볐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그들의 손에는 커다란 비닐 봉투가 들려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슬쩍 살피니 겨울철 간식으로 으뜸인 귤과 초코파이 그리고 카스타드가 들어있었다. 빈 손으로 들어왔다가 배를 채우고, 간식까지 얻어가는 그들의 얼굴에서 노숙 생활의 고단함이 아닌 편안함이 스쳤다. 한참을 서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해서 나오는 쉼터의 대표를 발견했다. 후다닥 뛰어가서 가방 안쪽 주머니에 고이 숨겨온 봉투를 꺼내 그의 눈 앞에 내밀었다.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는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요."라며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는 내게 이름을 물었다. 사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언덕을 걸어 올라올 때만 해도 대표가 이름을 물으면 당당히 밝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끝내 대표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유하는 뒤로 돌아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로부터 며칠이나 흘렀을까. 쉼터의 sns 계정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노숙인들의 겨울은 유난히 혹독합니다.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이불 하나 없이 박스에 의지한 채, 겨울을 나야하니까요. 식사를 하시러 오는 노숙인들 10명중 8명이 제게 혹시 남는 이불이 없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제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은 이불이 아닌 초등학생 아이도 다 감싸지 못할 작은 담요뿐입니다. 그 점이 늘 마음 아팠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은인이 나타났습니다. 검은색 코트에 단정한 단발머리가 인상적이었던 한 젊은 여성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쓰레기 정리를 위해 쉼터 식당 밖으로 나온 제게 봉투 하나를 내밀고 가셨습니다. 저는 봉투를 쥐자마자 엄청난 두께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분께 성함을 여쭈니, 끝내 답하지 않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뒷모습을 향해 저는 허리를 숙여 감사를 전했습니다. 


그분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저는 봉투를 열어 액수를 확인했습니다. 자그마치 300만 원이 들어있었습니다. 개인이 이렇게 큰 금액을 후원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불경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요. 저는 액수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지하철 역 근처에 있는 이불 도매가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는 식사 후에 또다시 차가운 거리로 나서는 이들에게 따뜻한 이불을 선물해 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분 덕분입니다. 언젠가 다시 그분을 만나게 된다면,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라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유하는 쉼터 대표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을 하다말고 뛰쳐나와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사실 300만 원을 전하는 순간까지도 유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 그냥 백 만원만 할까?'

'아...오십 만원만 넣을껄 그랬나?'


그렇게 속으로 온갖 고민을 하면서 건넨 금액이 이렇게 의미있는 곳에 사용되다니. 유하는 그런 자신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더 큰 금액을 건네지 못하여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불 한 채에 3만원 씩만 잡더라도 300만 원이면 100개 밖에 구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매일 쉼터를 찾는 노숙인 500명 가운데 400명에게는 이불을 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또 남은 사람들은 냉기 가득한 도로 위에서 추위에 떨며 억지로 잠을 청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때마침 아침에 읽었던 뉴스기사도 스쳤다. 노숙생활을 하던 50대가 추위를 피해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다 동사를 했다는 슬픈 기사 말이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물로 얼룩덜룩한 눈가를 정리한 유하는 자리로 어플로 비상금 통장의 잔액을 확인했다. 다행히 400만 원 정도가 들어있었다. 


유하는 곧장 쉼터의 SNS에 기재되어 있는 대표의 연락처로 메세지를 보냈다. 

"대표님, 혹시 이불을 추가로 더 주문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금 바로 400만 원을 보내겠습니다."

.

.

.


<나눔의 쉼터 - 인스타그램>


안녕하세요. 나눔의 쉼터 대표입니다.

어떤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또 다시 노숙인들에게 이불을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번에 이불을 받지 못해 울상지었던 이들도 

오늘은 포근한 극세사 이불을 안고 돌아갈 수 있어

함박 미소를 짓네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이렇게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수 있어 기쁩니다. 


우리 나눔의 쉼터에

앞으로도 이렇게 기적같은 일이 계속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의기적#크리스마스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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