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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Jan 04. 2023

예민한 나를 위한 주문의 힘

누군가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서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요즘 부쩍 예민해져 있다.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도 자꾸 날이 선다. 예민함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는 모두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얼마 전부터 난 강한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강력한 통증. 할 일도 많은데, 자꾸만 누워있기 바빠 모든 일에 진척이 없다. 이렇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느려지고, 정지에 가까운 상태에 달하는 상황은 스무 살 이후로 지금이 처음이다. 


출근할 때, 노트북을 챙겨 무거운 가방을 끌다시피 짊어지고 다녔던 나였다. 퇴근 후에는 다른 길로 새지 않고 곧장 카페로 가서 원고를 집필하고,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워크샵을 듣기 바빴던 나였다. 그러나 요즘은 퇴근만 하면 집으로 달려가기 바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감과 동시에 나를 둘러싼 허물들을 벗어던지고, 대충 얼굴과 손, 발만 씻고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유튜브 영상을 보는 열정도 사라졌다.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림과 동시에 곧바로 잠들어버린다. 그렇게 다음날을 맞이한다. 


분명 하루에 8시간은 자는 것 같은데, 이상할 만큼 다음날이 되어도 예민함은 그대로다.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더 날이 서는 것만 같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귀찮고 버겁게 느껴진다. 강한 의지로 시작했던 재테크 공부도, 계획형 다이어리 쓰기도 흐지부지한 상태다. 회사 업무, 자기계발 외에도 인생에 있어 큰 행사를 앞둔 나로서는 해야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데도, 도무지 집중도 되지 않고 짜증만 치솟을 뿐이다. 가보지 않은 세계의 일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일,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어렵고 두려운 일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늘 아침 출근 길, 거울을 봤다. 예민함과 짜증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손가락이 곧 얼어붙을 것만 같은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평소보다 간소하게 화장을 하고, 행거에 걸려있던 아무 패딩을 골라 걸치고 집을 나섰다. 회사로 가는 버스가 멈추는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 10분. 게속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러지 마." 

"힘내야지."

"할 일이 많잖아."

"정신차려."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이상한 시선으로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나, 나는 자기 체면의 과정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버스를 타서도 계속해서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확실히 좀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오늘은 업무를 조금 더 가뿐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새해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머리 아픈 업무도 해낼 힘이 생겼다. 부지런히 머리를 쓰고, 손가락을 움직여 2023년 한 해 동안 어떻게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전략을 모두 완성하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거리의 느긋하고 다정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나를 반겼다. 눈부시게 밝은 하늘과, 느긋한 발걸음으로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을 눈에 담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이를 닦으며 입안에 남은 점심 식사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이 글을 쓴다. 가뿐한 마음으로. 그리고 여유로운 손놀림으로. 


과연 오늘 출근길 10분, 아니 버스를 타서까지 내게 걸었던 주문은 효험이 있었나 보다. 이렇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다시 다이어리를 열어 퇴근 후 일정을 빼곡하게 쓰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처럼 올해가 끝나갈 무렵에 계획되어 있는 나의 행사도, 힘들고 지칠 때마다 부지런히 주문을 걸며 조금씩 준비를 마친다면 끝내 모든 이의 축복 속에서 완벽하게 피날레를 맞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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