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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Mar 16. 2023

차마 세세히 볼 수 없는 소설을 만났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점심을 건너뛰고, 책을 읽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읽어볼까 고민했었지만, 아픈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는 두려움에 끝내 읽지 못했던 책 '소년이 온다'를요.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의자를 최대한 빼고, 멀리서 빼곡한 활자들을 바라봤습니다. 


특히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죽어나가고, 총검에 의해 얼굴이 훼손된 시신들을 찾는 유족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단락에서 저는 도저히 책을 읽어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이 자꾸 차올랐습니다. 이것이 그저 작가의 허구에 의해 창작된 소설이 아니기에, 분명 1980년 8월 15일, 광주에서 있었던 사건이였기에 더더욱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잔혹하다'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천인공노할 계엄군의 만행들. 책 속에서 열거되는 온갖 고문과 무자비한 시위 진압 과정을 보며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곤봉으로 맞아 머리가 깨지고, 그저 교회에 다녀오다가 군화에 가슴을 짓밟히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입에 올릴 수도 없는 고문을 당하며 생명의 빛이 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왜 이렇게도 고통스러운 일인지. 


차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내용들은 뛰어넘고 봤음에도, 하마터면 책을 중간에 덮을 뻔했습니다. 속이 울렁거리고, 손이 떨리고, 두통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끝내 포기할 수 없겠더라고요. 


이 책을 이렇게 포기하고 덮어버린다면, 다시 가방 속에 넣어버린다면, 그날의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시민들과 아이들을 외면해 버리는 것만 같아서요. 결국 이를 악물고 끝까지 이 책을 읽어냈습니다. 


책을 읽고 제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포털에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검색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야만 했고,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의 불씨는 왜 그렇게 허망하게 꺼져만 가야 했는지를요. 검색을 하면 할수록, 저는 구역질이 밀려왔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일을 자행할 수 있었을까요?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선량한 시민들의 머리채를 잡고,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대검으로 찌르고, 온기가 거둬진 싸늘한 주검을 아무렇게나 버리고, 휘발유를 부어 활활 태워버리는 몹쓸 짓을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것인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 잔혹한 실상을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진들로 확인하면서 저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무자비한 현장을 보고 나니 일도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끄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날, 광주에서 일어났던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에 대해 깊이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어떤 전개 과정이 있었고, 어떠한 폭력들이 자행됐으며, 피해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온갖 트라우마와 공포 속에서,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냈을지에 대해서 살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제라도 알았다는 것. 다가오는 5월 18일에는 정말이지 온 마음을 다해 무고하게 희생된 그날의 사람들을 기릴 수 있다는 것.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고, 이 사건이 모두에게 잊히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노력할 수 있다는 것. 함께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다는 것. 


5월이 되면 다시 고이 모셔둔 <소년이 온다>를 꺼내어 읽어볼 생각입니다. 의로운 싸움을 이어가다, 목숨을 잃게 된 분들을 온 마음을 다해 기리면서요. 그리고 또다시 글을 쓸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영원토록, 그날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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