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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Apr 10. 2023

무너진 일상을 영양제로 회복하며

결혼을 하게 되면, 7년을 함께해 온 나의 사람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밤을 떠나보내며 분명 행복할 것이다. "결혼하는 순간 모든게 끝이야"라고 말하는 이들도 분명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걸 넘어 존경하기도 하는 대상이기도 한 나의 사람과 함께 한다면 나는 아마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리라. 


하지만 결혼까지 가는 과정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어쩜 이리도 챙겨야할 것이 많은 걸까. 웨딩 플래너와 함께 움직임에도 내가 일일이 확인하고, 신경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게다가 결혼이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이 아닌, 고향 경주에서 열리니, 거의 매주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느라 몸이 더 고되다. 


이럴 때 회사 일이 한가하면 참 좋으련만. 해가 바뀌고, 봄이 절정에 이르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시작됐고, 신규 직원까지 합류하게 되면서 몸과 마음이 더 바빠졌다. 게다가 약속은 왜 이렇게 많이 잡히는 것인지. 회사 책상에 놓인 4월 달력은 모두 깨알같은 일정들로 빼곡히 차 버렸다. 빈 공간을 찾아볼 수 없는 나의 달력을 보고 동료들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어떻게든 일정을 조절해 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모두들 하나 같이 내겐 너무 중요한 사람들과의 약속이기에. 


거의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정을 소화하고, 틈틈이 책 원고 작업을 하고, 극한의 다이어트까지 병행하니 일상이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잠을 충분히 잘 수가 없으니 기억력이 떨어지고, 눈이 충혈되고,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에서 이상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구내염이 시작됐다. 잇몸 위에는 생각만으로도 징그러운 햐얀 물집이 생겨났다. 혀로 살짝만 스쳐도 누군가 나를 칼로 찌르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동반됐다. 연고도 발라봤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윗 입술에도 생겨 입술을 온전히 앙 다물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여기서 끝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지독한 감기까지 찾아왔다. 3일 연속으로 수액을 맞았지만 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얼굴에는 붉은 열꽃이 피었다. 목이 퉁퉁 부어 목소리 역시 나오지 않았다. 겨우 입을 떼면 누군가의 귀에 꽂히는 나의 목소리는 허스키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거의 2주 간을 꼬박 앓았다. 지독한 감기와 그것보다 더 독한 구내염에. 아무리 운동을 해도 빠지지 않던 살이 2주간 4키로 가까이 빠졌다. 그리고 눈 밑에는 이전보다 더 짙은 다크서클이 자신의 세력을 더 키워나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지워도 지울 수 없을 만큼 아주 짙게. 


호되게 아프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아프면 결혼식장에 걸어서 들어가지도 못하겠다."


그럴 순 없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 온 결혼이던가. 7년은 만난 나의 사람과 드디어 모두가 인정하는 한 가족이 되는 날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으며 결혼식장을 누벼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곧장 올리브영으로 달려가서 영양제를 샀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비타민 함량이 가장 놓은 제품으로 골랐다. 그 외에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다양한 건강 식품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가자마자, 구입한 모든 영양제들을 하나씩 털어넣었다. 어쩐지 그것들을 먹는 것만으로도, 물과 함께 몸 속으로 흘려 넣는 것만으로도 내게 켜진 건강 적신호를 청신호로 바꾸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먹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나는 그것들을 소분하여 회사 책상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했다. 출근하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영양제를 털어넣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말이다. 


나만의 영양제 루틴을 만든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도 같다. 우선 피로가 많이 덜어졌고, 기억력도 좀 돌아온듯 하다. 그리고 몸도 한결 가뿐하다. 수면 시간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영양제 복용만으로도 이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니, 너무 만족스럽다. 


여기에 더해 오늘은 마시는 콜라겐까지 주문했다. 무너진 일상과 건강 속에 함께 시들어갔던 피부에도 에너지를 불어넣어줘야 하니까. 메마른 사막처럼 쩍쩍 갈라져 버린 나의 피부에도 영양을 듬뿍 주어야 하니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30포짜리 이 콜라겐 덩어리가, 나의 망가진 피부를 구원해줄 수 있다면, 아니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미세하게라도 좋아질 수 있다면 돈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무너진 일상과 건강을 영양제로 되돌리는 것. 


동그란 알약들에 나의 일상과 나의 몸과 마음을 의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지는 모르겠다는 의문도 드나,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우선 당분간 영양제의 힘을 빌려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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