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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Nov 18. 2021

"아빠만 괜찮다면 차가 박살이 나도 하나도 상관없어"

"나는 큰딸이 최고야"

술을 잔뜩 먹고 얼큰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온 날이면 아빠는 어김없이 나부터 찾았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며, 언제나 니가 최고라고 말했다. 큰딸에게 항상 엄청난 기대를 걸었던 아빠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적이 있다. 우리 딸은 언제나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을텐데, 갑작스럽게 휘청거린 딸에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속앓이를 했었다.


그것도 잠시,  서울로 올라와 방송작가에서 마케터로서의 변신을 꾀했고 이제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정신 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십대 중반을 넘어 3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이 쑥쓰럽다. 다른 친구들은 아빠에게 서슴 없이 애정 표현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살던데.   그러질 못할까. 매번 반성하지만, 여전히 거침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본가에 내려가 아빠를  때면  미안했다. 살가운 딸이 되어주지 못해서.

그러던 어느 , 갑자기 걸려온 엄마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이유를 캐물으니 계속 엄마는 명확하게 말을 하지 못했다. 답답함에 지친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강하게 말했고, 그제야 엄마는 사실은 아빠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전해주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아빠가 이른 새벽 회사로 출근을 하다가 마주보는 화물차와 부딪히고  것이다.   들여 뽑은 아빠의 신형 차는 거의 반이 날아갔고, 천만 다행으로 아빠는 근육이 놀랐을뿐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간 아빠에게 미처  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차디찬 원룸 바닥에 주저 앉아 울었다. 엄마가 괜찮다고 계속 말했지만,  눈으로 직접 아빠 상태를 봐야 마음이 놓일  같았다. 급하게 경주로 가는 KTX 표를 예매하고 때마침 친구를 만나러 인천으로 향하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정아,  당장 집으로 와야겠다."
"? ?  지금 인천 거의 다와가는데?"
"아빠가 사고가 났대."
"? 많이 다쳤대?"
"일단 괜찮다고는 하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같아"

동생은  길로 바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밀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데, 동생의 얼굴이 눈물 범벅이었다. 집에 들어와 외투도 벗지 않고 1시간 전의 나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우리 아빠 어떡하냐면서. 동생이 우니 나도 덩달아 다시 울컥하여 함께 울다가 짐을 대충 챙겨 서울역으로 갔다. 아이라인이  번져버린 우리 자매는 신경주역에 도착해 곧장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안방 문을 벌컥 열었다.

아빠는 서울에 있어야 되는 딸들이 갑자기 경주 집에 나타나니 화들짝 놀랐다. 우린 겉옷도 벗지 않고 아빠한테 뛰어가 어디 문제가 없는지 살피고 질문 세례를 쏟아냈다. 다행히 아빠는 약간 근육이 놀라서 물리치료만 받았을 ,  이상이 없었다. 비록 차는 수리비만 1300 원이 나올 정도로 박살이 나버렸지만.

차는 언제든 다시 사면 되지만, 아빠는 아니다. 아빠는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야 하는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날 이후로 나도 동생도 후회 없이 아빠에게 잘하고자 약속했다. 쑥쓰러워도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자주 연락하자고 했다. 물론,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지만  지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종종 카톡을 보내고, 위가 약한 아빠에게 좋은 영양제를 챙겨 보내며 사랑을 표현한다.


서투른 방식이지만 아빠가 내 마음을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조만간 경주에 내려가면 이번에는 꼭 아빠에게 데이트를 요청해 봐야지.
엄마 빼고 아빠랑 카페나 다녀와야겠다.
아, 그리고 내 곁에, 우리 가족의 곁에
영원히 있어달라고 꼭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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