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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Dec 17. 2021

사소한 순간이 모이면 하루가 되죠

나의 하루는 사소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하루는 특별할 것이 없다.
모두 사소한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방 안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요즘 정말 피로도가 높은 터라 쉬이 잠을 떨쳐 내기가 힘들다. 이럴 때는 추위가 답이다. 창문을 있는 힘껏 활짝 열어 온 집안에 냉기가 돌게 한다. 그럼 눈이 번쩍 떠진다.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는 않지만, 이불은 꼭 정리한다. 퇴근하고 들어왔을 때, 정돈된 집을 보며 행복해 할 수 있도록. 기분 좋은 향이 나도록 향수까지 몇 번 칙칙 뿌려주면 침구 정리는 끝.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내들고, 잠시 냉기가 가시도록 둔다. 그 사이에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두피가 예민한 편은 아니라, 샴푸와 린스는 아무거나 쓴다. 하지만 바디워시는 다르다. 꼭 자몽향이 나는 것으로 선택한다. 상큼하고 달달한 자몽향을 맡으면 기분이 더없이 좋아지니까. 

샤워를 마치고 나면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몸 곳곳을 깨끗하게 닦는다. 그런 다음, 아까 냉장고에서 꺼내어 둔 물을 들이킨다. 몸속 수분 충전을 마치고 나면, 얼굴에도 수분 공급을 해주기 시작한다. 요즘 가장 사랑하는 스킨케어 제품은 '이솝'이다. 가격은 살인적이지만, 텍스쳐가 좋고 보습감도 뛰어나니까. 또 끈적이지 않아 참 좋다. 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향이 아닌, 자연의 내음이 코 끝을 스쳐서 더더욱 만족스럽다. 


스킨케어 단계가 끝나면 본격적인 메이크업에 돌입한다. 나는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유는 딱히 없지만, 그래도 강렬한 화장을 선호한다. 특히 눈 화장에 공을 들인다. 펄을 많이 사용하여 눈이 돋보일 수 있도록. 아이라인도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그린다. 그런 다음 립스틱을 바르고, 파우더까지 발라 마스크에 화장이 묻어나오지 않도록 마무리 한다. 

화장이 끝나면 머리를 말린다. 얼마 전, 엄마가 새로 사주신 드라이기는 성능이 진짜 최고다. 어찌나 바람이 세게 잘 나오는지. 어깨가 넘는 머리 길이지만, 5분 내외로 감쪽같이 물기가 사라진다. 그런 다음 에센스를 부리를 제외하고 듬뿍 발라준 뒤, 고데기를 시작한다. 


지난 번 글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난 대한민국에서 손 안에 드는 악성 곱슬의 소유자다. 따라서 고데기 작업은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 갈 수 없다. 미용실 디자이너님들이나 사용할 법만한 집게를 들고 머리카락을 1/4로 구분지어준 뒤, 순차적으로 빳빳하게 펴주고 끝 부분은 동그랗게 말아버린다. 워낙 곱슬이 심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고데기 하는 데만 거의 30분이 넘게 걸렸는데, 요즘은 5분이면 된다. 이것도 자꾸 하다 보면 는다.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머리 손질이 끝나면 이젠 꼬르륵 소리를 내며 아우성을 치는 배를 달래줄 시간이다. 시간이 부족하여 밥을 먹을 수는 없지만, 대신 쿠팡에서 한 박스를 쟁여둔 아몬드브리즈 바나나 두유를 마신다. 두유 치고 가격이 사악하지만, 일단 내가 그간 살면서 마셔본 두유 중에 맛과 포만감 하나는 으뜸이다. 아직까지 이것 만한 제품을 본적이 없다. 또 쿠팡에서 대량으로 사면 개당 단가가 저렴하기도 하고. 

단숨에 두유를 들이키고 나면 외투를 입는다. 이제부터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지각 확정이기 때문에 채비를 서두른다. 집을 나서면 빠른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간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지만, 그래도 즐겁다. 출근길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걸음을 재촉하면 금방 정류장에 당도한다.  

버스를 타고 딱 2정거장만 가면 회사가 나온다. 회사로 들어가는 길, 잠시 카페에 들를지 매번 고민한다. 편하게 따뜻한 차나 커피를 사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회사에서 타서 먹을 것인지. 하지만 늘 내 선택은 회사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이다. 매번 테이크아웃을 하려면 비용도 문제이지만, 내가 하루에 사용하게 되는 일회용품의 양이 너무 많아지니까. 나라도, 조금이라도, 지구를 덜 아프게 해주고 싶다. 

회사의 업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이 회사에서 정말 만족스러운 부분은 점심 시간이 무려 1시간 반이라는 것이다. 1시간과 1시간 반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난 정말 많은 일들을 한다. 곧 출간을 앞두고 있는 책의 원고를 작성했고, 브런치 글도 꾸준히 썼다. 독립출판을 위한 다양한 강의들을 들었고, 디자인까지 직접 했다. 이 시간이 없었더라면 절대 난 독립출판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알찬 점심시간을 보내고 오후 근무를 마치면 드디어 퇴근이다. 대부분 퇴근과 동시에 집으로 들어가지만, 난 다르다. 점심시간을 다 사용하고서도 미처 끝내지 못한 독립출판 원고 & 디자인 작업을 위해 카페로 간다. 음료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하여 오늘 내가 해야될 작업들을 모두 끝낸다. 숨 쉴 틈 없이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나면 그때서야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손을 씻고 잠시 매트리스 위에 눕는다. 아무 것도 틀어놓지 않는 적막한 순간 속에서 난 평온함을 되찾는다. 혼자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고 나면 저녁을 대충 챙겨 먹는다. 저녁이라기 보다는 야식에 가깝지만. 요즘은 다이어트를 해서 이마저도 건너뛸 때가 태반이다. 

저녁을 먹든, 먹지 않든, 자기 전에는 꼭 책을 읽는다. 한 페이지라도 읽으려고 노력한다. 기존에는 기성 출판물들을 많이 읽었다면 요즘은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사온 독립출판물을 자주 들여다 본다. 내가 독립출판물 출간을 준비하고 있어서 일까, 자꾸 독립책방에서 사온 책들에 눈길이 간다. 단순히 텍스트만 읽는 것이 아니라 표지와 내지 재질은 어떠하고 디자인 배치는 어떻게 되었는지 구성도 꼼꼼하게 확인한다. 이 과정이 내가 디자인과 표지, 내지를 구성하는 데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밤 11시 30분쯤이 되면, 책 대신 이불을 덮는다. 엄마 품처럼 포근한 극세사 이불을. 전기 장판을 틀고 그래도 잠에 빠진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끝이 난다. 몇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내일이 찾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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