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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Feb 21. 2022

늦은 저녁, 한산한 거리를 거닐었다.

코로나19의 어마어마한 전파력에 기가 죽었다. 집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한 나는 항상 어딜 나가야만 하는 사람인데, 오미크론의 위협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답답해도, 심심해도 집에만 있는 것이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말 내내 온전히 집에만 있기로 했다. 한 번에 2개의 독립출판물을 작업해야 하니, 차라리 잘 된 일이다. 토요일은 하루 종일 원고와 씨름을 했고, 글이 더이상 써지지 않을 때는 영감을 줄 만한 책들을 읽었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외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일요일이었다. 일요일 낮까지만 해도 '오늘까지는 집순이로 살자'라며, 대청소를 시작했다. 밀린 설거지들을 빠른 손놀림으로 해결하고, 화장실 가득 왁스를 부어 사력을 다해 문질렀다. 물티슈를 들고 온 집안 구석구석을 닦기도 했다. 냉장고에서 생기를 잃어가던 음식들도 죄다 꺼내어 버렸다. 

간만의 대청소에 기진맥진해졌다. 한겨울에 등에서 땀이 났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아무도 없는 집 바닥에 드러누웠다.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볼까 했지만, 갑자기 진한 아쉬움이 몰려왔다.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되는데, 이렇게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 아까운 것이 아닌가. 

결국 작업할 것들을 잔뜩 챙겨 집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시시때때로 손소독을 하며, 백지상태였던 원고들을 검은 활자로 하나씩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막 탄력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파트너님이 다가와서 "영업 종료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보니 겨우 저녁 7시에 불과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벌써 영업시간이 끝나는 것이냐고 물으니, 테헤란로에 있는 스타벅스들은 주말의 경우, 대부분 일찍 영업을 마감한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은 손님은 나 하나였다. 놀란 나는 잽싸게 짐을 챙겨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스타벅스를 빠져나왔다.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파가 예고되어 있었던 만큼, 맹렬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어쩐지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조금 걷고 싶었다. 괜히 쇼핑도 하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온전히 나를 위한 소비를 한 적이 없었다. 마침 사용하던 립스틱이 바닥을 보이고 있기에 올리브영에 들렀다.


성격이 급한 난 원래 올리브영에 들어가도 10분 이상을 머무르지를 않는다. 필요한 것만 사서 나오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제는 좀 달랐다. 찬찬히 하나하나 살펴보고, 발색 테스트도 아주 오래 해봤다. 코로나19로 더이상 손등이나 입술에 테스트를 할 수 없어서, 직원분이 건네준 종이에다가 마음에 드는 컬러들의 발색을 확인했다. 기분이 묘했다. 마치 유치원생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휘황찬란한 캐릭터가 그려진 스케치북의 흰색 면에다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립스틱을 크레파스라고 여기며, 열댓 개의 선을 그려본 뒤에 마음에 드는 제품을 구입했다. 

오랜 고민 끝에 산 립스틱을 손에 쥐고, 테헤란로 일대를 거닐었다. 주말의 테헤란로는 여기가 강남이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하다.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걸어다니는 사람보다 배달을 위해 속도를 내는 오토바이가 훨씬 더 많을 정도다. 고향, 경주 만큼의 고요함을 누리며 걷고 또 걸었다. 기분이 좋았다. 평소와 달리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걸을 만큼 충분히 걷고, 이젠 더는 추위와 맞서지 못했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맥도날드에 들렀다. 에그불고기버거를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와 먹으면서 <일간 이슬아> 메일을 열어봤다. 한 주 늦게 신청한 터라, 총 5편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이번 일간 이슬아 연재는 가녀장 특집호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몹시 궁금하면서도 기대가 됐다. 입으로는 햄버거를 오물오물 씹어 먹고, 눈으로는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과연 이번에도 역시 '이슬아 다운' 글이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부러움과 질투를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이슬아 작가님처럼, 고정 관념을 깨고, 표현 하나에도 공을 들인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햄버거를 먹었던 흔적을 대충 정리하고 이불 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슬며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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