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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Mar 04. 2022

서울에서 길치로 사는 일.

서울에서 낯선 곳을 가야 할 때면,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선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심각한 길치인 탓이다.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방향 감각도 없고, 지도를 봐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때문에 잘 모르는 곳으로는 발걸음 하지 않았고,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곳들로만 찾아다녔다. 덕분에 항상 다니는 곳이 비슷했지만, 단조로운 것이 길을 잃어 당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아무리 피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누군가 동행해 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나 홀로 가야 할 때가 많다. 어제도 그러했다. 지하철역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해방촌으로 워크샵을 들으러 가야했다. 고민이 됐다. 세상에나 해방촌이라니. 자신이 없었다. 이전에 택시를 타고 갔을 때도 한참이나 헤맸던 동네였다. 더군다나 가야할 곳은 해방촌 어느 골목의 지하에 위치한 곳이었다.

회사에서 가는 길을 구글맵으로 검색해 보니 꽤 험난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고, 마을버스도 타야했다. 내려서는 골목을 찾아서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그냥 택시를 탈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퇴근시간대 강남에서 해방촌까지 택시를 탔다가는 요금이 폭주할 것이 분명했다. 만 팔천 원을 거뜬히 넘을 것이 뻔했다. 그정도 돈이면 밥 한 끼를 배불리 먹을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살 수도 있다. 


결국 버스를 타고 가보기로 결정했다. 퇴근 1시간 전, 내가 가야 할 루트를 완벽하게 분석했다. 길을 잃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한 번에 목적지까지 찾아가기 위해서. 버스 정류장을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봤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길치의 숙명이다. 

오후 6시. 재빠르게 퇴근을 찍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3분쯤 기다렸을까? 한껏 긴장한 내 앞으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버스가 도착했다. 중간에 내려서 환승을 하여 겨우 해방촌 인근까지 도착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마을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마을버스 정류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목이 탔다. 일단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차가운 생수를 사서 들이켰다. 다 먹은 빈 생수통을 버리러 가려던 찰나, 혹시 몰라 편의점 직원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죄송한데, 마을버스 정류장이 어디인가요?"
"(눈에 보이는 데 왜 모르냐는 표정으로) 저기 있잖아요!"

직원이 손짓으로 알려준 곳을 바라보니 큰 전봇대가 있었다.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 밖으로 나와 전봇대를 다시 바라봤다. 전봇대 옆에는 '용산2 마을버스 정류장'임을 알리는 작은 초록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황당했다. 저렇게 작게 안내를 해 놓으면 초행길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정류장인 것을 안 단 말인가! 

혼자 투덜투덜거리고 있으니 굽이굽이 길을 올라온 마을버스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잽싸게 마을버스에 오르니 버스에 젊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 어르신들이었다. 어쩐지 고향에 있는 시골 버스에 탄듯한 정겨운 기분이 들어 긴장이 좀 풀렸다. 창밖을 구경할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그 여유는 5분도 채 이어지지 않았다. 곧 하차해야 했고, 난 해방촌 오거리에 도착하게 됐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했다. 지도를 보니 목적지가 근처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골목을 다 샅샅이 살펴봤다. 얼굴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더웠다. 입고 간 두꺼운 코트가 원망스러웠다. 거의 15분쯤을 헤매다가 워크샵을 진행하는 분께 전화를 하려던 찰나, 다행히 최종 목적지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계속 지나쳤던 곳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목적지로 들어갔고, 지하에 내려가 무사히 워크샵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계속 긴장하면서 온 데다가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몰려왔다. 꼭 참여하고 싶었던 수업이라 힘겹게 왔는데, 오는 길에 이미 지쳐 집중력이 바닥났다. 그래도 좋은 분들을 만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아 마지막까지 정신력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수월했다. 수업을 들었던 분과 지하철역까지 함께 가기로 했으니까. 초면에 죄송했지만, 일찍이 길치임을 밝히고 함께 길을 나섰다.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드러누웠다. 가벼운 가방을 메고 갔음에도, 어깨가 아팠다. 아마 긴장하면서 계속해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린 탓이겠지. 반나절 동안 고생한 어깨와 무릎, 그리고 발에 감사를 표했다. 동시에 미안함도 전했다. 내가 길치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아프고 힘들 일도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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