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옷엔 노을이 진다.
여름옷 정리를 하며...
by 전생은 활화산 암반수 Aug 15. 2021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옷이 있었다.
2021년 대한민국의 날씨는 미쳐간다.
더운 날씨와 햇빛 알레르기까지 있던 나는
작년에 입었던 옷들을 싹 갈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릴 적부터 편하게 입던 옷들이 보였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옷은 동대문에서 산 회색 운동복 반바지에
흰 티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거였다.
얼핏 보면 어릴 때부터 고시생 패션을 좋아했을지 모르나
헐렁헐렁하게 걷다 그늘에서 잠시 쉴 때
송송 바람이 들어오는 걸 느낄 때마다
내가 살아있고, 오늘 하루도 알찼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다시 입어볼까?
다시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내가 이젠 저 옷들을 입기에는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이랄까.
아니 나는 지금은 다른 나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 옷들에게 안녕을 고해야 할 거 같았다.
나이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옷은 달라지는 게
어릴 땐 이해가 되지 않았다.
25살인 지금, 나는 이해가 된다.
맨날 그 옷이 너무 좋아 그 옷만 입고 다녔던 거 같은데
인연에 시작이 있듯 끝이 있듯이
나의 옷들과의 인연은 화창했기에
오늘 나의 옷들에도 노을은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