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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을이 좋다.
가을 아침 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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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은 활화산 암반수
Oct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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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40분이다.
9시 프랑스어 실시간 강의가 있는 나는 오늘따라 아침 샤워를 하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분 탓인가 피부가 많이 좋아 보인다.
내가 항상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는 이유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오늘 나는 어떤 모습이고, 나는 더 나아지고 있구나
나는 어떤 컨셉으로 화장을 해 볼까? 무슨 옷을 입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오늘 하루도 헛되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는 거 같기도 해서
그런 거 같다.
온수를 틀어보니 처음부터 제대로 물이 나오지 않는다.
부르르 떨며, 차갑지만 포근한 가을 공기를 조용히 들이마시며 어두운 집의 온수 버튼을 조절한다.
엄마는 옆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우리 세 자매를 위한 점심, 저녁을 만들고 계신다.
나는 살금살금 지나치며 다시 샤워실로 달려가 온수 속에 뛰어들어가 밤새 뒤척였던
나의 몸을 씻어본다.
요새 사실, 잠을 잘 못 잔다.
아니, 사실은..
9월이 시작되고 나서 고민도 많아지지만, 막상 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 거도 아니라 힘들었던 거 같다.
이제는 4-2학기 졸업반이 된 나는,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들으며, 알바를 뛰며,
저녁에는 3d 모델링, 영상 편집 수업을 들으며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각오는 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은 여유롭지 않게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다소 섭섭했지만,
가을은 또 왔으니까
다음에 오는 가을에 성취감을 맛보고 싶었기에
선택한 계획이었다.
계획을 실행해가고 있는 건 좋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을까 싶다.
그랬던 9월이 지나갔다.
샤워를 끝내고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화장실에서 내가 나왔다.
여전히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계셨고,
어젯밤 새 리포트를 작성했던 둘째 동생은 자고 있고,
고 3인 동생은 학교에 갔다.
나는 가을이 좋다.
무르익어도 변하지 않은 것들을 바라봐주게 해 주니까.
또,
시원한 가을 공기와 높아진 하늘이 나의 여유를 되찾아주니까.
아침 9시, 교양 프랑스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교수님의 검은 냥이는 화면에서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우리의 또 다른 가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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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은 활화산 암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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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유지우', 전생은 '활화산 암반수', 두 냥이의 집사이자 엄마. 책으로 영감받고 연기로 치유 받고 책에서 안식을 찾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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