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함 속의 회오리
그 여자 이야기 Take#3
항상 주말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끝이 난다.
월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편의 출근 후
밤새 엉망이 된 이부자리를 털어내 정리하고
어제 먹은 야식 그릇부터 쌓인 설거지를 한다.
오전 열 시쯤
집안일을 대충 끝내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무거운
무력감이 나를 감싼다..
오늘 역시
그렇게 들이닥친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어
집 현관문 고리에 성의 없이 걸어두었던 크로스백만
달랑 메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날씨가 만약 그날그날 내 기분에 따라 변한다면
오늘은 짙은 회색빛 구름이 깔려야 할 것 같은 하루다.
다들 출근을 한 후라 그런지
차도도 제법 한산하다.
신호등에 걸려 기다리는 차들을 무심코 보니
뒷좌석에 아이들을 태우고 가는 엄마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아.. 나도 곧 저렇게 되려나..'
잠시 조금 더 무거워질 뻔한
공기를 애써 밀어내고 횡단보도를 건너
내가 좋아하는 달러 샵으로 간다.
아니,
목적이 있어 간다기 보단
목적이 없을 땐 항상 '비싼 쓰레기'를 사러 가는 습관이 있다.
분명 거리는 한산했는데
달러 샵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들어가자마자 장바구니를 왼쪽 팔에 끼고
사람이 제일 없는 쪽부터 찬찬히 돌아보기로 한다.
참..
$1이라는 돈으로 많은 걸 살 수 있구나
새삼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주방기구를 모아둔 코너엔
오늘도 사람이 많다.
눈치를 살피다 굳이 굳이 빈자리로 끼어들어간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의 사람이
이것저것 테스트해보고 있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한참 쇼핑의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어 갈 때쯤
옆 사람이 말을 건다.
"저.. 혹시 Walgreen에서 보았던 분이죠?"
"......"
그래서 왠지 친근해 보이는 사람으로 보였었나 보다.
"안녕하세요!"
놀라지 않은 척 인사를 한다.
"이제 알러지는 괜찮아지셨어요?"
"네, 간절기엔 항상 이러더라고요. 괜찮아요"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인사를 건네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이 장바구니에 담은 것들을 계산을 하러 가야 하는지
조금 더 이 사람과 말을 더 해야 하는지
헷갈리고 있을 때쯤,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낸다.
"저기 혹시 지금 시간 되시면, 요 앞 카페 Kinship이라고 커피가 참 괜찮은데, 한잔 하러 가실래요?
혼자 가긴 심심해서요~"
커피... 라....
매일 하루 두세 잔의 커피를 마시는 나지만
남자와 둘이 카페에서 커피라니
연애결혼 통틀어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네, 그래요. 저도 거기 좋아해요"
미처 머리에서 고민을 채 끝내기도 전에
주책 덩어리 입이 먼저 대답을 한다.
길게 늘어진 계산 줄 제일 뒤에 서서
각자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 계산을 기다린다.
얼핏 본 그의 장바구니에는
제법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들어가 있다.
'편한 옷도 꽤 잘 어울리는구나. 저 사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아이스 소이 라테 한잔 주세요!"
그 남자가 주문을 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활짝 웃으며 내 옆으로 와 앉는다.
난 푸르게 잘 자란 나무들과
무심한 듯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에 일자로 되어 있는 테이블이 좋다.
왠지 지구 상에 나 말고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다.
"Mia 씨는 두유를 좋아하시나 봐요"
"네, 제가 락토스를 소화 못 시키는 체질이라 우유를 마시지 못해요"
"아.. 그렇구나. 혹시 필요하시면 락토스 분해를 도와주는 영양제들도 많아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때아닌 락토스 소화 불능 고백을 한 후
각자 통성명을 하고 나니
우리 사이의 어색한 기류가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은 나만 느끼는 것이려나.
그는 30대 후반. 약사.
어릴 때 부모님과 이민을 온 후
줄곧 미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약사인 와이프와 아이가 한 명 있다고 했다.
"남자들은 달러 샵 잘 안 오던데, Dan 씨는 자주 오세요?"
조금은 쑥스러운 웃음으로 대답한다.
"네, 전 비싼 거 하나 보단 싼 거 여러 개가 좋더라고요 하하"
"저도요! 비싼 거 하나 사고 나오면 왠지 허무한 거 같아요"
"하하 저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문득 이 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평일 오전 시간 이렇게 웃고 있는 나를 느끼고 있자니
나 스스로가 낯설다.
'이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고
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을
아무도 모르게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