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a 씨는 오늘도 소이 라테죠?"
그가 조금은 쑥스러운 듯 물어본다.
"네"
"전 늘 마시던 걸로 주시고요,
아이스 소이 라테 한잔 더 부탁해요"
그가 주문을 끝내고
받은 영수증을 지갑에 접어 넣으며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어온다.
깔끔한 와이셔츠에
파란색 타이가 반듯해 보이는 그의 이미지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아, 제 한국 이름은 이지은이에요"
정말 오랜만에
낯선 사람에게 나를 소개해본 것 같다.
"이지은... 앞으로 지은 씨라고 부를게요.
저는 왠지 영어 이름보단 한국 이름이 좋더라고요"
"네 좋아요. 그럼 저도 정우 씨라고 부를게요"
각자 커피를 한 모금씩 하며
약간의 어색함이 흐른다.
"정우 씨는 어디쯤에 사세요?"
"아, 저는 여기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아파트에 살아요. 지은 씨는요?"
"아 그럼 저희 집도 정우 씨네랑 가까울 것 같은데요?"
"정말요? 이웃사촌이네요! 하하"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았을 줄이야..
언젠가 장을 보다 마주친 적이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리다.
"지은 씨, 우리 밖에 좀 걸으면서 이야기할까요?"
"네, 좋아요"
하루 종일 서류와 약통에 치여가며 일을 한 탓일까
탁 트인 곳에서 조금 걷고 싶어 하는 듯한 눈치다.
자리에서 일어나 놔두고 가는 것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을 한 후
우리는 커피를 챙겨
여전히 햇빛이 꽤 따가운 거리로 나온다.
그 사람은 자연스레 차도 쪽으로
옮겨가 나와 발을 맞춰 걷는다.
"정우 씨, 그럼 아스토리아 공원 쪽으로 가볼래요?"
"어, 저 거기 제일 좋아하는 공원인데 그래요!"
우린 별 말없이
공원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 코너로 꺾어 들어간다.
"지은 씨는 무슨 일 하세요?"
"아.. 저는 사실 남편 따라 뉴욕으로 와서
아직은 쉬고 있어요.
원래는 요가 강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아 그러시구나. 대단해요 뭔가"
"제가 보기엔 약사이신 정우 씨가 더 대단한데요?"
"하하 약사는 쉬워요 다른 전문직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죠 뭐"
별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꾸밈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좋다고 생각한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아무 이유 없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 사람을 감싼 이상한 기운이
상대방의 마음 문을 꼭 잡고 있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정 반대의 사람이다.
자주 만난 적도, 이야기를 많이 한 적도 없지만
마음이 편해져
무슨 말이든 듣기 좋게 꾸미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덧
아스토리아 공원 입구로 들어가
아까 내가 누워 있었던
강가가 보이는 잔디 위에
다시 비치타월을 꺼내어 편다.
"이거 오전에 제가 쓴 거긴 한데 깨끗해요"
"네, 괜찮아요. 그럼 실례할게요~"
우리 둘은 그리 크지 않은 비치타월 위에
함께 앉는다.
커피 컵의 아이스도 어느새 거의 녹아간다.
잔뜩 물이 맺힌 플라스틱 커피 컵을 들고 있는 그의 손에
오늘은 반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잊어버리고 안 끼고 나온 건가..'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손을 뚫어지게 보고 있을 때쯤
그가 말을 꺼낸다.
"일 끝나고 바람 쐬러 나오니 참 좋네요.
지은 씨는 어때요?"
"저도 여유롭게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좋아요"
"저희 자주 봐요. 볼 수 있다면"
"그래요"
우리는 저물듯 말듯한 해를 보며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참으려는 듯
남은 커피를 마신다.
"지은 씨, 번호도 서로 아니까
앞으로 가끔 메시지 해도 괜찮죠?"
"....."
과연 괜찮은 걸까..
고민하다 대답한다.
"네, 괜찮을 것 같아요"
강가 너머 해가 지는 이 순간을
보고 있는 게 행복한 걸까
아니면
이 사람과 함께 있어서
이 순간이 행복한 걸까
아직은
확신할 수도 확신하고 싶지도 않다.
그다음에 다가올 그 어떤 감정이
파도처럼 날 덮칠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