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 나를 살리는 일
나는 대학생 자취시절부터 내 자신을 돌보는 일에 미숙했다.
나의 친구는 자취방 내 식탁에 쌓인 책들을 보며 밥 먹는 공간에 왜 이런 것이 있냐며
나를 돌본다는 것이 별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잘 챙겨먹고 잘 자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자기계발이라는 항목에 꽂혀 몇시간씩 공부하고 퇴근 후에도 몸을 갈아 이것저것 배우러 다님에 여념이 없었음에도 나는 잘 챙겨먹지 않고 위생관념이 뚜렷하지 않았다.
아기를 키우며 이제 살림은 엄마의 몫이 아닌 엄마인 나의 몫이 되었다.
번아웃이 잘 오는 직업 1위가 의외로 가정주부라고 한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도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직업도 아닌 가정주부.
그 원인은 보상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내가 나의 살림을 하게 되며
나의 옷에서 나던 좋은 냄새는
섬유유연제를 많이 때려박기만 한다고 나는 것이 아님을,
걸어다닐때에 거실에서 먼지가 발에 채이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청소기를 일주일에 세번은 돌리는 부지런함이 있어야함을,
침대에 누웠을 때 머리카락과 과자부스러기가 없으려면 침대에 눕는 누군가를 돌보는 마음으로 누군가 먼지를 치워야만 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중고 매매 사이트 당근을 자주 눈여겨 보는데 하루는 누가 당근 알바로 일주일에 두번 반찬과 청소할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공고를 보게되었다.
일급이 6만원이라 적지 않게 느껴졌고
공무원만 아니면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살림은 돈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데 남의 살림은 돈 들어오니 하고 싶더라.
나는 그 구인공고에서 글쓴이의 고단함이 보였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도저히 자신을 위한 반찬과 자신을 위한 청소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울 에너지가 없었으리라.
내가 하는 또 나의 남편이 하는 살림이 그렇게나 누군가의 몸을 일으켜세우는 일이구나.
이쯤에서 아이를 먹이는 나를 먹이는 남편에게 무한 감사를 표한다.
어렸을 적 24시간 김밥장사를 하며 바쁜 부모님께서 집안일을 시키실 때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고 내가 학대(?)받고 있다고 억울해하던 시절 생각이 난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세남매의 설거지, 빨래, 청소까지...
또다른 출근을 하시며 얼마나 고되셨을까!
살림은 살리는 일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퇴근해 자신을 일으켜 세울 힘이 없는 그 누군가를 일으키는 일.
나 자신을 돌보는 일.
살림을 조금 더 잘해보고자 빨래며 설거지며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던 중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었다.
아마도 미래 산업은 살림이 될 것이라는 댓글이었다.
짧지만 울림이 있었다.
AI가 무섭도록 성장하는 이 시대에
기계가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한다.
가장 인간적인 것
가장 따뜻한 것
자녀를 돌보는 엄마의 손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하고 조금 더 친해지려 노력해보고자 한다!
그것이 비록 작심삼일이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