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직장인의 미국 취업기 -2-
‘면접은 잘 봤어?’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선배 누나가 물었다.
오늘은 하버드 한인 신입생환영회였다.
MIT와 하버드는 같은 동네에 있는 만큼 교류도 많고
각 학교 한인동문회끼리도 연합으로 많은 행사들을 한다.
지난주 MIT 신입생 환영회에도 하버드 학생들이 놀러 왔고, 오늘 하버드 신환회에는 나를 비롯해 MIT 학생들이 갔다.
적당한 레크리에이션과 어색한 사회생활로 공식 일정이 끝나고, 친한 사람들끼리 인근 바에 가서 우리들끼리 한잔 하기로 했다.
주말 저녁이라 앉을자리는 없어서,
단체로 갔지만 자연스럽게 두세 명씩 무리를 이루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주 모든 면접이 끝났다.
Screening Call 이후에 선배 형을 만나 회사 분위기와
면접관의 스타일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회사가 있는 필라델피아에 가보지 않은 나를 위해 동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덕인지 그 이후의 두 번의 면접 모두 통과했고,
이제 최종 면접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머릿속에 면접 밖에 없던 터라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정말 간절하면.. 안되는건 없다고 생각해.’
취업이 너무나 예민한 주제라 물어보기 조심스러워서 누나가 정확히 어떤 상황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누나도 인턴 이후에 정규직 전환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으로 알고 있었다.
누나의 말은 나에게 하는 응원인 동시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으로 들렸다.
간절함과 의지가 느껴졌다.
첫 Screening Call 이후에 면접도 여러 번 있고, 면접 사이 기간도 길었던 만큼, 처음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게 한참 전 같았다.
그 이후로도 여러 곳에 지원했지만 서류에서 계속 탈락하고 있던 터라 여기가 안되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이번 기회에 대한 간절함은 더 커졌다.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이제는 조금 기대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더 컸고,
어제는 심지어 가보지도 않은 그 회사 사무실에서 필라델피아를 내려다보는 꿈을 꿨다.
꿈을 꾸더라도 바로 잊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너무 생생했다.
‘전화 좀’
수업 중 졸고 있는데 선배한테 카톡이 왔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불합격 소식일거라 예상했겠지만
평소 차분하고 어떤 소식이든 침착하게 말할 스타일의 선배인지라 도통 감이 안 왔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탈락 사유는 신입으로 뽑기에는 경력이 많고,
그렇다고 중간관리자급으로 뽑기에는 경력이 적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경력 없이 인턴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 번 들었던 터라,
면접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떨어지고 나니, ‘그럼 그렇지,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로 털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지난 몇 달간의 희망고문과 기대감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기대를 안 하면 실망할리도 없는데 마음이 앞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속상했다.
기분도 풀 겸 하버드 캠퍼스로 갔다.
칙칙한 MIT 캠퍼스에만 있다가 하버드 캠퍼스로 가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늦여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하버드 캠퍼스는
푸릇한 나뭇잎과 노란 단풍이 적당히 섞여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따뜻했다.
아름다운 눈앞 풍경과 내 상황이 너무나 대조적으로 느껴지며 기분이 나아지기는커녕 신기루 같았다.
정신을 차리면 이 모든 게 사라지고 어두캄캄한 터널일 것 같았다.
한국이 그리워졌다.
집이 그리워졌다.
좋은 직장에서 막 자리 잡기 시작했고
특별히 아쉬울 게 없는 삶이었는데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후회를 잘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후회가 들었다.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이라고 했던가.
유학 가겠다고 했을 때 좋아하며 적극 응원해 주신 부모님이 이 고생길로 부추긴 것 같았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안 그래도 오랜만에 뉴욕에 놀러 가고 싶었는데
잘 됐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뉴욕행 버스를 알아봤다.
다음 화에서 계속